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독자
1997년05월29일 제 159호 한겨레21

소쩍새 마을 총무부장 묘전 스님

95년 초여름 후원금 착복과 원생 성추행 등 입에 담기도 거북한 사건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소쩍새 마을은 지금도 여전히 치악산 자락에 둥 지를 틀고 있다. 물론 당시 사건의 장본인들은 없다. 남루했던 비닐하우 스도 말끔한 조립식 건물로 바뀌었다. 사건 뒤 사회복지법인 승가원(원장 보각 스님)이 운영을 맡으면서 소쩍새 마을은 부처님의 자비가 실천되는 도량으로 제모습을 갖춰갔다.

“음지가 있으면 양지가 있는 법이고 비록 한때 음지였다고 해도 다시 해 를 만나면 양지가 되는 법이죠.” 소쩍새 마을의 총무부장 묘전 스님(39) 의 목소리가 치악산 공기만큼이나 맑다. 승가원이 소쩍새 마을을 인수할 당시 1백17명의 원생들은 이제 2백4명으로 늘었다. 이 식구들을 먹이고 입히고 치료하고 가르치는 데 매월 8천여만원이 든다. 방생을 떠나는 길 에 들러주는 전국의 불자들이 모아주는 후원금이 한달 생활비를 마련하는 데 큰몫을 한다. 사건이 있기 전까지 소쩍새 마을을 지탱해주던 많은 후 원자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 손길을 끊었다. “아무래도 어렵겠지요. 얼마 나 분했겠습니까?” 부족한 생활비보다는 한 사람의 탐욕으로 상처를 입 은 많은 사람들의 자비심이 스님에게는 더 걱정이다.

온전치 못한 식구들이 돌아다니면 장사가 방해된다는 입구 유원지 상가들 의 걱정에 비록 높지는 않지만 철책으로 담도 둘렀다. 그러나 하루에도 몇번씩 옷을 망치는 원생들의 세탁으로 맑은 계곡물이 오염된다는 항의에 는 속수무책이다.

착하디 착한 자원봉사자들을 질리게 만드는 ‘똥과의 전쟁’으로 아침을 맞는 소쩍새 마을, 그러나 묘전 스님에겐 도무지 걱정이 없다. “97년까 지만 시설을 사용하기로 했어요. 국립공원 부지라 여러 제약도 많고요. 이전되면 건물도 깨끗이 짓고 물리치료실이며 재활교육실 등 부대시설도 늘려야지요.” 물론 스님의 꿈이 이뤄지기에는 남은 시간이 너무나 짧다. 다시 돌아오는 후원자들과 늘어가는 자원봉사들이 소쩍새 마을의 부활을 꿈꾸게 하는 힘이다.

“물론 후원금을 보내는 일도 중요하지요. 그러나 자신이 행한 일에 책임 을 지는 일은 더욱 중요합니다. 자신이 후원하는 곳이 어떤 곳인지 한번 쯤 와서 보고 확인할 필요가 있어요. 양지가 음지가 되지 않도록 지키는 길이기도 하죠.” 속세를 바라보는 창이라고는 <한겨레>와 <한겨레21>뿐 이라는 스님이 소쩍새 마을에 자비의 손길을 펴는 세간의 부처님들에게 거는 바람이다(소쩍새 마을: 0371-762-9870).

원주=윤승일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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