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
1997년05월29일 제 159호 한겨레21

패거리는 이제 그만!

정인숙

직장이 지방에 있어서 기차를 자주 이용하는 편인데, 혼자 기차를 타는 사람 처지에서 곤혹스러운 경우를 여러 번 겪는다. 우선 기차표에 적힌 좌석번호에 앉아 목적지까지 가기 힘들 때가 많다. 철도청 관계자가 이 글을 본다면 ‘그게 무슨 소리인가. 엄연히 기차는 지정좌석제인데’ 하 고 의아해할지 모르겠다. 사정은 이렇다. 짐을 양손에 들고 좁은 기차 안 통로를 지나 간신히 내 자리를 찾아가면 번번이 누군가 앉아 있다가, 옆 사람과 일행이어서 같이 앉아 가려 하니 자리를 바꿔달라고 한다. 두 좌 석이 붙은 차표를 사지 못한 일행이 따로 떨어진 좌석표를 사서 일단 어 느 한편 의자에 앉은 뒤 자리 임자가 찾아오면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러 면 혼자인 나로서 둘이 함께 이야기하며 가겠다는 사람들에게 야박하게 안 된다고 할 수가 없다. 할 수 없이 내 자리를 내주고 상대방이 알려주 는 좌석을 찾아가는데 1호차나 2호차에서 6호차나 7호차량쯤으로 가게 되 는 경우엔 은근히 화가 난다. 그 긴 열차의 좁은 통로를 따라 무거운 짐 을 다시 들고 통로에 있는 사람들을 헤쳐가며 가노라면 애꿎은 ‘우리나 라 사람타령’이 나온다.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렇게 끼리끼리 움직이 기를 좋아하는 걸까. 그냥 자기 자리에 앉아서 가면 될 텐데. 기차여행 몇시간 동안 따로 떨어져서 가면 어디가 덧나나.

더 난처한 경우도 있다. 기차 좌석은 기차가 진행하는 방향을 보고 둘씩 앉게 돼 있다. 물론 4명의 일행이 있으면 의자를 젖혀 둘씩 마주보고 앉 을 수도 있다. 문제는 일행이 셋인 경우다. 일행 셋이서 의자를 젖혀놓고 마주앉아 있는데 그 빈자리 중의 하나가 내 자리인 경우 정말 난감하다. 그 일행이 남성들인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그렇게 의자를 놓게 되면 여 간 조심하지 않고선 무릎이 맞닿고 시선두기가 불편해진다. 그래서 몇 차 례 곤혹을 치른 이후부터는 안 되겠다 싶어 ‘의자를 제자리로 돌려놓고 갔으면 하는데요’라고 정중하게 말하는데, 그때마다 상대편은 기다렸다 는 듯이 얼른 ‘우리가 일행이라서요’라며 별로 미안한 기색도 없이 그 대로 앉아 있는 것이다. 그쯤되면 나도 심사가 뒤틀려서 정색을 하고 ‘ 나는 일행이 아닌데요’라고 말을 되받게 된다. 그러면 상대방은 금방 ‘ 뭐 이런 사람이 있느냐’는 낯색이 되어 위아래를 쳐다보며 그래도 계속 앉아 있거나 아니면 마지못해 일어나서 의자를 제 위치에 놓으며 입 속으 로 꼭 뭐라고 중얼거린다.

한두번은 그네들의 즐거운 여행 기분을 배려해서 동의해주고, 상대방이 노약자인 경우엔 흔쾌히 그렇게 하기도 한다. 서 있는 사람이나 노약자가 특히 많은 통일호를 탔을 땐 내 자리에 노인이 앉아 있는 경우 ‘제자리 인데요’라는 말도 못 꺼내고 그냥 옆에 서 있을 때도 있다. 그러나 편한 자세로 갈 수 있는 것을 번번이 생판 모르는 사람과 무릎을 맞댈 만큼 가 까이 앉아야 하고, 원치 않는 남의 대화를 면전에서 듣고 있어야 하며, 자리를 바꿔주고 나서 달리는 기차통로를 비틀거리며 걸어가야 하는 일 등은 정말 유쾌한 일이 아니다. 일행끼리 좋자고 한사람에게 불편을 강요 하는 것은 다수의 횡포가 아닐까.

여럿이면 목소리가 커지고 하나쯤은 무시해버리는 태도는 어쩌면 수세기 동안 뿌리내린 농경사회의 가부장 문화에서 나온 전통일 수 있다. 아니면 다수결의 민주주의 논리가 잘못 이해된 나머지 생겨난 소수 폄하의 가치 관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건 확실한 것은 ‘하나’를 무시하고 ‘소수’ 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회적 태도가 개인에게 불편함과 어려움을 준 다는 점이다. 어른들도 이제 ‘뭉쳐야 산다’를 외치기보다 ‘혼자서도 잘해요’를 따라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공공장소에서 ‘혼자’인 사람 을 배려하는 성숙된 시민의식이 진정으로 아쉽다.

정인숙
1960년생, 한국외국어대 신방과 졸,
언론학 박사(뉴미디어정책 전공),
충 남산업대 방송산업학과 교수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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