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강문 기자의 인물탐험
1997년05월29일 제 159호 한겨레21

인도에서 온 반항아, 리아

무대 밖에서 본 리아는 정말 작았다. 약속장소인 서울 강남의 한 카페를 들어서는데, 몸집이 유리문의 절반도 안 된다. 키는 쬐끄마하고, 어깨와 허리는 버들가지처럼 가늘다. 의자에 앉자마자 살짝 몸을 웅크리는 게 얼 핏 고슴도치를 닮았다. 선머슴마냥 빡빡 깎은 머리카락은 거칠기가 가시 뺨친다.

그러나 무대 위에 선 리아는 작지 않았다. 마이크를 쥐고 몸이 젖혀지도 록 노래를 부르는데, 내지르는 목소리가 객석까지 울린다. 꽝꽝거리던 드 럼도, 웅웅대던 전자기타도 풀이 죽어 단박에 수그러든다. 핏대가 설 만 한 고음에서도 목소리는 윤기를 잃지 않고 하늘로 솟구친다. 그는 작지만 , 크기도 했다.


히말라야 산자락에서 보낸 어린 시절

“누가 조금 다르다면 외면하고 무시하지. 유행이란 이름으로 남들 눈을 의식하지. 눈치보며 살게 됐어. 그래 그랬었어. 같은 생각하며 살기엔 내 인생이 너무 아깝다고 생각했어. 조금 튀게 난 살아갈 거야. 그 누가 뭐 라 한다고 해도.”(<개성>에서)

리아는 로커다. 그것도 시쳇말로 요즘 잘 나가는 로커다. 몇 가지 신화가 그의 주변을 맴돈다. 데뷔하기 전부터 사람들을 놀래킨 가창력. 라디오 공개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일약 스타로 뛰어오른 화려한 변신. 콘서트를 열 때마다 빈자리가 없다는 폭발적인 인기. 무엇보다 스무살 나이에 어울 리지 않는 신비로운 분위기. 사람들은 그에게서 상업적으로 성공한 연예 인과 세파를 거스르는 반항아의 이미지를 함께 본다고 했다.

리아는 어린시절을 히말라야의 산자락에서 보냈다. 산악인이었던 아버지 가 인도에 들렀다 아예 눌러앉는 바람에 꿰인 인생의 첫단추였다. 아버지 는 ‘로찌’라는 산악인 전용 하숙집을 운영하며 딸을 인도의 아이로 키 웠다. 아이는 열살이 될 때까지 자연스럽게 인도의 가르침을 받았다. 그 는 그 가르침을 ‘인도의 냄새’라고 표현한다. 그것은 “혹 나중에 작곡 을 하게 되면 노래에 꼭 담고 싶은” 향수 같은 것이기도 하다.

그 냄새란 게 특별한 것도 아니다. 그저 욕심부리지 말고 착하게 사는 게 좋다는 정도다. 소녀에게 인도의 가르침은 그토록 소박했던 것이다. 사실 그게 주변의 모습이기도 했다. 리아는 사람들이 너무 착하고 순박해 세상 사람들이 다 그런 줄 알았단다. 한국에 돌아와서야 그게 착각이란 걸 알 았다니, 듣는 이가 조금 쑥스럽다. “애들이 말끝마다 욕을 붙이는 통에 처음 몇년 동안은 기를 펴지 못했어요. 무서웠죠.” 그래서 “큰애들의 가방을 들어주는 게 쪼끄마한 계집애의 사는 법”이 됐단다.

“교문에 들어설 땐 항상 긴장하곤 했지. 남들과 좀 다른 모습을 난 하고 는 싶은데. 어른이 된 지금~야야야. 다시 생각했어~ 야야야. 달라보이는 모습 옷으로 해결되진 않아.”(<복장불량>에서)


“군량미가 걱정된다구요? 나참∼”

(사진/대학에 못 갔지만, 리아는 행복하다. "공부는 잘하는 애들이 많으니 그들에게 맡기고, 나는 음악이 좋으니 음악을 해야지"라고 결심해서다. )

한국의 가르침은 소녀를 투사(?)로 단련시켰다. 고교생이 된 리아는 데모 를 주동하는 골목대장이 된다. 학교에서 학생들의 외투를 검은색으로 통 일한다며, 외투를 파는 가게까지 지정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외투색까지 맞춰 입으라는 강요를 소녀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소녀는 잘릴 각오를 하고 동지들을 규합했다. 신문사에 보낼 투서까지 썼다. 그러나 친구들은 학교라는 벽 앞에서 하나둘씩 무너져갔다. 결국 우표만 붙이면 날아갔을 편지도 휴지가 되고 말았다. 리아는 그때의 실패를 “부끄럽지 는 않지만 안타까웠다”고 돌이킨다.

그렇다고 지금 그가 저항의 로커는 아니다. 오히려 그의 록은 반저항적이 다. 심지어 그의 노래는 모든 저항을 무력하게 만든다. “모두가 위선을 버리고 순수해져요, 그래서 사랑으로 충만한 세상을 만들어요”라는 그의 선동을 들으면 전혀 투지가 불타지 않는다. 그는 저항보다는 사람에 대한 사랑을 노래할 뿐이다. “남 생각도 좀 해야 되지 않아요. 나만 생각하면 죽을 때 외롭대요.” 그는 여전히 인도의 아이인 것 같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는 한국의 로커다. 그의 사랑을 받아들이기에 한국은 얼마나 각박한가. 초청가수로 나서려던 북한어린이돕기 공연도 그래서 무 산됐다. 전경들이 공연장소인 성균관대를 봉쇄하는 바람에 학교 앞에서 2 시간 이상 기다리다 돌아가야 했다. “나는 한끼만 굶어도 머리가 핑핑 돌고 나중엔 짜증이 나는데, 왜 굶어 죽는 어린이들을 돕지 못하게 하는 거죠?” 그는 “권력, 아니 무력이 사랑의 손길을 막았다”며 코끝을 찡 그린다. “정부에선 쌀을 보내면 군량미로 쓰일까봐 걱정하는 모양인데요 . 군인은 사람 아닌가요. 군인들이 민간인들 몫을 먹는 게 문제라면, 군 인들이 먹고 남을 만큼 쌀을 보내면 되는 것 아닌가요.” 목소리가 점점 높아가는 게 단단히 화가 난 듯하다.

“세상엔 사랑이 필요한거야. 나는 그렇게만 생각해. 병들고 지친 세상 사랑이 필요하단 걸 언젠가 모두 다 알게 될거야. 항상 그렇게만 생각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그 어떤 세상을 찾을 수 있는 걸 남보다 좀더 가지기 위해 자신을 속이고 배신도 서슴지 않겠지. 우리 모습들 위선이라는 걸 아니.”(<욕구불만>에서)

리아는 그래도 요즘 행복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때문이다. 대학 간 친구가 전화를 걸어와 학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고민을 털어놓을 때 면, 그 행복이 더욱 소중하다. 졸업하고 취직 걱정할 필요도 없어 좋고. 하지만 처음부터 대학을 외면한 것은 아니다. 대학 영문과를 쳤으나 떨어 졌고, 부모가 재수는 안 된다고 해 전문대 항공경영과를 쳐 붙었지만 스 스로 돌아섰다. “공부는 잘하는 애들이 많으니 그들에게 맡기고, 나는 음악이 좋으니까 음악을 해야지”라고 결심해서다.

가수가 된 건 우연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음대에 가기 위한 공부를 하다 라디오프로에 출연해 노래를 부른 게 인연이 되어 가수가 되고 말았 다. 친구가 “노래를 기막히게 잘 부르는 아이가 있다”고 몰래 방송국에 엽서를 띄웠고, 졸지에 초청을 받은 그는 정말 노래를 기막히게 불러젖혔 다. 그 얼마 뒤엔 텔레비전에도 얼굴을 내밀게 됐다. 노래 실력 하나로 신데렐라가 된 것이다.


화려함이 오히려 부담스럽다

그는 그런 성공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성공이 가져온 화려함이 오히려 부 담스럽다고 한다. 가수가 되고 나서 꽤 많은 돈을 벌었지만, 아직 감당하 기 힘들다. 돈을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겠고, 무엇보다 그것은 원하는 게 아니었다. “잘사나 못사나 사람은 똑같다고 생각해요. 토굴에서 사는 사 람이나 세계에서 몇째 안 가는 부자나 어차피 먹고 싸고 자는 것 아닌가 요. 비싼 고기를 먹든, 집 앞의 풀을 뜯어먹든 다를 게 없다고 봐요.” 그에게 돈은 “먹고살 만큼만 있으면 충분한 것”이다.

리아는 나이를 먹어 이빨이 다 빠질 때까지 노래를 부르는 게 소원이다. 그렇게 늙어가면서 나이에 맞게 노래도 성숙해지기를 바란다. 그래서 사 람들이 자신의 음반을 죽 들으면 한 사람의 늙어가는 과정을 더듬을 수 있게 되기를 꿈꾼다. 어느 날 갑자기 돈도 안 벌리고 인기도 없다고 해서 노래를 그만둘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다. 그가 꿈꾸는 세상이 지금 당장 펼쳐지면 모를까.

“경찰들은 모두 다 할 일들이 없어져 평생휴가를 떠났을거야. 범죄란 건 모두 다 없어진 지 오래야. 내일은 교도소로 소풍을 가지. 전쟁은 너무 어색해. 사전에서나 볼 수 있겠지. 동화 같은 마음 평화로운 세상. 언제 나 내가 바란 그런 세상. 라랄 라랄라 라랄라.”(<유토피아>에서)

사진 정진환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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