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1997년05월29일 제 159호 한겨레21

탈모의 비밀 벗겨진다

(사진/탈모의 원인이 과학적으로 해명되면 대머리에 대한 우려를 덜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대머리는 머리카락 이식수술과 `기적의 발모제' 등에 의존할 뿐이다.)

고민거리 대머리의 진짜 원인은 무엇일까. 또 어떻게 하면 이 ‘병’을 ‘완치’할 수 있을까? 최근 생물학계에서 이 ‘탈모의 비밀’에 한발짝 다가선 연구결과가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이 연구를 요약하면 “머리카락의 성장은 모낭이 아닌 모낭 위쪽 어떤 곳 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모낭에 대한 남성호르몬의 작용이 탈 모현상을 일으킨다는 기존 ‘호르몬설’을 뒤집는 것이어서 이후 학계의 논란이 예상된다.

외신들에 따르면, 최근 탈모현상은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에게도 큰 고민 거리로 떠올랐다고 한다. 4년 전 숱 많은 곱슬머리로 미 백악관에 들어섰 던 클린턴의 머리카락이 요즘 눈에 띄게 희어지고 숱마저 크게 줄었다는 것이다. 보는 각도에 따라선 분홍색 두피가 그대로 드러날 정도란다. 이 에 따라 클린턴 대통령 진영은 ‘대머리 현상’이 클린턴 대통령의 상징 인 ‘젊음’을 훼손할까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모낭 위쪽 어딘가에서 모발 성장 주도”

머리카락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비단 클린턴 대통령만은 아닐 것이다. 사람의 털은 동물과는 달리 생물학적 기능과 함께 미적·사회적·정신적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털 중 머리카락은 특히 이런 기능 이 강하다. 따라서 머리카락이 빠지는 대머리 현상에 대한 우려는 ‘거의 모든 사람의 일치된 고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국내 40세 이 상 남자 6백70만명 중 1백만명이 대머리이며, 이 중 탈모가 심한 경우는 30만~50만명으로 추산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머리카락과 관련한 고민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대머리 연구의 수준은 이런 높은 관심을 못쫓아간다는 것이 과학계의 고민이다. 현재 대머리 연구결과 중 가장 많은 공감을 받 고 있는 ‘호르몬설’을 살펴보자. 이 설에 따르면 탈모 현상은 유전적으 로 남성호르몬과 결합할 소질을 타고난 모낭이 원인이다. 다시 말해 모낭 에 있는 남성호르몬 수용체가 사춘기 이후 남성호르몬과 결합하면서 모낭 이 퇴화하고, 머리털이 가늘어지면서 성장이 느려져 결국 머리카락이 빠 지게 된다는 것이다.

또 일부에서는 대머리의 발생빈도가 종족에 따라 차이가 난다는 점을 들 어 ‘유전설’을 제기하기도 한다. 즉 백인은 대머리 비율이 중년남자의 62.5%로 매우 높은 반면 황인종은 15%로 낮은 것은 바로 대머리가 유전적 원인에서 일어나는 증거라는 것이다. 흑인 성인의 대머리 비율은 이 둘 사이인 25%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유전설’이나 ‘호르몬설 ’은 단지 ‘남성호르몬과 결합할 소질’이나 ‘통계 수치’만을 언급할 뿐 탈모 메커니즘을 제시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외지에 따르면, 최근 미국과 프랑스 분자생물학자들은 모낭의 남 성호르몬 수용체를 대머리의 핵심원인으로 파악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견 해를 발표했다. 이들 분자생물학자들은 머리카락의 성장과 관련된 것은 모낭이 아니라 모낭 위 어떤 부분이라고 보고 있다. 즉 두피나 머리카락 으로 성숙할 가능성이 있는 세포군이 모낭 위 어떤 지점에 모여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에 따라 대머리의 원인에 대해서도 기존 ‘남성호르몬 설’과 다른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들 과학자들은 머리카락 성장의 일정 시기엔 반드시 외피의 상층부에서 구근(球根)으로 이들 성장 가능 세포가 이동한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대머리들에게서는 이 세포들의 이동이 이루 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런 현상이 세포들이 가지고 있는 화학 적 신호들에 혼란이 생겨 일어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연구는 대머리들에게 커다란 희망으로 들린다. 왜냐하면 대머리도 다 시 머리카락이 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가설에 따르면 탈모증은 일종의 자기면역 질병이 된다. 자기면역 질병 이란 면역체계가 자신의 몸의 조직을 잘못 공격하는 것을 일컫는다. 즉 대머리는 성장 가능 세포군이 이런 자기면역 질병으로 제기능을 못하는 상태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머리가 된 사람도 면역체계를 정 상화한 뒤 머리카락 생산 세포들을 번식시킴으로써 머리카락이 재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성장 가능 세포군 위치 파악이 열쇠

물론 이 가설들은 아직 가설 수준에 그친다. 우선 이들 성장 가능 세포군 이 정확히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분자생물학자들 사이에 일치 된 견해가 없다. 어떤 이는 이 세포군이 모낭 바로 위에 위치한다고 보는 반면, 또다른 이들은 이 세포군이 그 보다는 더 높게 위치하고 있을 것이 라고 진단한다. 또 이들은 아직 이들 성장 가능 세포군이 어떤 과정을 거 쳐 머리카락으로 변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메커니즘도 밝혀내지 못하고 있 다.

하지만 성장 가능 세포군에 대한 발견은, ‘기적의 발모제’ 등에만 맡겨 오다시피한 대머리 문제를 앞으로는 과학계에서 좀더 진지하게 끌어안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이들은 내다보고 있다.

김보근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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