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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
1997년05월29일 제 1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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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서울의 명물로 지식의 보고 노릇을 톡톡히 하던 청계천 헌책방이 빛을 잃어가고 잇다. 헌책방이 있던 자리는 호사스런 스포츠용품점이 메우고 있다.)
40여년 가까이 서울의 명물로 자리잡았던 청계천 헌책방이 근근히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어깨를 맞대고 아득하게 도열해있던 3~4평짜리 헌책방들 은 합해지거나 쪼개졌고, 그도 아니면 아예 사라졌다. 청계 고가도로 밑 1km에 이르는 바로 그 거리에는 이제 화려함을 뽐내는 스포츠용품 전문점 들이 한집 건너마다 들어서고 있다. 헌책방이 엉덩이만 걸치고 간신히 끼 어 앉은 모양새다.
헌책방이 사라지는 이유는 물론 헌책이 제 대접을 못받기 때문. 인도를 향해 진열해 놓은 책들은 대부분 겉표지가 반들반들하다. 이곳에 몰려 있 는 50여개의 책방 가운데 순수하게 중고서적만 취급하는 곳은 20여 군데 에 불과하다. 서너군데 가게는 아예 새책만 판다. 주인이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 빼곡이 꽂혀 있는 책들 가운데서 비밀스럽게 책 한권을 꺼내, 손 으로 먼지를 툭툭 털어내는 모습은 이제 기억 속으로 사라져간다.
고객 이탈·대형서점 출현에 폐업 속출
청계천 일대에 헌책방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청계천을 복개하기 전인 지난 59년부터다. 냇물이 졸졸 흐르는 하천부지 양쪽에 20여개의 좌판점 들이 헌책을 놓고 팔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청계천 일대는 헌책방이 들어설 수 있는 천혜의 지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지금의 동대문운동 장은 고속버스터미널이었고, 운동장이 내다보이는 거리의 끝자락은 1호선 전차의 종점이었다. 손님이 몰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상권으로서도 손색이 없었다. 청계천을 끼고 서울대 문리대와 법대 의대, 성균관대 등 대학들이 가까이 자리잡고 있었다. 중대 사대부고, 동부여상 등 중·고교도 10여곳에 달했다. 신문지도 구하기 어려울만큼 종이가 귀 하던 시절이니 책이나 참고서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대물림받을 책이 없 으면 헌책이라도 사야 했다. 그렇게 70년대 후반까지 헌책방은 최고의 사 랑과 호황을 누렸다. 점포만 해도 1백50여개에 이르렀다.
헌책은 부르는 게 값이었다. 주머니가 가벼운 손님들은 값을 깎기 위해 주인의 바짓자락을 잡고 통사정을 하곤 했다. 헌책방 주인의 어깨에 힘이 들어갔던 시절이다. 아버지로부터 헌책방을 물려받은 홍문관 주인 임원영 (48)씨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아버지와 함께 밤새 교과서나 참고 서의 연필자국을 지웠지. 나무조각에 풀을 묻혀 책장이 뜯겨지거나 헤진 부분을 조심스럽게 붙이곤 했어. 조금이라도 이윤을 더 남기기 위해서지. 고생은 했지만 손님들에게는 당당했어.”
헌책방 주인보다 더 위세를 부렸던 사람들은 헌책을 수집하는 중간상인이 었다. 중간상인을 잡기 위해 서점들이 서로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고 한다 . “중간상인들과 같이 저녁 식사도 하고, 술도 사먹이곤 했지. 신학기를 대비해 헌책을 많이 들여 놔야 했거든. 신학기만 되면 두달 동안은 그 좁 은 책방에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붐볐어. 기다리다가 그냥 돌아가는 학생들도 수두룩 했지. 지금은 일주일 정도만 잠깐 붐비면 땡이야.”
80년대 후반 들어 수요가 서서히 줄기 시작했다. 종이는 더이상 귀한 물 건이 아니었다. 헌책을 사보는 것은 학생들 사이에서 창피한 일로 통했다 . 점점 돈벌이가 시원치 않자 폐업이 잇따랐다. 그렇게 점포수가 줄어들 기 시작해 이제 불과 50여개밖에 남지 않았다. 그나마 대부분이 헌책과 새책을 같이 판매하고 있다.
헌책방의 쇠락은 우리 사회의 물질적 발전과 궤를 같이 한다. 80년대 중 반 교보, 종로 등 대형서점의 출현은 청계천 헌책방의 쇠락을 알리는 신 호탄이었다. 새책의 홍수와 함께 헌책의 퇴장을 알리는 전주곡이었던 셈 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곳 서점상들은 복사기의 대중화를 결정적인 쇠 락의 원인으로 꼽는다. 굳이 헌책을 살 필요없이, 친구들의 책을 복사하 면 됐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90년대 들어 수시로 교과서가 바뀌는 바람 에 헌책의 효용가치가 사라졌다. 대학교재도 수시로 개정판이 나왔다. 참 고서와 대학교재의 수명이 1~2년을 넘지 못하니, 재고만 쌓여갔다.
헌책방의 장사밑천인 헌책을 구하기도 힘들어졌다. 손수레를 끌고 주택가 골목을 돌며, 강냉이나 엿을 주고 헌책을 수집하던 고물상들이 없어진 것 이다. 이사를 할 때 내놓는 헌책은 어느새 재활용 쓰레기로 전락했다. 헌 책들은 막바로 파지공장으로 직행한다.
그렇지만 특별한 자구책이 있을 리 없다. 애초 영세상으로 출발한 헌책방 주인들은 가게에 신규 투자할 필요를 못느낀다. 그저 밥벌이만 하면 그만 이다. 무엇보다 사회의 커다란 변화를 거스르기가 힘겹다. 지난 90년 초 부터 점포들이 하나둘씩 기술서적, 종교서적, 잡지, 참고서 식으로 전문 화를 시도한 것이 거의 유일한 묘책이다. 그러나 그런 몸부림 역시 신통 치는 않다고 한다.
청계서적도 그 가운데 하나다. 기술서적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이곳은 3분 의 1 가량이 새책이다. 그러나 대형서점과 경쟁하기 위해 책값의 10%를 할인해 주다 보니 이윤이 박할 수밖에 없다. 주인 윤기현(53)씨는 그래서 욕심을 버린지 오래다. “새책은 구색을 맞추기 위해 들여다 놓은 것뿐 입니다. 손님들이 새책을 사러왔다가 헌책을 사갈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이랄까요. 실제로 10% 정도 싸게 책을 사려고 여기까지 나오는 사람 은 없어요. 대형서점만큼 책의 종류가 다양한 것도 아니고요.”
전문서점으로 탈바꿈해도 신통치 않다
개중에는 고집스럽게 헌책만 취급하는 사람도 있다. 상현서림은 순수하게 헌책만 팔고 있는 몇 안 되는 서점 가운데 하나이다. 주인 이상화(60)씨 는 헌책과 새책은 함께 할 수 없는 사이라고 믿는다.“새책은 마진이 없 는 데다가 반품이 안돼 재고로 쌓이면 그냥 비싼 휴짓조각에 불과합니다. 더욱이 치명적인 것은 헌책방에서 새책을 팔면 역시 헌책 취급을 당한다 는 겁니다.” 이씨는 헌책으로 승부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 역시 녹녹 치 않다. “남이 쉽게 구입할 수 없는, 70~80년대에 절판된 책을 갖춰놓 으려고 애를 씁니다. 아주 전문적이거나 특수한 분야의 책도 가능한 많이 구입하려고 하죠. 학생들보다는 교수, 석·박사 위주의 고객들을 끌어 모 으겠다는 전략입니다. 그렇지만 헌책 구하기가 쉽지 않아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아요.”
50대가 대부분인 서점 주인들은 아직은 버틸 만하다고 한다. 자식들도 웬 만큼 성장했고, 그 나이에 한달에 1백만~1백50만원 벌이도 쉽지 않기 때 문이다. 무엇보다 헌책 속에 파묻은 젊음이 그들을 붙잡는다. 그러나 언 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청계천 헌책방은 서서히 역사책 속으로 밀려가고 있다.
이용인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