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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
1997년05월29일 제 1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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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직장인들 사이에 생식의 효과가 널리 알려지면서 아침식사 대용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직장인의 하루는 늘 피곤하다. 밤늦게까지 술자리에 참석하고 아침에 일 어나면 입안이 까끌까끌해 밥맛이 없다. 그러다 보면 아침식사를 거르는 게 다반사다. 그런 날이 이어지면 병이 생긴다. 딱히 아픈 곳이 없는 데 도 무기력해지고 나른해지는 만성피로에 시달리는 것이다. 젊은 나이에 무슨 보약이냐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지만 마음에는 불안이 쌓여간다. 이런 직장인들 가운데 생식을 아침식사 대용으로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 다. 물론 직장생활하면서 세끼 모두를 생식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점심이나 저녁은 동료나 거래처 사람과 같이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아침만은 꼭 생식을 한다. 94년부터 서울 사당동에서 생식 원을 운영하고 있는 박경현(34)씨는 단골손님 80여명 가운데 20~30여명이 직장인이라고 말한다. “처음 개업할 때만도 해도 직장인들이 거의 없었 어요. 있다해도 당뇨나 심장병 같은 큰병에 걸려서야 찾는 사람들이었습 니다. 그런데 지금은 특별히 아픈 곳이 없는데도, 생식을 하겠다는 직장 인들이 많습니다.”
전문회사 통해 기수련자 등에게 보급
원래 생식은 단전호흡을 하는 사람이나 수도승 사이에서 알음알음 전해져 내려왔다고 한다. 순수한 채소와 곡식, 나무열매 등을 자연상태에 가장 가까운 형태로 섭취하면, 고도의 기(氣)를 수련할 수 있다는 ‘비법’이 전해져 내려왔다는 것이다. 사실 건강에 아무리 좋다고 해도, 일반인들이 날 것을 먹기란 쉽지 않다. 볶거나 쪄서 먹는 화식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 이다. 생식을 처음 하면 입안이 꺼끌꺼끌하기도 하지만, 비린내가 심해 비위가 약한 사람은 입에 대지도 못한다.
생식이 대중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89년부터다. 생식재료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회사가 설립돼 보급에 나선 것이다. 이 회사에서는 콩 , 옥수수, 보리, 들깨 등 날곡류와 과일, 해초류 등을 자연 그대로 햇볕 에 말린 뒤, 분말로 만들어 보급하기 시작했다. 물이나 우유에 타먹기 쉽 게 한 것이다. 사람에 따라선 흑설탕이나 죽염을 타서 약간 간간하게 해 서 먹기도 한다.
생식은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망명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 난 4월20일 서울공항에 모습을 드러낸 황씨는 74세의 노구에 어울리지 않 게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는 젊었을 때부터 솔잎 생식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직장인들 사이에선 생식의 효험에 대한 관심이 열풍처럼 번졌다.
생식은 한때 인기를 끌었던 선식과는 다르다. 재료는 같지만 불기운을 일 절 빌리지 않는다. 선식은 재료를 볶거나 쪄서 가루로 만든 것이지만, 생 식은 자연상태 그대로 먹는 것이다. 그만큼 재료의 영양이 파괴되지 않고 고스란히 살아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생식인구는 대략 10만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이 가운데 아직도 절반 정도는 단전호흡이나, 기수련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환자나 직장인들이 나머지 절반 가량을 차지한다. 하 지만 중병에 걸린 환자를 제외하고, 세끼 모두를 생식으로 먹는 사람은 드물다고 한다. 대부분이 아침식사만 생식한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94년 말부터 생식의 매출이 매년 40~50%씩 신장하고 있다. 이 가운데 대부분은 경제적 여유와 건강에 관심이 많은 직장인이라고 보면 된다. 특 히 대덕 연구단지 일대의 정신 노동을 하는 연구원들이 아침식사를 생식 으로 많이 하고 있다”고 말한다.
특유의 밋밋한 맛 견뎌내기 쉽지 않아
생식은 특히 신경불안이나 당뇨에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직장에 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직장인들로선 유혹을 느낄 법하다. 95년부터 아 침식사를 생식으로 대신해 왔다는 선경연수원 권태훈 대리(33)는 “신경 이 예민해지고 이유없이 짜증이 늘면서 생식을 하게 됐다. 2년째 아침식 사를 생식으로 하고 있는데, 느낌뿐인지는 모르겠지만 몸이 가쁜해지는 것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중도에서 생식을 포기하는 이들도 많다. 아무리 우유나 물에 타서 먹더라도 생식 특유의 밋밋한 맛에 익숙해지기란 쉽지 않다. 한 생식원의 경우, 2백명이 시작했으나 지금은 70~80명만 남았다고 한다. 몸에 좋은 약은 역시 입에 쓴 것같다.
이용인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