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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
1997년05월29일 제 1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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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독일의 유력 인문사회과학 전문출판사 ‘주어캄프’(Suhrkamp)에서 시작한 ‘두번째 근대’ 시리즈가 독일 사회과학계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 시리즈 제목인 ‘두번째 근대’는 지난 4월 <좌우를 넘어서>(앤서니 기 든스 런던정경대학장)와 <자유의 어린이>(울리히 벡 편저)의 출간으로부 터 시작된 이 시리즈가 20세기말의 혼란을 극복하는 ‘대안’으로 내세운 것이기도 하다.
대안으로서 ‘두번째 근대’가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이것이 기존 학계 에 풍미했던 ‘포스트모던’에 대한 비판과 동시에 현재 ‘보수-진보’의 구도에 대해서도 일정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20세기 말인 현재 인류가 ‘혼란’을 겪고 있다는 것에 대해 이견을 달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우선 체르노빌 원전사고로 대표되는 환경문제 는 기존 ‘산업사회의 패러다임’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줬고, 베를 린 장벽의 붕괴로 대표되는 정치문제는 이른바 이데올로기의 대립이라는 ‘19세기적인 사고틀’의 완전한 종말을 의미한다. 즉 현재의 상황은 국 민국가, ‘사회주의 대 자본주의’라는 이데올로기, 이성의 존중 등 20세 기 들어 ‘근대사회’가 원동력으로 삼았던 모든 것이 파괴되고 있는 혼 란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혼란이 진짜 ‘혼란’인 것은 아직까지 아무도 이의 해결책 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특히 80년대 중반 < 위험사회>라는 화두를 던진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을 책임 편집자로 한 ‘두번째 근대’팀은 현재 제시되고 있는 각종 해법을 ‘19세기적 전통에 대한 향수’나 ‘청산주의적 사고’로 파악하고 있다. 얼마 전 한국에서 도 번역된 <위험사회>는 “풍요가 늘어갈수록 위험도 늘어가는” 현대사 회의 속성을 꼬집은 글이다. 따라서 ‘두번째 근대’는 이 ‘위험사회’ 의 해법이며 후속편이기도 하다.
‘두번째 근대’팀은 가치의 타락, 도덕의 몰락, 개인주의의 만연 등 주 로 보수주의의 ‘근대비판’뿐 아니라, 연대감의 상실, 공동체의 붕괴 등 이른바 진보진영이 손쉽게 내뱉는 시대진단 역시 옛 질서에 대한 맹목적 인 집착이라고 해석한다. 이들은 또 사회변화가 ‘복지국가모델’의 일정 한 변화를 강요하는 현 상황에서 ‘대안없이’ 복지국가의 유지를 외치는 진보가 오히려 보수적일 수 있고, 또 이의 변화를 요구하는 보수가 반대 로 진보적일 수 있음을 지적한다. 이데올로기뿐 아니라 진보-보수의 개념 자체가 혼란을 겪고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들은 토니 블레어 ‘노동당 의 우경화’도 사실 변화된 상황에 따른 진보의 변화움직임으로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근대사회를 만든‘이성으로부터의 탈피’를 주장하는 포스 트모더니즘은 이런 혼란을 극복하는 대안이 될 수 없다고 파악한다. 이들 은 오히려 꺼져가는 ‘근대사회의 원동력’을 되살리는 것을 그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울리히 벡 등은 현재사회는 초기 근대 산업발전 시기와는 많은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그에 따르면, 근대 산업발전 시기부터 생산과 위험 의 생산은 서로 엇물려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과학기술의 비약 적인 발전은 근대의 ‘부산물’인 이 위험의 효과가 19세기와 20세기 초 반과는 달리 전지구적·초국가적인 성격을 띠게 만들었다. 예를 들어 인 종차별은 차별받는 인종의 문제이지만 환경오염은 ‘민주적으로’ 모든 인류에게 위협이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울리히 벡은 이것이 여전히 근대의 틀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단지 동력이 달라졌을 뿐이다. 그는 위험사회를 움직이는 운동 의 동력을 “나는 무섭다”라는 문장으로 표현한다. 다시 말해 위험사회 란 두려움으로부터 연대가 형성되고, 동시에 두려움이 정치적인 힘으로 모아지는 사회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그는 이런 두려움이 인간을 비합리 주의·극단주의로 몰고가지 않으려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두려움을 거 듭 곱씹어볼 수밖에 없다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이 점에서 ‘성찰’이란 근대를 가능케 해준 조건이자, 동시에 위험사회를 돌파할 수 있는 에너지 이다.
따라서 울리히 벡 등은 이런 여러 상황을 종합적으로 볼 때, 적어도 지금 단계에서는, ‘자유를 좀더 정치화하는 것’을 혼란 극복의 해법으로 제 시하고 있다. 물론 ‘두번째 근대’팀도 두번째 근대가 자동적으로 인간 의 자유를 무한정 확장시켜주는 것은 아니며, 또한 자유의 극대화는 인류 가 안고 있는 문제를 자칫 왜곡시킬 위험성을 분명히 내포하고 있다는 점 을 인정한다. 하지만 “오늘날 인류사회의 위기는 좀더 적은 자유에 의해 서가 아니라, 좀더 많은 자유에 의해서 극복돼야 한다”는 울리히 벡의 과감한 주장에서 역설적으로 드러나듯, ‘두번째 근대’ 시리즈는 보다 극대화한 자유, 보다 정치화한 자유 속에 담겨 있는 긴장관계 속에서 보 다 철저한 ‘자기성찰’의 가능성을 엿보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현 수 준은 아직 우리가 도달해야 할 자유에 비하면 ‘어린이’에 불과하다”는 울리히 벡의 고백은 이 길이 결코 손쉬운 길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어렴풋 하게 보여주고 있다.
브레멘=최우성 통신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