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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1997년05월29일 제 1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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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새싹들을 위해 투자를!"
정부 교육예산 가운데 유아교육예산의 비중은 지방재정교육금을 합쳐 0.9%에 그치고 있다.)
서울 송파구 방이동에 사는 민희(6)는 하루가 무척 바쁘다. 아침 먹기 가 바쁘게 동네 사립유치원에서 나온 승합차에 올라탄다. 오전만 하는 유 치원의 원비는 3개월치가 50만원. 입학때는 입학금과 간식비, 버스비, 교 재비 등을 포함해 모두 1백만원을 냈다. 여기에 소풍이나 견학 등 각종 잡비가 수시로 들어간다.
유치원은 없고 학원은 많다
유치원이 끝났다고 놀 수 있는 게 아니다. 집에서 점심을 먹고 나선 어린 이전문 영어학원으로 달려간다. 일주일에 다섯번이다. 외국인 강사의 지 도에 따라 간단한 단어와 말을 배우는데 월 35만원이다. 영어 학원이 끝 나면 다시 한달 8만원 하는 피아노학원으로 가 1시간여 동안 피아노를 배 운다. 한달 동안 민희의 교육비로 들어가는 돈은 약 70만원 정도. 중산층 이라 해도 만만한 돈이 아니다.
쌍문동에 사는 다은(5)이도 하루가 빠듯하기는 마찬가지다. 어른 못지않 다. 지난해 다니던 집근처 선교원을 그만 두고 올해 초부터는 사립유치원 에 다닌다. 유치원에는 입학금 10여만원에 3개월치 원비가 39만원이다. 다은이도 유치원이 끝나면 역시 학원 순례를 시작한다. 월·수·금요일에 는 월 15만원짜리 어린이 영어학원에 나간다. 주2회 미술학원이 월 4만원 , 주2회 피아노 개인지도에 10만원이 든다. 일주일에 한번씩 하는 음악놀 이교육은 4만원이다. 집에 돌아오면 월구독료 2만원짜리 학습지가 기다린 다.
다은이 어머니 윤혜영(31)씨는 “유치원이 교회선교원보다 비싸기는 하지 만 교육내용이 더 좋은 것 같고 초등학교 입학해 적응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 같아 유치원에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교육부가 관할하고 있는 3∼5세 유아에 대한 정식 교육기관은 유치 원이다. 우리나라 유치원은 지난해 기준으로 모두 8천9백여곳 정도로, 모 두 55만2천여명이 다니고 있다. 이는 전체 유아교육 대상자 2백여만명의 27%에 불과하다. 나이별로는 3세가 8.7%, 4세는 26.8%에 그치며, 5세가 돼야 42.2%로 올라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 취원율인 3세 40.2%, 4세 64.3%, 5세 70.4%에 크게 뒤지는 수치다.
유아교육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떨어지는 것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교육 열이 높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우리나라 부모들이 아이들을 그냥 놀 릴 리 만무다. 유치원에 다니지 않는 어린이라도 거의 대부분 어떤 형태 로건 강도높은 교육을 받고 있다. 유치원 옆에 어린이집, 그 옆에는 각종 학원이 들어서 있는게 우리나라 주택가나 아파트 상가의 일반적 풍경이다 .
서울 도화동에 사는 동환(5)이는 아침 일찍 출근하는 엄마의 손을 잡고 집 근처 어린이집으로 간다. 평일의 경우 오후 7시까지 있을 수 있는데 점심과 2차례의 간식을 제공한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곳이라 월 10만3천원 정도로 싼 편이다. 동환이는 그러나 오후 3시면 어린이집을 나 와 같은 아파트단지에 있는 가정탁아모 집으로 향한다. 생후 6개월 때부 터 다니고 있는 이집은 하루 9시간 기준에 월 45만원이지만 오후에 가기 때문에 30만원만 주고 있다. 어머니 김화영(34)씨는 “다른 아이들처럼 피아노나 영어학원에 보내고 싶지만 데리고 왔다갔다하며 챙겨줄 수 없어 못보내고 있다”며 “친구들과 밖에서 뛰어놀지 못하고 집안에만 갇혀있 는게 안쓰럽다”고 말했다.
“재능교육 필요해 학원 택했다”
서울 강남에 사는 네살바기 동우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다니지 않는다 . 학원가기도 바빠서다. 매일 아침 피아노학원에서 1시간 동안 피아노 공 부를 마친 뒤 다시 미술학원으로 간다. 집에 와 점심을 먹고 나면 한글과 산수 학습지를 푼다. 1주일에 한차례씩 또래 어린이들과 외국인 선생님에 게 영어 그룹과외를 받고 영어과외가 없는 날엔 집 근처 스포츠센터에서 수영강습을 받는다. 동우군의 어머니 김아무개(32)씨가 과외 교육에 지출 하는 돈은 한달에 42만원(피아노 8만원, 미술 5만원, 한글방문학습 주1회 8만원, 산수학습 주 1회 8만원, 영어 그룹과외 주1회 8만원, 수영 주3회 5만원). 김씨는 “유치원이 교육상 좋은 것 같긴 하지만 어릴 적부터 재 능교육을 시킬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학원을 택했다”며 “내년부터는 유 치원에도 보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유치원의 낮은 취원율의 틈새를 비집고 어린이집이나 각종 학원 등이 유아교육의 큰 부분을 떠맡고 있다. 어린이집과 놀이방 등 0∼5세 영유아 보육시설에는 모두 40여만명의 어린이들이 다니고 있다.
한국학원총연합회 산하 미술교육협의회가 최근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유 아교육 총대상아동인 2백여만명 가운데 유아전문 미술학원에서만 전체의 21.89%인 44만6천여명을 가르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한 사설 입시전문기관의 조사에서도 자녀를 유치원 영재교육원 어학 원 등 유아 교육기관에 보내는 경우가 65.5%, 유아교재를 정기구독하는 경우가 89.2%나 됐다. 유아자녀의 교육을 위해 한달에 투자하는 돈은 15 만∼20만원(35.7%)과 20만∼25만원(27.8%)이었으며, 월 30만원 이상 투자 하는 경우도 12.7%에 이른다. 결국 거의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취학전 꼬 마들에게 한가지 이상의 교육을 시키고 있는 셈이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 만 우리나라 사교육비 규모가 연간 20조원으로 추정되고 있고 유아 사교 육에만 4조~5조원이 들어가는 것으로 짐작된다.
이처럼 공적인 성격의 유치원보다 사설유아교육기관에 대한 의존도가 높 은 것은 현행 유아 교육체제가 학부모들의 욕구를 전혀 채워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선 국가가 운영하는 공립유치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반면 유치원 중 압도적 비율을 차지하는 사립유치원의 교육비가 너무 비싼 데 첫째 이유가 있다. ‘유아교육 공교육체제실현을 위한 범국민연대모임’ 이 최근 전국 성인남녀 7백여명을 상대로 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3. 8%가 “유아 사교육비가 부담스럽다”고 답했으며, 72.3%는‘정부의 유아 교육 재정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답했다. 실제로 지난해 정부의 교육예 산 가운데 유아교육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방재정교육금을 합쳐 0.9%( 1천4백40억원)에 그쳤다.
우리나라 전체 유치원 8천9백여곳 가운데 국·공립은 4천3백70여곳, 사립 이 4천5백60여곳으로 비슷하다. 그러나 원아기준으로는 국공립에 11만6천 명 정도이고 나머지 43만6천여명이 사립에 다니고 있다. 결국 우리나라 전체 유아의 21%를 정식 유아교육비를 정부로부터 한푼도 지원받지 않는 사립유치원이 떠맡고 있으며, 그나마 국가적 혜택을 받는 공립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는 6%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사립의 경우 학교법인으로 유치 원을 운영하고 있는 곳은 1백여곳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모두 일종의 개인 사업으로 운영되고 있다. 대부분 초등학교 병설인 국공립 유치원의 원비 은 월 4만3천원 수준인데 비해 사립의 경우 월 15만원 수준으로 3배 이상 많다.
‘반일반 운영’도 교육비 증가 원인
(사진/"남의 아이들도 배우는데..." 영어학원을 따로 다니는 것도 큰 가계압박 요인이다. )
사립유치원은 물론 비싼 유치원비로 부모들의 허리를 휘게 하긴 하지만 그들 나름의 고충이 없는 것은 아니다. 유아교육의 상당 부분을 떠맡고 있는데도 정부의 재정지원은 전혀 없어 운영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이다. 철저히 수익자 부담원칙으로 운영되는 유치원의 수업료를 물가인상 억제 방침에 따라 일정 수준으로 묶어 놓아 공립과의 경쟁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교육규제 완화차원에서 유치원 납임금을 각 유치원의 자율 결정사항으로 풀어준 상태였으나 올해 들어 인상폭을 7%내로 억제했다. 또 수용아동 수에 따라 일정한 지원을 받는 어린이집과 경쟁해야 하는 유 치원의 경우 그나마 원비를 인근 어린이집보다 지나치게 높일 수도 없는 처지다.
한 사립유치원 원장은 “40명 한 학급 기준으로 4학급은 돼야 원장 월급 이 겨우 나오는 정도인데 사립 유치원의 70% 가량이 3학급 이하로 운영되 는 실정”이라며 “이 때문에 수업료 외에 견학비, 교재비 교통비 특별활 동비 등 수익자부담비용을 걷지 않으면 안되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한경자 한국유치원총연합회 회장은 “많은 아이를 떠맡고 있는 사립유치 원에 대한 정부지원이 전혀 없어 원비를 공립보다 더 많이 받을 수 밖에 없으나 어린이집이나 학원과 경쟁하다 보니 원비를 높게 책정하기도 어렵 다”고 말한다. 한 회장은 “공립에 다니건 사립에 다니건 다같이 미래를 떠맡아갈 어린이 아니냐”고 반문한 뒤“정부가 사립은 자기돈 들여 자기 가 하는데 지원할게 뭐 있느냐는 자세를 버리고 사립유치원을 적극 지원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치원의 경우 대부분 반일반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도 유아 사교육비를 증가시키는 한 원인이 되고 있다. 지난해 한국교육개발원이 유치원 적령 아동을 둔 어머니 가운데 절반 가까운 47%가 하루종일 또는 시간제로 취 업해 있는 상태인 것으로 나타나 유치원의 종일 운영에 대한 학부모들의 요구가 매우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5살배기 아들을 공립 유치원에 보내 고 있는 한 학부모는 “유치원이 오전에 끝나기 때문에 엄마가 점심 등을 따로 챙겨줘야 하는데다, 같은 또래 아이들이 다 학원에 가 같이 놀 친구 가 없어 결국 다시 학원에 보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태권도 도장서 웬 영어교육?
유아 교육을 조기교육이나 재능교육 정도로만 여기는 학부모의 인식도 유 아교육 정착의 걸림돌로 지적되고 있다. 현행 유치원 교육과정은 건강· 사회·언어·표현·탐구생활 등 5개 영역이다. 이 때문에 돈을 더 들여서 라도 다른 아이보다 더 많은 것을 가르치려는 부모들은 유치원 이외의 여 러 형태의 유아교육기관에 자녀를 맡기고 있다. 미술이나 속셈 피아노 태 권도 등을 가르친다는 목적으로 설립한 학원도 허가된 교육과정 이외에 다른 것들을 불법적으로 가르치는 경우가 많다. 싼 값으로 여러 교육을 받으려는 학부모들을 끌어들이려는 것이다. 심지어 일부 태권도 도장에서 는 별도의 비용을 조금만 더 내면 글짓기와 영어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선전하기도 한다. 유치원도 이런 부모들의 요구 때문에 교육 당국의 단속 을 피해 영어 등을 특별활동 명목으로 가르치는 곳도 적지 않다. 물론 이 런 부담은 고스란히 학부모에게 돌아간다.
학부모들이 바라는 유아 교육체제는 한마디로 큰 비용 부담없이 자녀를 제대로 보살피고 가르칠 수 있는 것이다. 유아 교육을 제대로 세우기 위 해서는 무엇보다 유아교육에 대한 국가 재정확보가 필수적이다. 교육부는 내년부터 2000년까지 매년 전체 교육예산의 3%대인 5천억원 수준으로 늘 려 국·공립 유치원 신설, 5세아 무상교육과 유치원 종일반 운영, 사립 유치원 교사 인건비 지원 등에 투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돈이 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다. 유아교육의 개혁은 전체 교육개혁과 맞물려 있 다. 단기 처방보다는 본질적이고 근본적 개혁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
지창은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