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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
1997년05월29일 제 1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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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승희씨의 누드사진집 <버터플라이>.)
오후 7시에 오기로 한 이승희는 오후 8시가 돼서야 나타났다. 방송 녹화 가 예정보다 길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던 3백여명의 팬들은 그 기다림까지도 즐기는 듯했다. 방송 ENG카메라의 환한 조명과 함께 이 승희가 천사처럼 혹은 교주처럼 그 모습을 드러내자 이승희교 신도들은 한마디 불평도 없이, 오히려 빡빡한 스케줄에 시달리는 이승희를 연민의 시선으로 감싸줬다. 지난 5월16일 밤 강남역 부근 재즈레스토랑 ‘래즐 대즐’에서 열린 이승희 팬클럽 행사였다.
인터넷 스타의 너무나도 화려한 외출
레스토랑이라는 공간적 특수성 때문이었는지 1백여평 남짓한 식당은 20대 ~30대 직장인들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었다. 남성팬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여성들도 적지 않았다. 까무잡잡하게 선탠한 피부를 과시하듯 소매없는 흰 원피스를 차려입은 그가 무대 위로 올라오자 팬들은 환호했다. 8세 아 이의 말투로 “늦어서 미안해요”라고 말하는 그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 앞에서 이승희는 관능적 살냄새만을 풍기는 누드모델이 아닌 정서적 교감 이 오가는 ‘너무나 사랑스러운 연인’의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는 팬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열심히 일하겠다” “나의 누드는 아트(Art)다 ”라는 예의 ‘열심론’과 ‘예술론’을 설파했다. 그의 말과 표정은 앵 무새처럼 대사를 되뇌이는 것과는 달리 나름의 철학과 프로의식을 지닌 것처럼 비쳐졌고 무엇보다 솔직하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어 사 회자의 요청에 따라 ‘랄랄라’ 춤을 추기도 하고, 줄을 선 팬들과 함께 포즈를 취하며 사진촬영을 하고, 사인회를 가졌다. 그날 이미 외신 기자 회견과 두편의 텔레비전 오락프로그램 녹화를 거쳤음에도 그는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았다.
한반도가 온통 이승희로 들끓는다. 연초부터 한국인 최초의 <플레이보이> 표지모델, 인터넷 스타 등으로 서서히 열기가 달궈지더니 컴퓨터 속에 갇 혀 있던 그는 살아 움직이고, 말도 하는 생기발랄함을 띠고 우리 앞에 나 타났다. 마치 만화영화의 주인공이 생명을 얻은 것과 마찬가지의 충격을 던져주면서.
5월9일 그의 귀국날 김포공항에 2백여명의 취재진이 몰린 것을 시발로 연 일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쫓는 방송, 신문들, 첫 사인회가 열린 영풍문고 의 아수라장 등 이승희는 가는 곳마다 극진한 대접과 칭송을 받았다. 자 서전 에세이 <할리우드의 노랑나비>, 누드사진집 <버터플라이>, CD-ROM 타이틀을 한꺼번에 내놓았고, 12박13일의 짧은 방한기간 동안 공중파, 지 역민방, 케이블, 라디오프로그램의 야외·스튜디오 녹화 등으로 하루 2~3 군데의 방송출연, CF촬영, 패션쇼, 기자회견, 5번의 팬사인회, 영화·CF 출연계약 등 숨 쉴 틈 없이 누비고 다녔다. 방한 동안 그는 하루 4시간 정도밖에 잘 수 없었다고 한다. 스타우즈와 계약기간 2년에 2억원의 계약 금을 받고 입국한 이승희는 국내활동을 통해 10억원 가까운 돈을 벌어갔 다. 그의 방한중 연예활동을 대행하는 스타우즈쪽은 이승희의 신변안전에 대비, 10억원의 상해보험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이는 지난해 말 내한공 연을 가졌던 마이클 잭슨과 같은 금액이다. 비디오업계는 단역으로 출연 할 뿐인 이승희의 무명시절 작품 <에덴 퀘스트>를 수입했고, 인터넷 전문 업체 (주)예인정보는 지난 5월4일 이승희를 소개하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했다. 현재 인터넷의 이승희 고정팬은 약 1백만명으로 추산되며 전용 홈페이지(1백8개) 조회 빈도수는 국내 네티즌들의 ‘조회수 늘려주기’가 영향을 발휘한 탓인지 세계 1위로 올라갔다. 자생적으로 형성된 이승희 팬클럽도 10여곳에 달한다.
점잖은 한국 언론의 슬픈 자화상
163cm의 자그마한 체구에 광대뼈가 불거진 27세 여자의 무엇이 온 나라를 들썩이게 만들었나? 이승희는 우리에게 달콤하게 다가왔지만 이승희 신드 롬이 우리 사회의 감추고 싶은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점에서 쓴 맛을 던져주기도 했다. 이승희가 처음 인터넷을 통해 네티즌들의 침을 꼴 깍 넘어가게 했을 때 그는 섹시한 누드스타였다. 도색잡지에서 느껴지는 약간 음습한 분위기를 안은 채.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이승희의 캐릭터 는 조금씩 변해가면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그의 알몸 위로 ‘한국 을 빛낸 인물’, ‘의지의 한국인’, ‘인간승리’, ‘페미니스트’ 등의 두터운 옷이 자꾸만 걸쳐졌다. 그가 방한중 옷을 벗고 팬들 앞에 나타난 적은 물론 없었고 한 텔레비전 인터뷰에선 심한 노출과 관련한 질문에 대 해 국내 매니저먼트사쪽이 노골적으로 얼굴을 찌푸렸다.
이승희를 누드스타만으론 용인할 수 없는 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가증스 런(?) 위선의식이 물건너 온 이승희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순 없었다. 이승 희의 불우했던 어린시절, 소수민족의 어려움을 극복한 그의 역정, 자신의 직업에 대한 당당함 등은 누드스타 이승희의 이미지를 보완하는 형태가 아닌 주객전도식으로 이승희의 이미지를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의도적으 로. 그래서 그의 누드는 이젠 그의 옷 속으로 숨어버린다. 뒤로는 온갖 ‘호박씨를 다 까면서’ 겉으론 점잖은 체해야만 하는 우리 사회, 우리 언론의 슬픈 자화상이 이승희 거울을 통해 낱낱이 비쳐지는 순간이다.
16일 팬사인회에 참석해 그의 어깨에 팔을 걸치고 함께 포즈를 취하는 행 운을 누린 한 남성팬(27·회사원)은 이승희를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만면 에 가득한 미소를 채 거두지 못한 채 “자신의 직업에 대해 당당하고, 한 국국적과 이름을 그대로 지니고 있고, 순수하고…”라고 이야기했다. 그 의 누드에 대해선 아무런 언급도 없이. 그러다 자신의 이름을 묻자 손을 내저으며 “뭐 좋은 일이라고”라는 엉뚱한 말을 내뱉으며 뒷머리를 긁적 였다. 물론 자연스럽게 이름을 밝히고 자신의 견해를 당당하게 이야기하 는 팬들도 많았다. 하지만 아직도 당당한 이승희의 누드를 볼라치면 뒷골 이 근질근질한 비굴함이 존재하는 곳이 한국땅이다.
그래서 누드스타 이승희는 새로운 이미지를 부여받아야만 했던 것이고. 여기에 한국인 특유의 민족의식, 이국적인 것에 대한 동경 등이 묘하게 배합돼(문화평론가 이재현씨의 표현에 따르자면 ‘신토불이’와 ‘세계화 ’의 결합) 이승희는 새롭게 빚어졌다. 그의 부상은 재미교포라는 독특한 신분상황 아래에서 가능했던 것이다.
세계화로 구운 ‘누드 도자기’에 경탄
한국누드모델협회 하영은(29) 회장은 이승희 신드롬에 대해 “문화사대주 의 아닌가요?”라며 “이승희가 국내에서 활동했다면 아마 명함도 못 내 밀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승희의 활동분야는 연예인 프로 필 사진과 비슷한 장르인 그라비아 사진이고, 우리들의 누드는 예술사진 분야인데 오히려 예술분야에서 활동한 우리는 지난해 당국의 조사를 받아 야 했다. 국내 누드모델의 활동에 대해서는 외설 어쩌구 하면서, 왜 외국 에서 왔다고 하면 그렇게 호들갑을 떠는지 모르겠다”고 푸념섞인 지적을 했다. 외설시비로 심한 홍역을 겪은 마광수 교수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이승희가 당당히 벗고 자신의 누드를 예술이라고 주장한 것이 사람들의 호응을 받았다. 한국 바깥에선 이처럼 얼마든지 자유로울 수 있는데 왜 국내에선 위축돼야 하느냐”면서 “세계화와 전통수호라는 양다리를 걸쳐 야 살아남을 수 있는 이 이상한 구조는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고 말했 다. 마 교수는 또 “이승희를 계기로 국내에서도 이승희가 나올 수 있는 여건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마 교수의 주장처럼 이승희 신드롬이 한때의 신드롬이 아닌 우리 사회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려면 ‘누드’ 담론이 활발히 전개되면서 나 아가 개방논쟁으로까지 발화돼야 하지만 지금의 언론은 그의 개인적 스타 성에만 주목할 뿐이어서 우리 사회의 딱딱한 각질이 노랑나비의 날개짓으 로 깨지긴 어려울 것 같다.
문화평론가 정준영씨는 이승희를 둘러싼 최근의 언론 과열보도에 대해선 관대한 편이다. “스타에 대해 그 정도의 할애 또는 배려는 이전에도 있 어왔다. 최진실, 차인표, 서태지, 최근의 안재욱에 이르기까지. 이승희도 그 한 대상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우리 언론은 지금까지 누드=포르노로 봐왔던 이전 시각에 대한 재검토는 전혀 없이 이승희의 개인적 부분만 다 루고 있다. 이승희의 누드는 한국사회의 통념으로 봤을 때 포르노인데 그 포르노를 다른 것으로 치장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또 “스타의 중 요성은 크다. 이장호의 <무릎과 무릎사이> 이후 영화에서 여자배우의 상 반신 노출이 가능해졌고, 김종학·송지나의 <모래시계> 이후 우리 사회문 제를 대중문화가 다루지 못하던 금기가 깨졌다. 이승희 신드롬도 그러한 금기를 깨는 형태로 나아가야 하지만 지금의 논의는 그렇지 않은 느낌이 다. 우리 언론은 그의 누드성은 전혀 보여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문화평론가 이재현씨의 입장도 비슷하다. “이승희가 인터뷰에서 ‘나의 누드는 포르노가 아니라, 예술이다’라고 했는데 포르노와 예술은 모순되 는, 반대되는 개념이 아니다. 포르노 중에도 예술이 있을 수 있다. 그의 누드사진이 국내에서 출판될 땐 인터넷 누드완 달리 성기부분에 노랑나비 를 달아 헤어누드를 피했는데 한 마디로 웃기는 일이다.”
그의 누드사진집을 출판한 국내 출판사는 알아서 기었고, 속옷 CF촬영을 녹화한 광고기획사쪽도 당국의 눈치를 살피며 노출수위를 조정하고 있다. 이승희 주변에선 이승희를 제외하고 당당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승희 신드롬은 한편으론 최근 박정희 신드롬과 함께 과거나 바깥으로만 고개를 돌리는 우리의 심리상태를 보여주기도 했다. 이땅엔 더이상 기대할 인물 이 없기에 그런 걸까?
누드는 여전히 금기… 누가 당당할 수 있나
어쨌든 ‘노랑나비’는 많은 화제와 이야깃거리를 남긴 뒤 5월20일 오후 다시 LA로 폴폴 날아갔다. 거품은 신비감과 정비례하면서 곧 걷히겠지만 그의 신화는 잔상처럼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이승희는 또 ‘이승희 스타 만들기’에 과잉충성했던, 그 고마웠던 우리 언론에 의해 다음번엔 ‘이 승희 죽이기’라는 비수를 가슴에 꽂게될지도 모른다(벌써부터 조짐이 보 인다).
그런데. 5월19일 국내언론에 ‘97년 미스 유니버스 브룩 마헤알라니 리(2 6·미스 USA)는 한국계 이민3세’라는 기사가 실렸다. 한국 이름은 ‘이 순희’라고. 불행히도 이순희는 ‘누드’ 모델은 아니다.
권태호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