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정성 큰 기쁨
1997년05월29일 제 159호 한겨레21

미역국보다 따뜻한 아내의 생일 편지

신승훈(30)씨 부부는 조금 특이한 맞벌이다. 남편인 신씨는 공사에 근무 하다 보니 출·퇴근 시간이 비교적 일정하다. 반면 결혼 전부터 기업 사 보를 기획·편집하는 일을 해온 아내의 경우, 출근 시간은 정확하지만 퇴 근 시간은 늘 고무줄 같다. 대개는 아내쪽의 출·퇴근 시간이 일정한 여 느 맞벌이 부부와는 생활리듬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 가운데 결혼 후 첫 신씨의 생일이 다가왔다. 지난해 1월이었다. “ 이제 아내가 끓여주는 미역국을 먹을 수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어머니 가 끓여주던 미역국과는 맛과 기분이 색다르잖아요. 또 생일날은 평소보 다 더 특별한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은근히 기다려졌습니 다.”

아내는 생일 전날 밤 전화를 걸어 밤샘작업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새벽 에 일찍 들어가 미역국은 꼭 끓여주겠다고 약속했다. 저녁에는 근사하게 외식을 하자고 덧붙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미역국에 대한 희망은 유효했 다. 고생하는 아내가 측은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데 아침에 깨어보 니 부엌이 조용했다. 아내가 돌아와 있지 않은 거였다. “실망하는 건 당 연하죠. 결혼 후 처음 맞는 남편의 생일날, 미역국도 안 끓여주는 아내가 서운하기만 했습니다.”

아내는 아침에 가까운 전철역에서 만나자고 했다. 만나기는 했지만, 양쪽 볼은 여전히 잔뜩 치민 화로 부풀어 있었다. 게다가 아내는 편지 한장을 손에 쥐어주고는 서둘러 마감이 기다린다며 일터로 되돌아가는 게 아닌가 .

그러나 출근하면서 아내의 편지를 읽어내리는 동안 신씨의 얼굴은 속좁음 에 대한 미안함으로 화끈 달아올랐다. 꽃무늬 편지에는 미역국을 끓여주 지 못한 아내로서의 미안함, 남편에 대한 사랑, 아름다운 미래를 위해 지 금의 고생을 참자는 내용이 가득 담겨 있었다.

밤샘일을 하면서도 틈을 내 편지를 썼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했다. 피 곤하고 지친 모습의 아내를 위로하지는 못할망정, 미역국에 연연했던 모 습이 부끄러워지기까지 했다. “‘미역국 사건’은 저에게 많은 것을 깨 닫게 했습니다. 아내에게 ‘슈퍼우먼’을 기대하다 보면 맞벌이 부부 사 이에선 갈등이 끊이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게 됐지요.” 신씨는 그날 저 녁, 파김치가 돼 돌아온 아내를 한참이나 꼭 안았다.

이용인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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