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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
1997년05월15일 제 1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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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50년 전통의 아동복지기관인 홀트아동복지회. 나라사랑운동본부 출신 성기범 회장 취임 이후 의료적 문제아동이나 장애아동 인수를 거부하는 등 파행운영으로 물의를 빚고 있다.)
지난 1월9일 광주에서 서울로 오는 새마을호 기차 안에서는 충격적인 사 고가 하나 있었다. 갓난아기가, 그것도 태어난 지 한달밖에 안 되는 몸무 게 1.57kg의 미숙아가 갑작스런 호흡 곤란으로 숨진 것이다. 아이는 미혼 모의 딸이었다.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미혼모는 도저히 키울 형편이 못 된 다며 홀트아동복지회에 입양을 부탁했다. 태어날 때 몸무게가 1.8kg으로 이미 미숙아 판정을 받은 이 아이를, 몸무게가 오히려 줄어든 상태에서 굳이 서울로 옮겨야 했던 말 못할 이유는 무엇이었나.
경영효율이 부른 위탁아 사망사건
이 사건은 한국의 대표적 아동복지기관인 홀트아동복지회의 업무과정에서 생긴 것이었다. 50년의 입양 경험을 가진 이 기관에서 왜 이런 일이 벌어 졌을까. 특히 사고를 낸 광주사무소는 설립된 지 10년이 다 돼가지만 이 런 식의 사고는 단 한번도 없었다.
홀트 안팎에선 사고가 새 회장의 경영방식과 무관하지 않다는 주장이 설 득력 있게 퍼져 있다. 직원들에 따르면 비용을 최소화하자는 경영진의 강 력한 요청이 결국 이 사고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특히 지난해 9월 성기범 회장이 새로 취임하면서 비용을 줄이기 위해 의료적인 문제아동이나 장애 아동의 인수를 금지하는 방침까지 정해졌다.
이 아이 경우도 이런 방침 속에 희생당했다는 설명이 중론이다. 병원비가 너무 많이 나온다는 지적을 받을까봐 직원들이 황급하게 아이를 서울로 옮기다 숨지게 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한 직원은 “서울에선 의료보 호 적용을 받아 병원비가 훨씬 싸다”고 말했다. 실제 중앙본부엔선 지난 해 12월 경남에서 양육하던 아기의 병원비를 과다 지출했다며 경남 소장, 아동인수 담당자, 원무과 직원 3명에게 시말서를 제출하게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아이의 죽음을 슬퍼하고 시정과 재발 방지를 요구한 이는 거의 없 었다. 엄마도 항의하지 않는 이 일을 처음 들고 나선 곳은 노동조합(위원 장 이수연)이었다. 노조는 노보를 통해 “홀트 정신에 대한 이해는 조금 도 없이 ‘의료문제아는 돈이 많이 드니 인수하지 말라’며 무조건 예산 절감을 외치는 회장 아래서 이같은 불행한 일이 또 발생하지 않는다고 누 구도 보장할 수 없다”고 밝혔다. 노조는 사회복지에 대해 문외한이며 비 전문가인 성 회장이 낙하산 인사로 회장에 임명되면서부터 이런 문제가 불거진 것이라 주장한다. 노조의 지적대로 성 회장은 92년 대선 당시 YS 의 대선운동조직이었던 ‘나라사랑본부’의 교육 제8본부장이었다. 성 회 장의 낙하산 인사는 김현철씨의 숨은 측근 김 아무개씨의 영향력이 미친 결과라고 알려져 있다.
이사회가 임명해온 역대 회장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홀트가 왜 이런 시행 착오를 겪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50년대와 60년대는 외국인 목사들이 , 70년대부터는 장성 출신, 국가보위비상대책위 출신, 군목 출신, 청와대 경호계장 출신 등 비전문가들이 줄을 이었다. 내부승진해 회장이 된 사람 은 한명 뿐이었다.
때문에 직원들 사이에서는 “군사독재시절엔 군화가 낙하산을 타고 내려 오더니 이번에는 등산화가 내려왔다. 다음 정권이 출범하면 낙하산 주인 이 누구로 바뀔지 걱정된다”는 해묵은 자조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
노조간부 부당전배, 원상회복 명령도 안 지켜
성 회장이 취임하자마자 이런 안팎의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노조파괴 가 시작됐다. 특히 부당전보 등 부당노동 행위까지 서슴지 않았다. 성 회 장은 취임 직후부터 “노조는 파벌”이라든지 “사회복지기관에 무슨 노 조가 필요한가”라는 말로 노조에 대한 불신과 적대감을 드러냈다는 것이 다. 이는 취임 뒤 노조와 상견례 형식의 인사마저 한번도 없었고, 노조위 원장조차 노조대표 자격으로는 만나지 않겠다고 거부한 사실에서 잘 드러 난다.
성 회장은 이런 생각을 곧 행동으로 옮겼다. 노조탈퇴를 강요하기 시작했 다. 탈퇴 강요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졌다. 간부를 통한 회유와 위협이 일상화됐다. 탈퇴하지 않으면 지방발령을 내겠다는 위협은 흔한 경우였다 . 노조에 탈퇴서를 내지 못하는 이들은 총무과에서 탈퇴서를 받았다. 노 조에 따르면 노조 탈퇴서를 받기 위해 말기 암환자에게까지 찾아가는가 하면, 이수연 노조위원장의 경우 근무중인 낮시간에 회사 간부들이 집으 로 찾아가 칠순의 시부모에게 “며느리가 회사에서 문제를 일으키니 노조 활동을 못하게 하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경영진은 ‘우리의 결의’라 는 유인물을 돌리며 노조탈퇴 각서를 받았다. 이 유인물에는 노조사무실 폐쇄를 걱정해 노조원들이 철야농성을 벌이는 것에 대해 “남녀혼숙은 직 원의 신분과 품위를 망각하고 사회의 통념에서 벗어난 행동으로 만인의 지탄이 되고 있다”는 식으로 매도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회사의 집요한 탈퇴 강요로 인해 성 회장 취임 전 70여명이던 조합원 수 는 현재 25명으로 줄었다. 그나마 성 회장쪽은 남은 조합원 가운데 노조 위원장, 부위원장, 전임자 등 핵심조합원 9명에 대해 지난 1월13일자로 지방발령을 내버렸다. 9개 지역에 정확히 1명씩 보낸 것이다. 발령자 중 에는 미혼여성으로 연고도 없는 곳에 홀로 내려간 이들도 있다. 노조는 이를 명백한 ‘보복성 인사’로 보고 있다. 서울에서 지방으로 발령이 난 11명 가운데 2명의 간부를 뺀 나머지 9명 모두가 조합원이라는 점, 연고 지가 전혀 없는 곳을 골라 본인의 동의나 사정을 전혀 묻지 않은 점, 노 조 임원이나 상임집행부 인사는 노조와 사전협의하기로 되어 있는 단체협 약을 무시한 점 등으로 미뤄볼 때, 회사가 노조를 집중공략하기 위해 단 행한 보복성 인사라고밖에 볼 수 없다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노조는 이 를 부당전보로 규정짓고 이에 대한 부당노동행위 구제를 진행중이다.
지난 2월19일 서울지방노동사무소는 노조가 낸 강제 탈퇴 부분에 대한 ‘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 사건’에 대해 “사용자가 부당노동행위를 했다” 고 결정했다. 그러나 아직 부당전보에 대한 원상회복은 이뤄지지 않고 있 다. 복귀는커녕 노조에서 상근하고 있는 3명의 노조 간부(위원장, 부위원 장, 사무국장)들은 경영진으로부터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당한 상태다.
직제에 없는 자리 만들어 고향후배 임명
회장의 독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성 회장은 동생의 친구이자 젊은 시절 공무원 생활을 함께 했다는 고향후배 박아무개씨를 직제에도 없는 고문으로 앉혀 활동비를 지급했다. “노동청장을 지내 노사관계에도 밝아 고문역을 맡겼다”는 게 회사쪽의 설명이다.
무리한 기관 운영이 안팎으로 물의를 빚고 있지만, 정작 관리·감독 기관 인 보건복지부는 뾰족한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대신 “이사 선임에 대한 승인권을 제외하고는 기관에 대한 관리 권한이 거의 없다”는 점만 강조했다. 보건복지부 김명숙 가정복지심의관은 “사회복지기관의 대표는 사회복지에 대한 전문성보다는 경영을 잘해야 한다”며 “홀트 성 회장의 경영에 문제가 있다면 감사를 통해 조사해보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국회에서 약속한 것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 지난 3월 임시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는 홀트 문제가 본격적으로 다뤄졌 다. 국민회의 이성재 의원은 보건복지부 장관을 상대로 임원의 임기 제한 조항을 정관에 신설하는 문제, 1백70억원에 이르는 기금을 기본재산에 편 입하는 문제 등을 집중적으로 물었다. 답변에서 손학규 보건복지부 장관 은 “감사결과 지시사항 여부에 대해 특별감사를 실시할 것”을 약속했다 . 그러나 임원의 임기 제한 조항 하나만을 보더라도, 이는 이미 94년 9월 에도 시정을 권고했지만 지금까지 지켜지지 않고 있다. 홀트쪽은 오히려 보건복지부에 보낸 공문에서 “충분한 임원 경력은 홀트의 사업과 실정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의미이며 이는 의사결정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어 개선요구사항에 대한 재고를 요청한다”고 주장했다. 재산 취득과 유지관 리, 예산·결산, 정관 변경, 회장 임면 등 대부분의 중요사업에 대한 결 정권을 쥐고 있는 이사의 임기를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은 오래된 것이었 다. 실제 현 홀트 이사진을 구성하는 이사들의 재임기간은 짧게는 9년에 서 길게는 16년이다. 또 이들의 경력을 보면 해병대 사령관, 해군 대령, 대통령 경호실 경호관, 군 목사, 육군 군종감 등으로 사회복지와는 인연 이 없는 이들이다. 보건복지부는 국회 지적사항인 임원의 임기 제한에 대 해서는 정관 개정 내용에 포함시키지 않았다고 밝혔다.
노조는 복지기관의 서비스 보장 장치
한편 홀트 노조의 이수연 위원장은 “사회복지기관에서 일하는 사람은 노 조를 해서는 안 된다는 믿음은 잘못된 것이다. 기관이 민주적으로 운영되 면 결과적으로 복지기관의 서비스가 좋아지고 서비스의 결과는 복지기관 의 수혜자들에게 돌아간다. 복지기관의 노조는, 복지기관이 전문화 사회 에서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복지서비스를 창출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구 실을 한다”고 밝혔다.
성 회장은 한달간에 걸친 `한겨레21'의 인터뷰 요청을 거부했다. 언론사 의 인터뷰는 거부해도 좋지만, 양질의 복지를 실현하기 위해 대화를 원하 는 노조의 요구를 거부해서는 안 될 것같다.
김창석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