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하는 재벌
1997년05월29일 제 159호 한겨레21

LG그룹, 21세기 ‘재계 1위’를 꿈꾼다

(사진/지난 3월27일 창립50돌 기념식에서 구본무 회장이 사기를 흔들고 있다. LG는 그룹의 장기비전인 `도약 2005'를 선포한 이날을 새로운 그룹 창립일로 바꿔버렸다.)

 구본무 회장이 새선장으로 나선 ‘`LG호’(號)가 순풍에 돛단 듯 쾌속 항진을 계속하고 있다.


‘선택과 집중’전략… 90여개 사업 정리계획

순이익 규모에서도 지난해 재계 1위에 올랐다. 현대, 삼성보다 적은 매출 로 더 많은 이익(3천6백억원)을 올렸으니 그만큼 실속있는 장사를 한 것 이다. “95년에는 순이익 1위 자리를 반도체에서만 2조5천억원의 순이익 을 올린 삼성그룹이 차지했지만 수익률(매출액 대비 경상이익률)에서는 역시 우리가 1등이었다.” LG의 자랑이다.

만년 2위권이었던 그룹 이미지 평가에서도 1위로 뛰어 올랐다. 대학생들 을 대상으로 지난해 10월 실시한 조사에서 삼성을 제치고 가장 입사하고 싶은 기업으로 꼽혔다는 것이다.

“분위기가 바뀌었다. 전에는 LG 하면 보수적이고 현실안주형이라는 인식 이 지배적이었다. 돌다리를 두드려 본 것으로 모자라 다시 다리를 건넌 사람에게 물어 본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다. 95년 초 그룹명칭을 럭키 금성에서 LG로 바꾸고 젊은 회장이 취임한 뒤 적극적이고 도전적인 이미 지로 바뀌고 있다.”

구인회 창업주와 구자경 2대 회장(현 명예회장)에 이어 구본무 회장으로 경영권을 넘기는 3세 승계 작업도 지난 95년 2월 외풍이나 내부 잡음없이 성공적으로 끝냈다. 구 명예회장과 함께 허준구 LG전선 회장, 구태회 고 문, 구평회 LG상사 회장, 허신구 LG석유화학 회장, 구두회 호유에너지 회 장 등 그룹 원로들이 동반은퇴하는 보기드문 `‘화합’의 모습까지 연출 했다.

그룹의 비전제시와 구조조정 사업도 의욕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구 회장 은 지난해 3월27일 경영의 질과 양 모두에서 1등을 차지해 오는 2005년까 지 매출 3백조원, 업종별 최고 수익률 달성을 목표로 하는 그룹의 장기비 전인 `‘도약 2005’를 선포했다. 본격적인 `‘제2의 혁신’ 선언이다. 다른 그룹들에게는 `‘공격경영’을 통해 재계1위로 도약하겠다는 선전포 고인 셈이다. 구 회장은 아예 그룹 창립일을 락희화학(현 LG화학) 창립일 인 1월5일(47년)에서 3월27일로 바꿔 버렸다.

그룹 창립 50주년인 지난 3월27일에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바탕으로 향후 총 3조원 규모의 90여개 사업을 정리하기로 하는 대규모 구조조정계 획을 내놓았다. 현재 수익이 나는 사업이라도 장기적으로 1등을 할 수 있 는 사업이 아니라면 과감히 철수하거나 매각하는 ‘선택’을 통해 힘을 축적하고 이를 미래형 유망사업에‘집중’투자한다는 것이다. 그룹의 승 부사업과 전략적 승부사업으로 선택된 정보통신, 차세대 반도체, 디스플 레이, 전지 사업 등에는 오는 2000년까지 그룹 총 투자의 1/3을 넘는 23 조원을 쏟아붓기로 했다. “1년여 준비기간 동안 회장단과 사장단이 10여 차례씩 컨센서스 미팅을 갖는 등 진통이 적지 않았다. 당장 이익이 나는 사업을 어떻게 잘라내느냐며 미적미적하는 계열사 사장들을 구 회장이 다 그치는 일도 있었다.” LG그룹 관계자의 귀띔이다.

“도약 2005를 통해 LG가 추진하려는 사업은 미래 성장 가능성이 있느냐 와 LG가 과연 경쟁력을 갖추고 잘해나갈 수 있느냐는 두가지 조건의 충족 을 전제로 한다.” 그룹 차원의 전략적 신사업 개발 및 실행을 책임지고 있는 전략사업개발단 남용 운영본부장(부사장)의 말에는 자신감이 짙게 배어 있다.


자동차·신문사업설 강하게 부인

LG의 미래 승부사업은 시장의 특성상 크게 세분야로 나뉜다. 첫째는 전세 계적(Global)인 차원에서 경쟁력을 얻을 수 있는 사업이다. 전기·전자, 화학 분야가 대표적이다. 제니스사 인수도 그 일환이다. “LG전자의 컬러 텔레비전 제품에 제니스 상표를 붙이면 미국시장에서 소비자가격을 18%나 올려 받을 수 있다. LG 상표로는 20인치 미만, 잘해야 25인치를 파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50인치짜리까지 팔린다.” 제니스는 지난해 1 억7천8백만달러의 적자를 기록하면서도 8천만달러 규모의 장기 악성 재고 와 채권 등을 떨어내고 25%의 인력을 잘라내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올 해는 적자가 5천만달러 수준으로 줄어들고 내년에는 손익 분기점에 이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LG는 자동차 신규진출 가능성에 손을 내 젓는다. “개방경제에서 자동차사업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져야 하는데 이를 충족시키기 어렵다는 게 우리의 생각이다. 구 회장 본인이 이미 관 심이 없다고 못을 박았다. 철강업 진출도 마찬가지다.”

두번째는 국내시장에서만 잘해도 경쟁력을 얻을 수 있는 사업 분야다. LN G복합화력발전소 건립을 통한 전기공급 사업과 슈퍼센터, 할인점을 중심 으로 한 차세대 유통사업이 그 예로 꼽힌다. 마지막으로는 중국, 인도네 시아, 인도, 베트남 등 아직 유아(Infant)단계에 머물러 있어 선점효과를 살리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세계 전략시장에서의 사업이다. LG는 장기 적으로 미주, 중국, 동남아, 유럽, 일본, 중남미, 중동·아프리카 등에 지역본부를 세워 한국을 비롯해 글로벌 8극 경영체제를 구축할 계획이다.

최근 급부상한 신문사 인수설에 대해서도 존립 자체가 위협받고 있는 신 문산업에 뛰어들 이유가 없다고 잘라 말한다.

‘도약 2005’의 핵심개념은 가치창조형경영(Value Based Management)이 다. “미국 반도체 회사인 텍사스 인스투르먼트사는 외국업체와 전략적 제휴를 할 때 투자지분율을 15~20%로 낮추면서도 총생산 물량의 60% 이상 을 받아가 직접 판매한다. 투자부담을 줄여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 기술 과 마케팅력을 바탕으로 고부가가치를 올리는 것이다. 이것이 VBM의 핵심 이다.” 남 부사장은 모든 해외투자에 철저히 VBM 원칙을 적용해, 2005년 에는 해외부문 매출액을 전체 그룹 매출의 절반인 1백50조로 늘릴 계획이 라고 밝혔다.

LG가 공격경영을 펼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구자경 명예회장이 지난 80년 대말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한 경영혁신이다. “80년대 후반 LG전자가 업계 1위 자리를 내주고 노사분규가 몰아닥쳐 그룹으로서는 최대 시련기를 맞 았다. LG는 88년부터 V프로젝트로 불린 1차 혁신을 통해 생산성을 향상시 켜 품질 및 가격경쟁력을 높이는데 전력을 기울였다. 90년에는 고객을 위 한 가치창조라는 새로운 경영이념을 정립했다. 그 효과는 서서히 나타나 91년부터는 수익률이 개선되기 시작했다.”


매년 25% 신장 이뤄야 ‘3백조’가능

(사진/서울 여의도 LG그룹 본사 쌍둥이건물 전경. )

그러나 LG가 재계 정상의 꿈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매출 3백조 달성으로 집약되는 ‘도약 2005 계획’ 을 구체화하는 작업이다. “달성이 어려운 목표다. 상징적인 숫자 아니겠 냐”는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94년 9월 구 회장(당시 그룹 부회장)은 중 국 베이징에서 해외사업추진위원회 중국지역 전략회의를 열고 전기·전자 , 석유화학을 중심으로 2000년까지 중국을 제2의 내수시장으로 육성해 그 룹 전체 해외매출의 25%인 60억달러의 매출을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96년 5월에는 다시 2005년까지 1백억달러를 투자해 매출 5백억달러(45조원)를 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2000년 이후 5년 사이에 중국매출을 5배로 늘려 야 한다.

96년 2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그룹 해외사업추진위 동남아 전략회 의에서는 오는 2000년까지 동남아, 인도에 50억달러를 투자해 90억달러의 매출을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95년 9월 싱가포르 전략회의에서 발표한 투 자규모 45억달러가 반년 만에 5억달러나 더 늘어났다. 계획이 급조됐다는 느낌마저 든다.

“도약 2005의 3백조 매출은 매년 25% 이상의 성장을 이루어야 가능하다. 한계 목표를 통해 1위에 올라서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15% 정도의 성장 목표로는 아무도 ‘혁신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3백조 목표는 1위 에 올라서기 위해 발상의 전환을 요구하는 ‘화두’다.” LG그룹 회장실 임원의 설명이다.

신규사업의 전망도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현대와 삼성 연합군의 공세 를 물리치고 따낸 개인휴대통신(PCS)사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일 컬어지는 신규사업의 핵이다. 2000년 초 시장규모만 5조원을 넘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러나 올해말 본격적인 상용서비스를 시작할 때까지 들 어가는 초기 투자액만 5천억~6천억원에 이르고 2000년초까지는 총 3조원 가까운 투자비가 필요하다. 더욱이 PCS분야의 경쟁자인 한솔PCS, 한통프 리텔은 물론 기존 휴대폰업체인 SK텔레콤과 신세기통신, 발신전용휴대전 화업체들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 “한마디로 과잉경쟁이다. 초기에는 출혈경쟁도 예상된다. 향후 5~7년 안에 2~3개 업체를 제외하고는 모두 문 을 닫거나 다른 업체에 인수당할 것이다.”

끊임없이 제기돼 온 현 정권과의 유착설도 LG로서는 ‘시한폭탄’ 같은 것이다. 지난해 LG, 한솔이 PCS사업권을 따낼 때 업계에서는 두 그룹의 사전내정설이 광범위하게 돌았다. “우리 현실에서 답안지만 잘 쓰면 사 업권을 따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겠는가?” LG의 잇단 신규사업 획득 을 겨냥한 다른 그룹 한 임원의 가시 섞인 지적이다. 사업자 선정 뒤 야 권에서는 “김영삼 정권 최대 의혹사건”이라고 목청을 높이기도 했다. 한솔은 이미 김현철 비리사건 수사과정에서 PCS사업권 획득을 위해 김기 섭 전 안기부 운영차장에게 로비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곤욕을 치르고 있다. 최근에는 현철씨 비자금이 맡겨진 기업에 LG가 포함돼 있다는 증권 가 루머가 돌아 그룹을 긴장시키기도 했다. LG는 92년말 대선 전부터 현 정권과의 유착설이 돌았다. 92년 대선자금의 실체가 드러날 경우 관련 그 룹 총수들은 95년 말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사건에 이어 또한번 ‘경’ 을 칠 가능성이 크다. 물론 LG는 이런 외부시각에 대해 펄쩍 뛴다. “6공 시절 청와대에 재계 총수들이 초청을 받은 자리에서 구 명예회장이 군사 문화를 비판하는 발언을 했다가 노태우 대통령의 미움을 산 일이 있을 정 도로 LG는 전통적으로 정경유착을 멀리했던 기업이다. 정치헌금을 강요받 을 때 낸 돈말고는 별도의 정치자금 제공이 없었다.” 그룹 회장실 심재 혁 전무의 주장이다.


가족경영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50년 동안 이어온 구씨와 허씨 양대 가문의 가족경영이 언제까지 이어지 느냐의 문제도 LG의 장래를 좌우할 열쇠다. 구자경 그룹 명예회장, 허준 구 LG전선 명예회장 등 경영일선에서 동반은퇴한 원로를 제외하고도 두 가문에서 LG에 몸담고 있는 사람은 임원급만 24명에 이른다. 95년 2월 구 본무 회장 취임 이후 상당히 줄어든 숫자이긴 하다. 그러나 임원급 이하 까지 포함하면 그 숫자는 훨씬 늘어난다. 구 회장은 취임 이후 기회있을 때마다 성과주의 인사 원칙을 강조했다. 로열 훼밀리라고 해서 경영능력 과 관계없이 중책을 맡기는 일은 더이상 없을 것이라는 공언이었다. 실제 로 구 회장 취임 이후 일부 친족들이 문책성 좌천을 당한 것으로 알려지 고 있지만 그룹 임직원들이 피부로 느낄 정도는 아닌 것같다.

곽정수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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