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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05월15일 제 1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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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불교방송 정상화를 위한 범불교대책위 기자회견. 대책위에는 불교관련 단체가 참여했다.)
91억여원에 이르는 거액의 불교방송(BBS) 공금횡령 사건이 3개월이 지나 도록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애초 방송국쪽은 이번 사건의 성격을 말단직원의 단순 공금횡령으로 발표했지만, 조사가 진행됨에 따라 재단이사회와 경영진이 깊숙이 간여했을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철저한 진 상규명과 검찰의 전면 수사를 요구하는 여론이 불교계 안팎에서 들끓고 있다. 특히 전체 불자들이 걷은 헌금으로 설립된 불교방송국에서 일어난 부정사건이라는 점에서 불교계가 받은 도덕적 타격은 무척 크다.
차장 혼자서 10달 만에 횡령은 불가능
이번 사건은 ‘불교판 한보사태’ 또는 ‘다보사태’(방송국이 입주한 건 물이름이 다보빌딩)로 통한다. 그것은 이 사건이 여러 점에서 한보사태의 진전과정을 빼닮았기 때문이다. 몸체는 따로 있어 보이는데 깃털만 구속 된 점이 일단 그렇다. 몸체에 대해 여러 가지 설득력있는 관측들이 떠도 는 형국도 한보꼴이다. 사태의 진전에 따라서는 불교계에 지각변동을 가 져올 폭발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어쨌든 불교계는 94년 개혁 종단 출범 이후 가장 큰 시련을 맞고있는 셈이다.
사건이 처음 감지된 것은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졌 다. 증권가에 불교방송국 직원 명의로 거액의 돈이 투자되고 있다는 소문 이 나돈 것이다. 이때부터 방송국 직원들이 마포경찰서와 증권감독원에 불려나가는 일이 잦아졌다. 이후 권력기관으로부터 이 사실을 제보받은 조해형 사장이 삼일회계법인(대표 서태식)에 감사를 의뢰했다. 1월14일부 터 시작된 감사에서는 장부에 전혀 기재돼 있지 않은 문제의 당좌거래가 외환은행 마포남지점에 개설된 것과 이 은행에서 받은 당좌수표 20장, 어 음 9장이 없어진 사실이 발견돼 조 사장에게 보고됐다.
그러나 조 사장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 사이 경리부 차장 김 선도(40)씨는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1월21일 자신의 증권계좌에서 1천만 원을 빼내 베트남으로 달아났다. 이튿날인 1월22일 삼일회계법인은 감사 결과를 제출했다. 13억1천9백만원의 어음횡령을 비롯, 기밀비 3천만원의 부당지출 등 96년 한해에만 13억4천만원의 횡령이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방송국 경영진은 이 내용의 공개여부를 놓고 고민하다가 다음날인 23일 서울지검 서부지청(담당 김형순 검사)에 수사의뢰 진정서를 냈다. 같은 날 밤 수사관은 4급 경리사원 김현안(35)·박지현(26·여·무혐의로 1월2 5일 석방)씨를 공금유용 및 횡령 혐의로 체포하고 장부 일체를 압수했다.
검찰 수사 결과 96년 2월23일부터 12월15일까지 10개월 동안의 공금횡령 액은 91억7천8백73만원으로 드러났다. 짧은 기간에 비춰볼 때 실로 엄청 난 횡령이었다. 횡령은 주로 불교방송의 최대수입원인 한국방송광고공사 로부터 광고수주비를 받는 과정에서 이뤄졌다. 광고공사로부터 받은 어음 을 할인해 다른 용도로 쓰거나, 이 돈을 곧바로 입금시키지 않고 나중에 입금시켰던 것이다.
단순 경리사고로 보기에는 의혹 너무 커
1월27일 불교방송은 ‘공금횡령사건 대책위원회’(위원장 영배스님·방송 심의실장 및 포교위원장)를 구성하고 자체 조사를 벌였다. 조사 결과 성 금 4천6백만여원 횡령, 적금담보 불법대출, 방송기자재 이중지급 횡령 등 이 추가로 드러났다.
회사는 2월1일 ‘경리사고 수습대책위원회’(위원장 영담 상임이사)를 구 성했으나 2월18일이 돼서야 감사에 착수했다. 그것도 공인회계사가 아닌 세무사 3명으로 감사를 진행했다. 공인회계사에 비해 비용이 적다는 이유 에서였다. 대책위의 결론은, 범행이 베트남으로 달아난 경리부 차장 김선 도씨와 4급 경리사원 김현안씨 두 사람에 의해 전적으로 이뤄졌으며 전 총무국장 강종훈 스님과 송병욱 상무 사이에 인수인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업무공백 상황에서 발생해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대 책위의 이름에 달려있는 ‘경리사고’로 사건의 성격을 정리한 것이다. 이에 대해 조계종 종단과 불교계에서는 불교방송이 사태를 축소·은폐하 려 한다고 보고 회사쪽의 미온적인 대응에 강한 불신을 보이기 시작했다. 경영진과 재단이사회가 정말 이들의 횡령사실을 전혀 몰랐는가에 대해 의 혹의 눈길이 쏠렸다.
사건이 확대되면서 방송국쪽을 믿을 수 없다는 여론이 커감에 따라 조계 종 중앙종회 사회분과위원회(위원장 여연스님)는 자체적인 조사를 벌였다 . 조사위는 3월11일부터 25일까지 2주간에 걸친 재무감사로 새로운 사실 을 추가로 밝혀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96년 9월30일자 어음 8억5천7 백만여원이 할인돼 대구지국에 송금된 것처럼 조작·횡령됐고, 경리부 출 납 여직원 개인명의로 된 통장에는 3개월 동안 6억5천만원이 입출금됐다 는 것이다. 이 통장이 불교방송의 비자금 관리 통장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조사위의 분석이다. 사회분과위가 이처럼 큰 규모의 추가횡령이 있다 는 사실을 밝혀냄에 따라 전면 재조사가 불가피하다고 결론짓고, 조계종 중앙종회 차원의 진상조사 특별위원회 구성을 추진키로 했다. 이에 따라 조계종 종회 조사위의 감사가 끝난 뒤, 불교재단 이사회는 4월4일 경영진 의 관리 소홀 책임을 물어 불교방송 재단이사장 종하 스님과 조해형 사장 의 사표를 수리하고, 후임에 재단이사장 직무대행으로 영담스님(상임이사 ), 사장 직무대행에 서돈각 대한불교진흥원 이사장을 선임했다.
방송국 경영진은 아직 이 사건을 단순 경리부정사건으로 보고 있다. 두 사람의 경리직원이 공금을 횡령해 증권투자 등을 하다가 손해를 보게 되 자 손해액을 계속 횡령 등의 방법으로 메우다가 더이상 메울 수 없게되자 문제가 불거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불교방송 경영진의 주장처럼 두 사람 만의 경리부정사건이라 하기에는 의문점이 너무도 많다.
과연 경리직원 두 사람이 75억대의 어음 29장을 10개월 동안 단 한차례도 발각되지 않고 횡령할 수가 있을까. 유일한 구속자인 김현안씨는 지난 4 월24일 열린 공판에서 “상무·사장·이사장이 비자금 약 10억원을 조성 해 주식 및 사채 등에 투자하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함으로써 불교방송의 고위층이 이 사건에 깊이 개입했음을 밝혔다. 자신은 김선도 씨와 함께 비자금에 대한 관리만 했을 뿐이라고 말한 것이다. 자신은 ‘ 깃털’에 불과하고 몸통은 따로 있음을 주장한 셈이다.
조계종 종회 무산도 이 사건과 관련있어
그후 방송국 고위층이 관련된 부분도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해 김현안씨의 주장은 나름대로 설득력을 더해가고 있다. 95년 불교방송 부산지국 설립 과 관련해 부산지국에서 24억여원을 서울로 송금했으나 19억원만 입금된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5억원이 사라진 것이다. 당시 불교방송 총무국장 이태호씨는 최근 기자회견을 통해 5억원 가운데 1억원이 이사장이자 사장 직무대리였던 종하 스님의 재단 이사 출연금으로 전용됐다고 밝혔다. 기 밀비 횡령도 사실로 확인됐다. 김선도씨 등이 96년 기밀비 집행액 3천1백 만여원을 정당한 승인없이 부당지출했다는 삼일회계법인의 감사 결과와 달리, 조계종 종회 조사위 감사에서는 사장과 상무가 이 지출에 대해 결 재했음을 밝혀낸 것이다.
이와 함께 사건초기 경영진이 수습에 늑장을 부리고 한달이 넘는 조사기 간 동안 김현안씨 등 두 사람에 대한 조사를 벌이지 않은 점, 경리부 직 원 박지현씨를 사건 직후인 2월1일 서둘러 정직시킨 점도 의혹을 사고 있 다. 한해 동안 90억원을 떡주무르듯 했던 김선도씨가 겨우 1천만원을 인 출해 국외로 도피했다는 점도 회피할 수 없는 의문이다.
방송국 경영진이 의심받는 또다른 사실은 삼일회계법인의 감사보고서 변 조 의혹이다. 삼일회계법인은 1월14일부터 16일까지 감사를 실시한 뒤 1 월20일 이를 보고하지만 보고서가 이틀만에 변조돼 22일 보고됐다는 것이 다. 그 사이 1월21일 김선도씨는 베트남으로 도피했다. 이를 두고 회사가 김선도씨를 의도적으로 도피시켜 사건을 은폐하려했다는 주장도 있다.
불교방송 문제가 심각한 방향으로 흐르면서 불교계는 조계종 총무원의 미 온적인 대응에 대한 불만도 높아가고 있다. 이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인 조처를 취하지 않는 점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종회가 계속 무산되는 것도 사건을 의도적으로 방치하려는 세력 때문인 것으로 보는 사람도 적지않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조계종이고 총무원이다. 종하스님은 총무원과 협의 해 94년 불교방송 사태 이후 불교방송 재단이사장으로 갔다. 따라서 이번 불교방송 공금횡령사건의 일차적 책임은 종단에 있다. 종하스님, 영담스 님, 조해형 전사장, 송병욱 전 상무를 탄생시킨 조계종이 제일 큰 문제이 고, 2차적으로는 이를 수수방관한 대한불교진흥원이 이번 불교방송 사건 의 책임을 져야 한다.” 얼마전 공청회에서 나온 한 스님의 발언은 불교 계가 이 사태를 어떻게 보는지 짐작케 한다.
이에 따라 지난 5월1일에는 17개 단체로 구성된 ‘불교방송 정상화를 위 한 범불교 대책위원회’(위원장 여연스님)가 불교방송 정상화를 위한 활 동에 들어갔다. 범대위는 “불교방송 공금유용 및 횡령에 책임을 지고 이 번 사태 관련된 인사는 모두 공직에서 떠나야 한다”며 “불교방송 사태 에 총무원 간부의 개입의혹이 끊이지 않고 제기되는 상황에서 총무원 집 행부는 불교방송 공금횡령 사건의 진상규명에 앞장서야 한다”고 주장다. 이들은 현재 검찰에 진정서를 제출,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검찰, 의혹 모든 부분 내사 계획
검찰도 범대위가 제출한 진정서 사건에 대해 새롭게 수사를 벌인다는 계 획이다. 그러나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김선도씨에 대한 소환조사가 당 분간 불가능해 사건의 전모를 밝히는 데는 상당히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 인다. 현재 베트남과는 ‘범죄인 인도조약’이 체결되지 않아 강제소환할 방법이 없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검찰은 그러나 “필요하다면 불교방 송 경영진을 포함해 의혹을 사고 있는 모든 부분에 대해 내사할 계획”이 라고 밝혔다.
한편 불교계에서는 “파사현정(破邪顯正:그릇된 생각을 깨뜨리고 바른 도 리를 드러냄)의 정신으로 이 사건을 명명백백히 밝히지 않는 한 불교개혁 은 없다”는데 대부분 공감하고 있다.
김창석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