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1997년05월15일 제 157호 한겨레21

“통일이 싫어요”

(사진/반세기를 넘긴 분단의 역사는 통일에 대한 의식까지도 갈라놓고 있다. 특히 언론의 편파적인 보도가 통일교육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통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키운다. )

“통일이요. 싫어요. 못사는 북한과 통일하면 우리도 같이 못살게 되잖아 요.” “통일되면 거지떼가 몰려올까봐 싫어요.”

지난 4월30일 오후 서울의 ㅊ초등학교. 방과후 운동장에서 놀던 몇명의 아이들에게 북한돕기운동과 통일에 대한 질문을 던지자 ‘예상밖의 대답 ’들이 튀어나왔다. 반 수 이상의 아이들이 “통일이 싫다”고 답한 것이 다. 이어 1학년에서 6학년까지 약 30명 가까운 아이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북한이 뭔지 모른다”는 1학년 몇을 빼면 결과는 역시 비슷했 다.


일부 초등학교 절반 이상이 통일에 부정적

“우리 형은요. 텔레비전에서 북한만 나오면 채널을 돌려요.”

“김정일이 전쟁준비만 하잖아요.”

이런 대답들은 과연 초등학생 전체의 통일 인식을 반영한 것일까, 아니면 일부의 특수한 사례일 뿐일까? 또다른 예를 살펴보자.

초등학교 4학년 3학년 남매를 둔 회사원 김아무개씨는 최근 큰딸에게 “ 북한 어린이들이 굶어죽고 있다는데 저금통을 털어 성금을 낼 생각이 없 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간단히 “싫다”였다. 김씨는 딸 아이가 든 이 유가 놀라웠다. 초등학교 4학년인 딸아이가 “선생님이 그러는데요 우리 가 식량을 보내줘도 김정일이 다 군량미로 바꿀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 이다. 보수언론들의 논리를 그대로 옮긴 것이다.

과연 김씨의 큰딸은 특수한 경우일까, 아니면 ‘우리 아이들’의 통일에 대한 인식이 바뀐 것일까? 일선교사들에 따르면, 아쉽지만 후자일 가능성 이 높다. 최근 초등학교 학생들의 통일인식이 빠르게 군사독재 때의 정부 논리를 닮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새싹들의 통일인식에 비상이 걸린 것이 다.

지난 81년에 임용된 서울 ㅅ초등학교의 한 선생님은 “최근 학생들의 통 일 인식이 80년대와 달라졌음을 느낀다”고 토로한다. 통일노력이 활발했 던 80년대 말까지는 통일의 당위성을 교육하기가 쉬웠단다. 그러나 그는 근래 북한이 못산다는 사실과 통일비용 등이 자주 언론을 타면서 ‘왜 통 일이 되어야 하는지’를 가르치기가 점점 힘들어짐을 느낀다.

서울 중화중학교 유수용 선생님은 누구보다도 이런 변화를 깊이 체감하고 있다. 전교조 조합원인 유씨는 지난 89년 해직됐다 지난 94년 복직했다. 그런데 그는 복직 뒤 크게 놀랐다. 수업시간에 여러 차례 확인했지만 아 이들의 통일인식이 지난 89년에 비해 매우 후퇴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 로 “통일되는 게 싫다”는 응답이 반이 넘었다고 유씨는 전한다.

그렇다면 왜 학생들의 통일인식이 이렇게 후퇴하고 있는 것일까. 이에 대 해서는 언론의 편향적 보도태도와 초·중등학교의 통일교육 부재가 교묘 히 결합된 탓이라는 지적이 많다.


교육은 뒷짐, 언론보도에 무방비 영향받아

얼마 전 학급에서 북한돕기와 관련해 교육한 바 있는 태릉초등학교 박아 무개 선생님은 “북한을 돕지 말자는 아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언론이 전 한 부정적인 모습을 그대로 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면서 “학생들은 교사가 특별히 얘기해주지 않으면 결국 언론에서 본 것을 되풀이할 수밖 에 없다”고 진단한다.

그는 또 “북한을 돕지 말자는 어린이는 오히려 똘똘한 축에 속하는 경우 가 많다”면서 “이는 이런 아이들이 텔레비전이나 신문 등 언론을 더 많 이 보기 때문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ㅊ초등학교에서 질문에 응 답한 30여명의 학생들도 북한 얘기를 어디서 들었느냐는 질문에 대부분 텔레비전이라고 답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 초등장학관실과 서울시교육청에서도 “현재까지 학생들 의 통일인식을 연구한 적은 없다”면서도 “만일 학생들의 통일인식이 나 빠졌다면 이는 언론 탓이 클 것”이라고 밝혔다. 학교 교육은 기본적으로 통일지향적이라는 것이다.

교육부는 학교의 ‘통일지향 교육’은 초등학교 도덕교과서에서도 간단히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무엇보다 지난 93년 전면 개편된 현 초 등학교 도덕교과서가 이전의 ‘반공’ 대신 ‘통일’을 지향하는 내용으 로 바뀐 데서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통일 관련 대목이 등장하는 것은 3학년 때부터다. 도덕 과목의 ‘국가민족생활’ 단원 내에 있는 ‘분단인식과 통일의 필요 성’이 그것이다. 그리고 통일 단원은 ‘통일조국의 미래 모습’(4학년), ‘평화통일의 방법’(5학년), ‘통일을 위한 노력’(6학년)으로 이어진다 .

교육부의 한 관계자는 이런 단원 구성에 대해 “우리의 통일교육은 학생 들에게 남북은 같은 민족으로서 통일이 돼야 하며, 분단돼 있기 때문에 그만큼 국가의 힘이 약하다는 것을 교육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그는 “통일 뒤 잠깐은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국방 등의 비용감소 로 더 큰 성과를 거둘 것이라는 점도 통일교육 때의 강조점 중 하나”라 고 밝혔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교육부의 ‘교육방침’이 초등학교 학생 들에게 잘 전달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한 아동교육 전문가는 이에 대해 “어린 학생들 사이에 통일에 대한 부정 적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면, 이는 아마 아이들의 이기적인 인식 탓이 클 것”이라고 진단했다. 즉 “언론 등에서 통일비용 등으로 통일 뒤 경제상 황이 어렵다는 것을 강조하는데 영향을 받아 왜 내가 통일에 따른 경제적 피해를 봐야 하느냐고 반발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와 함께 언론의 북한에 대한 보도태도 자체가 어린 학생들에게 부 정적 인식을 확산시키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민족 등 추상적이고 거 창한 개념은 아직 어린이들에게 가슴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면서 “반면 경제가 어렵다. 못살게 된다. 전쟁위협이 있다는 등 좋다 나쁘다라는 개 념은 어린 아이들에게 피부로 다가오는 개념”이라고 설명한다. 다시 말 해 분단에 따른 남북 양진영의 독재 가능성 등 분단의 부정적 측면이나, 군사비 감축에 따른 장기적 발전 가능성 등 통일의 긍정적 모습 등은 아 직 아이들이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 어렵다. 반면 못산다, 나쁘다 등의 개념은 아이들이 쉽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언론의 감각적이고 단세포적 인 보도가 아이들의 통일인식을 좌우하는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교사 통일교육 급하다

그렇다고 이런 언론보도를 제대로 여과해주지 못하는 초등학교 통일교육 의 책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 통일교육이 잘 되지 못하는 이유로 교육부는 “초등학교 교사들에게 체계적인 통일교육을 하지 못한 것”을 우선 꼽았다. 중고등학교는 도덕(윤리) 교사들을 대상으로 1년에 8백명씩 ‘통일교육’을 시키지만, 초등학교 교사들에 대해서는 이런 교 육이 없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교사들은 전 과목을 다 다루기 때문에 특 별히 통일교육만 따로 떼어서 하기가 어려운 탓이다.

하지만 초등학교 교사들의 통일교육을 막는 것은 비단 이런 ‘전문성 부 족’ 때문만은 아니다.

교육부의 한 관계자는 초등학교 교사들의 입을 묶는 큰 이유 중 하나로 정보기관의 감시를 꼽았다. “학부모의 신고 등으로 교사들이 보안법 위 반으로 안기부에 불려가 곤욕을 치른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보 안법 위반으로 조사받은 사람 중 80%가 교사라는 말도 있다”고 전했다. 이런 상태에서 교사들이 ‘민감한’ 통일문제에 입을 다무는 것이 상책이 라고 생각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현재 남북통일이 화해쪽으로 방향을 트는 듯하다가도 다시 얼어붙곤 하는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멸공 논리에 찌든 기성세대들’의 ‘부정적 통 일관’임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말은 ‘어린 학생들’이 ‘부정적 통 일관’을 갖게 되면 멀지 않은 장래 통일논의가 본격화되는 시점에서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뜻과도 통한다. 교육부를 포함해 정부가 통일지향 적 교육을 추구한다면 무엇보다 먼저 ‘다수 언론의 무차별적인 반통일 공세’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해야할 것 같다.

김보근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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