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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05월29일 제 159호 한겨레21

프랑스 총선이 유럽 진로 결정한다

오는 5월25일 치러질 프랑스 총선은 20세기 프랑스 국민의 마지막 전국 선거다. 대선이나 지방의회 선거, 시장 선거 등이 모두 2000년대로 예정 돼 있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은 21세기를 맞이하는 프랑스 정치노선을 결 정한다는 데 그 중요성이 있다.

사회당은 93년 총선에서의 참패 이후 명예롭게 재기할 수 있는 절호의 기 회이고, 집권여당으로서는 시라크-쥐페 정부에 대한 일종의 신임투표의 성격을 띠고 있어 반드시 승리해야만 하는 부담을 안고 있는 것이다. 거 기에다 실업, 고용, 유럽통합 등 굵직굵직한 주제들이 정책공약의 주요 논점이 되고 있다. 지금까지의 여론조사들에 따르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 만 전반적으로 전체 5백55석 가운데(프랑스 본토밖의 프랑스령 의석까지 합하면 총 5백77석) 50여석 차이로 우파 연합이 승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여론조사기관들 스스로가 시인하고 있듯이, 이 전망치는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하다. 우선 1천명 정도를 표본으로 하고 있는 이런 여 론조사들은 전국적 차원에서의 정당 지지도는 가늠할 수 있지만, 이것이 곧바로 지역구 단위의 지지도로 환원될 수는 없다. 또 여전히 30% 정도의 응답자가 누구에게 투표할지 결정하지 않았다고 답변하고 있어 막판 바람 이 큰 변수가 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1% 차이의 접전… 극우세력 좌파 지원

지난 93년 총선 때에는 사회당에 대한 실망이 사회당 지지 성향 유권자들 의 대대적인 기권으로 나타났지만, 이번 선거는 거꾸로 쥐페 정부에 실망 한 우파 유권자들의 대량 기권 사태를 낳을 수도 있다. 또 좌우파간의 연 대와 제휴가 두드러질 전먕이다. 공산당-사회당 사이의 공동합의문 발표 와 사회당-녹색당 사이의 선거 협정에서 보이듯이 좌파대연합의 구도가 가시화하고 있어, 많은 정치평론가들은 현 선거정국을 사회당-공산당 공 동 프로그램에 힙입어 미테랑이 역사적인 승리를 거두었던 81년 상황과 비교하기도 한다. 공산당의 지원 없이는 어떤 경우에도 국회 과반수를 넘 을 수 없어 보이는 사회당은 공산당과 공조체제를 피할 수 없다. 때문에 좌파 승리를 전제로 녹색당, 공산당에 대한 장관직 배분문제까지 공공연 히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쥐페 총리를 선봉장으로 하는 우파는 자유주의노선의 부분적 수용전 략으로 우파 유권자층을 유혹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복지체계의 뼈대를 건드리지는 않을 전망이지만 앵글로 색슨식 자유주의 모델의 수용을 주장 하는 알랭 마들랭 등 우파 내 우파의 목소리도 폭넓게 수렴하고 있다. 그 러나 우파의 취약점은 극우파 유권자표가 없이는 승리가 사실상 불가능하 다는 데 있다. 현재 정당지지도 분포가 대략 좌파 39%, 녹색당·환경운동 6%, 우파 40%, 극우 국민전선(FN) 15%인 구도에서 집권 우파의 승리는 무 엇보다도 6월1일 2차 결선투표에서 극우파의 표를 얼마나 가져오느냐에 달려 있다. 시라크에 반감을 갖고 있는 극우 국민전선의 당수 장 마리 르 펜이 최근 “시라크는 조스팽보다 더 못하다”고 발언하자 우파는 내색은 못하지만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만일 2차 투표에서 르펜이 현 정 부에 대한 반대를 호소할 경우 극우표는 역설적으로 좌파로 가게 돼 극우 의 도움으로 좌파가 승리하게 되는 우스운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 이다. 1차 투표에서 과반수를 넘지 못하면 2차 투표를 통해 정치세력간의 연대·지지를 유도하는 역동적인 프랑스 선거에서 이런 양상은 충분히 가 능한 일이다. 우파는 극우파에 발목이 잡혀 있고 좌파 사회당 또한 공산 당표에 기대고 있기 때문에 중도의 좌우세력은 모두 양극세력의 눈치를 보고 있는 양상이다.

또 이번 프랑스 총선은 유럽통합 일정에도 매우 중요하다. 선거 결과가 향후 건설될 통합유럽의 성격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기 때문 이다. 예를 들어 최근 영국 노동당의 압승이 역사적인 사건이지만 유럽통 합 일정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데 비해, 프랑스 총선과 그로 인해 구성될 정부의 정책노선은 통합유럽의 성격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현재 진행되는 유럽통합이라는 게 결국은 독일 경제력과 프랑스 정 치력의 결합이고 프랑스가 유럽통합의 정치적 주역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 이다. 99년 단일통화를 시작으로 진행될 유럽통합 일정은 그 전체적 윤곽 은 그려져 있지만, 구체적인 성격이나 세부적인 내용은 여전히 불투명하 다. 통합유럽의 사회모델에 대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 구 성될 프랑스 정부의 성격은 통합유럽의 성격에 곧바로 반영되게 마련이다 .

현재 제기된 두 가지 모델, 즉 영국이 주창하고 있는 ‘자유주의 유럽’ 모델과 프랑스와 독일이 주창하는 ‘복지유럽(흔히 사회적 유럽이라 부른 다)’ 모델 중 결국은 복지유럽으로 갈 가능성이 훨씬 높지만, 만약 프랑 스 우파가 우파 내 보수세력이나 극우세력에 발목이 잡힌다면 복지모델의 일정 정도 후퇴와 자유주의의 부분적 수용이라는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 자유주의의 수용 여부는 프랑스 좌파의 목표와도 일정한 상관관계를 갖게 될 것이다. 우파가 승리하더라도 좌파가 선전해 강력한 견제세력이 된다 면 자유주의 모델의 수용은 강력한 저항에 부딪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영국 노동당의 우경화 노선은 쥐페 정부 노선에 가깝지만, 어쨌든 영국에서의 노동당 압승으로 유럽정치에서 좌파세력의 입지가 더욱 넓어 진 것은 사실이다. 이미 유럽의회의 최대다수 세력은 사회당, 사회민주당 등 온건좌파연합이다. 이런 상황에서 프랑스에서 또다시 좌파가 승리한다 면 서유럽 좌파는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세력으로 발돋움하게 됨은 물론 이고, 적어도 유럽 차원에서는 앵글로 색슨식 자유주의 모델의 종말을 고 하게 될 수도 있다.


영국식 자유주의 모델의 종말 가능하다

결국 프랑스 좌파는 이번 선거에서 ‘유럽좌파의 대세 굳히기’라는 또다 른 임무를 띠고 있는 셈이다. 유럽통합 일정에서 가장 큰 발언권을 가지 고 있는 프랑스에서 좌파가 재집권하고 프랑스공산당이 좌파대연정에 참 여하게 된다면, 앞으로 건설될 단일유럽은 한동안 잊혀졌던 이념인 사회 민주주의 노선에 기초한 고전적 유럽좌파모델로 돌아설 가능성도 높다. 사회당의 유력한 지도자이며 현재 유럽의회 의원인 미셀 로카르가 이 시 점에서 공공연히 ‘좌파유럽 건설’을 말하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바로 이런 정치적 맥락 때문에 이번 프랑스 선거가 2000년대 프랑스와 유 럽의 성격을 가늠해볼 수 있는 척도가 된다고 보는 것이다.

여론조사기관과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이번 프랑스 선거의 판세를 결 정하게 되는 것은 1% 포인트선이라고 한다. 즉, 현재 좌파 39%, 우파 40% 의 세력구도에서 좌파가 1%만 더 득표하면 우파는 사정없이 무너진다는 것이다. 우파의 자체분석에서도 지난 83년 선거에서 55% 이상 득표하지 못한 후보는 이미 패한 것으로 보고 있다. 1%에 달린 프랑스와 유럽의 운 명은 오는 5월25일과 6월1일 이틀동안의 투표로 결정된다.

파리=최연구 통신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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