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1997년05월15일 제 157호 한겨레21

드러나는 김현철씨와 측근들의 돈사냥

(사진/"해외에도 김현철씨 돈이 있다." 해외자금 관리책으로 주목받고 있는 이성호씨의 회사에서 근무했던 재미동포 조셉 조씨가 비자금 해외유출 의혹을 폭로하고 있다.)

김현철씨는 지난 4월25일 청문회에 출석해 세차례 눈물까지 흘려가면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지만 그와 검은 돈과의 관계는 속속 사실로 드러났 다. 대통령의 아들로서 수십억원을 받은 것이 검찰 수사 결과 확인되고 있고 수백억원의 대선자금 잔여분을 계속 운영해왔다는 의혹도 확인단계 로 접어들었다.


수억원 건넨 기업인들 “용돈이다” 발뺌

먼저 그는 두양, 우성, 신성그룹 등 경복고 선배들의 기업으로부터 3억~5 억원씩 무려 20억원 이상의 용돈(?)을 받아온 게 확인됐다. 95년 7월 롯 데호텔 객실에서 두양그룹 김덕영 회장을 만나 3억원 등 모두 5억을 받았 고, 비슷한 시기에 최승진 전 우성그룹 부회장으로부터 1억원, 신성그룹 신영환 회장에게서 3억원을 받은 것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고교 후배인 현철씨에게 용돈을 주었을 뿐”이라며 청탁성이 아니라고 발뺌하고 있다. “논문을 쓰기 위해 호텔에 들렀다”는 현철씨의 거짓말만큼이나 믿기지 않는 이야기다.

검찰은 학생 신분인 현철씨에게 그것도 호텔이라는 은밀한 장소로 찾아가 거액을 건넨 데는 분명히 이권청탁이 있었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김 회장의 경우 신한종금 소유권을 둘러싸고 장인인 전 국제그룹 양정모 회 장과 분쟁을 벌일 때 현철씨가 영향력을 행사해 주는 대가로, 최 부회장 은 95년 11월 자금난에 시달리던 우성건설에 제일은행 등 12개 시중은행 이 7백50억원을 빌려주도록 현철씨가 힘을 써준 대가로 돈을 건넨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박건배 해태그룹 회장이 건넸다는 수억원대의 돈 역시 음향기기 전문회사 인켈의 인수와 관련된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은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게 중론이다. 검찰은 특히 현철씨가 자신의 영향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노 른자위 사업으로 떠오른 정보통신 분야나 지역민방 선정에 개입해 거액의 뭉칫돈을 챙겼을 것으로 보고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그의 검은 유착은 지난 4일께부터 실타래가 풀리기 시작했다. 현철씨의 자금관리인으로 알려진 이성호 전 대호건설 사장이 현철씨를 대신해 민간 기업인들의 돈을 모금-관리해 온 단서를 확보한 것이다. 검찰은 상당수의 기업인들로부터 이권과 관련해 현철씨를 어렵게 접견했지만 현철씨로부터 “이성호씨를 만나보라”는 말을 듣고 이씨에게 돈을 건넸다는 진술도 받 아낸 것이다.

더욱이 이씨는 단순히 기업으로부터 받은 돈을 건네받는 수준에 머물지 않고 다른 기업의 돈을 종자돈 삼아 알짜 기업을 운영해 막대한 차익을 현철씨에게 넘겼을 가능성도 높다. 실례로 이씨는 지난 95년 10월 서초동 대호빌딩을 현대전자에 8백64억원에 위장매각하는 수법으로 자금을 끌어 들였다. 그뒤 이를 정보통신분야 투자목적으로 설립한 신아기획을 통해 서초유선방송 등 8개 케이블 텔레비전방송사를 6백87억원에 불법 매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검찰은 현철씨가 이씨를 내세워 투자가치가 있는 케이 블 방송을 사들여 케이블 왕국 건설을 꿈꿨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 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생긴 차액 1백70여억원도 현철씨에게 흘러들어갔 으리라는 것이다.


동보스테인레스는 사실상 김현철 회사

이와 관련한 상징적인 사례로 꼽히는 것이 이씨가 지난 94년 10월에 설립 한 (주)동보스테인레스다. 이 회사의 설립자본금 10억원은 현철씨의 비자 금을 관리하는 이씨 계좌에서 빠져나갔다. 또 이 회사가 포철의 스테인레 스 철강 독점 판매권을 따내는 과정에서 현철씨가 개입했다는 진술도 관 계자로부터 확보됐다고 한다. 사실상 현철씨 소유 회사일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현철씨 이외에 그의 측근들도 청문회에서의 결백 주장과는 달리 광범위하 게 이권에 개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박태중씨의 경우 지금까지 그가 챙긴 것으로 드러난 돈은 모두 12억7천만원.

94년 4월 대전 삼정건설 이강년 사장으로부터 “대전지역민방 사업자로 선정되도록 힘써달라”는 부탁과 함께 5천만원 등 모두 2억5천만원을 받 았다. 또 94년 12월에는 광주지역 민방선정과 관련해 라인건설 공병곤 부 회장으로부터 2천만원을, 95년 5월에는 “세무조사를 잘 봐주도록 현철씨 에게 말을 넣어달라”는 부탁과 함께 4억원을 받았다. 이뿐이 아니다. 지 난 96년 3월에는 (주)태양생명 임재풍 대표이사로부터 계열사인 임광토건 이 주파수공용통신(TRS)사업자로 선정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2억원을 받았다. 5월5일에는 지난해 초 인천지역 민방 사업자 선정과 관 련해 한국종합건설 김병희 회장으로부터 4억원을 받은 사실이 추가로 확 인 됐다. 그러나 박씨는 이런 돈을 “현철씨에게 전달한 적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가운데 일부가 현철씨에게 흘러든 흔적도 발견됐다. 박씨가 93 년 3월부터 95년 10월 사이에 자신이 운영하는 (주)심우의 운영자금 4억5 천만원을 현철씨가 관리하는 청년사업단과 광화문팀에 제공한 사실이 들 통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박씨는 (주)심우에 근무하지도 않는 현철씨쪽 사람들이 근무하는 것처럼 서류를 꾸며 월급을 지급했다. 더욱이 최근 검 찰은 박씨가 92년 대선자금 잉여금 1백32억원까지 관리해 온 단서를 포착 한 것으로 알려진다. 현철씨는 청문회에서 “박씨와 돈을 주고받을 사이 가 아니다”고 말했었다.

현철씨를 뒷배경으로 이권에 개입한 새로운 인물도 등장했다. 현철씨의 한성대 국문과 입학동기인 김희찬(디즈니여행사 대표)씨. 그는 94년 3월 나선주 거평그룹 기획조정실장으로부터 “계열사인 대한중석이 광주전남 지역 민방사업자로 선정될 수 있도록 현철씨에게 부탁해 달라”는 청탁과 함께 10억원을 받았다. 김씨 또한 “현철씨에게 전달하지 않았다”고 진 술했다. 하지만 검찰은 거평그룹의 나 실장이 정보근 한보 회장, 이웅렬 코오롱 회장 등과 함께 이른바 ‘황태자 그룹’의 핵심으로 활동해왔고 돈이 전달된 뒤에도 두 차례나 현철씨를 찾아간 사실을 고려할 때 김씨가 10억원을 가로챘을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비자금 해외유출 의혹도 밝혀야

현재까지 밝혀진 현철씨와 그 측근들의 이런 뒷거래말고도 아직도 풀리지 않은 의혹들도 많다. 먼저 재미교포 이우성씨를 통해 김현철씨가 해외로 재산을 빼돌렸을 가능성이다. 지난 4월30일 이씨의 측근인 조셉 조씨는 “지난 1월 중순 뉴욕에 있는 이씨 소유의 카페에서 현철씨와 만난 사실 을 목격했다”며 “이씨는 평소에도 현철씨와 자주 통화했고 한달에 한차 례씩 서울을 방문해 현철씨에게 비자금 관리상황을 보고한 것으로 안다” 고 주장했다.

또 부산민방 사업자로 선정된 (주)한창과 현철씨의 관계도 석연찮다. 섬 유업체인 한창이 현철씨의 개입으로 민방사업자로 선정됐고 그 뒤 현철씨 에게 해마다 2억~3억원을 제공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것이다. 청문회에 서 현철씨는 한창의 김승한 부회장을 만난 사실을 완강히 부인하다 한 의 원이 한창쪽 보도자료를 들이대자 마지못해 그 사실을 시인했었다.

코오롱 그룹이 포철과 제2이동통신 사업권을 따내는 과정에서 현철씨의 영향력이 행사됐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한솔이 지난해 초 개인휴대 통신 사업자로 선정되는 과정에서 한솔의 전무이사가 김기섭 전 안기부 차장을 통해 현철씨에게 수억원의 자금을 제공했다는 의혹도 쉽게 덮이지 않는 부분이다.

현철과 그 아이들의 이권개입 사실은 조금씩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과연 그들의 파렴치한 뒷거래의 실체가 온전히 파헤쳐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리고 아직 한보 몸통과 관련된 부분은 하나도 드러나지 않았 다.

신승근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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