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1997년05월15일 제 157호 한겨레21

김덕룡 의원 표몰이에 민주산악회 분열 위기

(사진/당내 경선 출마를 위해 민주계 지지를 유도하려는 김덕룡 의원의 발빠른 움직임에 민주산악회가 분열 위기를 맞고 있다.)

김영삼 대통령이 사면초가에 빠졌다. 자신이 가장 애지중지하던 살붙이이 자 정치적 동지이던 차남 현철씨는 법의 엄정한 심판이라는 이름 아래 구 속될 날만 기다리는 신세에 놓여 있다.

현철씨의 사법처리는 취임 이후 한푼의 돈도 받지 않고 있다는 아버지의 `‘명성’에 결정적인 먹칠을 가하는 것일 뿐 아니라 `‘아들의 허물은 아비의 허물’로 받아들여져 김 대통령의 남은 임기 동안 무거운 짐이 될 것이 분명하다. 여권 일부에서 현철씨의 구속이 김 대통령의 하야 요구로 연결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겉으로는 단결 안으로는 주도권 다툼

게다가 한보터널의 끝에서 터져나온 92년 대선자금 폭로로 인해 김 대통 령은 옴짝달싹할 수 없는 벼랑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중립내각 구성을 목 표로 하고 있는 야권으로부터 `대선자금의 ‘고해성사’ 압력을 받고 있 는 데다가 이회창 대표와 박찬종 고문 등 당내 대선주자로부터도 외면당 하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산 넘어 산이라는 말이 지금처럼 실감나는 때도 없을 것”이라며 한숨지었다. 지난 연말 노동법 날치기 처리 이후 한보사태와 김현철씨 문제, 대선자금 등 꼬리에 꼬리를 문 악재들로 인해 김 대통령이 얼마나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여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런 가운데 김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이자 기둥인 민주계마저 내부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민주계는 표면적으론 대동단결과 결속을 강조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당내 최대 다수파인 민주계의 주도권 다툼과 대선 국면 에서의 입장 정리를 놓고 내연하고 있는 것이다.

김영삼 정권 창출의 일등공신이라고 할 수 있는 민주산악회가 두쪽 날 운 명에 처해 있는 것은 민주계의 현실을 말해준다. YS의 몰락과 최형우 고 문이 쓰러진 뒤 주인을 잃은 채 헤매고 있는 민주산악회를 최근 김덕룡 의원쪽에서 본격적으로 공략하고 나서면서 내부 갈등을 빚고 있다.

지난 4월29일 세종문화회관에서 `‘민산’(민주산악회) 안의 소규모 친목 모임인 ‘6월회’회장 추대식이 열렸다. 이날 추대식은 겉보기엔 95년 4 월 6월항쟁을 주도한 사람들이 모여 ‘친목을 도모하자’며 창립된 뒤 회 장을 맡아오다 지난 2월에 사망한 이우태 전 회장을 대신할 사람을 내세 우는 자리였다. 하지만 사정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김덕룡 의원 의 ‘민산 갈라먹기 착수’라는 평가를 주저하지 않는다.

6월회의 새 회장에는 DR(김덕룡 의원)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유성환 전 의 원이 추대됐다. 이날 모임은 단순한 친목회 회장 추대로 보기 어려울 정 도의 조직적인 동원 흔적이 역력했다. 전국 대부분의 민산 지부에 6월회 모임 참여를 독려하는 전화와 안내서가 전달됐고 경기도와 강원도, 그리 고 대구 지역 등에서는 회원들을 실어나르기 위해 버스까지 동원됐다. 그 결과 평소 60~70명 정도의 소규모 모임에 머물던 것과는 달리 이날은 6백 여명이 모이는 대규모 집회가 됐다.


철새들은 필요없다. 진골만 모여라

민산의 한 관계자는 “온산(최형우 고문의 호)이 민산을 장악하고 있을 때 작은 곁가지 모임에 불과했던 ‘6월회’가 본격적인 조직불리기 작업 을 하고 있는 것 같다”며 “일부 지부에서는 6월회 가입을 설득하는 작 업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민산의 또다른 관계자는 좀더 솔직하게 전후사정을 털어놨다. “온산이 쓰러진 뒤 DR쪽에서는 민산 전체가 자신을 밀어줄 것을 계속 요구해왔다 ”며 “그러나 박태권 부회장 등 민산의 현 지도부가 `‘민주화세력 모임 전체의 결정에 따르겠다’며 DR쪽 요구를 사실상 따르지 않자 DR쪽이 결 국 딴살림을 차리기로 결심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6월회 유성환 회장은 이에 대해 “김덕룡 의원과 가까운 것은 사실이지만 누구의 손을 들어주기 위해 6월회를 활성화시키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 했다. 그러나 DR의 한 측근은 “민주산악회가 92년 대선을 거치면서 권력 을 쫓아 날아든 많은 기회주의적인 인사들로 인해 순수성을 잃은 측면이 있는 만큼 민주인사들의 새로운 모임이 필요하다”고 말해 `민산의 ‘헤 쳐모여’를 지향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민주계 계보 모임의 통합 사무실 개소를 둘러싸고도 민주계 중진 사이에 난기류가 흐르고 있다. 몇차례 중진 모임을 갖고 통합 사무실을 열어 원 내외 위원장 1백60여명을 묶어 단합을 과시하기로 합의했지만, 의장단 구 성 문제를 놓고 의견이 엇갈려 사무실 개소가 늦어지고 있다.

서석재 의원쪽은 “결집력을 높이고 의사결정을 신속히 하기 위해서는 단 일의장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최형우 의원쪽은 “소계보들의 참여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공동의장제가 낫다”고 맞서고 있다. 계보 사 무실 개소 시기에 대해서도 조기론과 연기론이 맞서 있다. 모두 계보의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한 줄다리기 성격이 다분하다.


서로 인사도 안 할 정도로 관계 악화

민주계 의원들끼리의 감정상태도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 다. 고위 당직자를 지낸 몇몇 중진 의원들은 민주계 모임 등에서 만나도 서로 인사도 하지 않은 채 외면하는 등 냉랭한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부 산 출신의 한 소장 의원은 “당내 경선 출마를 위해 자신에 대한 지지를 유도하려는 김덕룡 의원과 온산의 뒤를 이어 민주계의 좌장 역을 확실하 게 맡으려는 서석재 의원의 눈에 보이지 않는 알력이 적지 않은 데다가 온산쪽은 온산쪽대로 영향력 유지를 위해 애쓰는 등 민주계 내부 사정이 만만치 않다”고 밝혔다.

김종철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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