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1997년05월15일 제 157호 한겨레21

닫힌 마음 여는 열린 통일교육

(사진/토론 수업만으로도 통일인식은 긍정적으로 변한다. 언론의 무차별적인 공세가 분단의식을 고취한다는 것이 유수용 교사의 말이다.)

“반대 35 찬성 5, 반대 30 찬성 10, 반대 25 찬성 13….”

지난 4월 초. 자신이 가르치는 11개반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며 유수 용 선생님(서울시 면목동 중화중학교)은 우울해졌다. ‘굶주리는 북한동 포 돕기’에 대한 학생들의 인식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나빴기 때문이 다. 3학년 8개반과 2학년 3개반을 대상으로 한 이 설문에서 ‘북한동포 돕기’에 반대하는 의견은 35~25명씩 나온 반면, 찬성하는 의견은 15~5명 에 그쳤다.


우리의 반쪽을 껴안는 통일교육

하지만 그가 이런 결과를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전교조와 관련해 지난 89년 해직됐다 94년 복직했을 때 이미 유 교사는 학생들의 통일인식이 부정적으로 바뀐 데 놀랐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유 교사는 ‘북한동포 돕기운동’이 자꾸만 멀어져만 가는 학생들의 ‘통일에의 기 대감’ ‘한민족 공동체 의식’을 되살릴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유 교사로서 설문조사는 총 6시간으로 짜인 통일수업의 맨 첫시간에 해당하는 셈이었다.

이후 ‘통일수업’은 신문이나 시사지 등에 난 북한관련 자료 공부하기, 공부한 결과를 서로 이야기하기, 어떤 일을 할 것인지 토론하기 등으로 이어졌다. 학생들이 자신의 주장을 정리해 발표하는 마지막 통일수업 시 간엔 찬반 의견이 쏟아졌다.

“북한을 돕기에는 우리나라의 경제상황이 너무 나쁘다.”

“다 변명이다. 경제불황 속에서도 잘 팔려 나가는 사치품들을 보라.” “도와준다고 해도 그것이 고스란히 북한주민에게 넘어가리라는 보장이 없다.”

“북한과 경쟁을 하려면 좀더 당당하게 했으면 한다. 이건 너무 비인간적 이다.”

“지금 북한에 많은 식량을 지원하는 것은 굶주린 호랑이에게 먹이를 주 는 것과 같다.”

“아프리카 사람도 도와주는데, 이번 식량난은 오히려 북한과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다.”

학생들의 발표 뒤 유 교사가 다시 찬반 설문조사를 했을 때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처음과는 달리 “찬성 25 대 반대 11, 찬성 26 대 반대 17, 찬 성 30 대 반대 8…” 등 찬성쪽이 많아진 것이다. 물론 유 교사는 수업시 간에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않았다. 이런 변화는 오직 학생들의 학습과 토론이 낳은 것이다.

“이런 변화는 무엇보다 아이들의 고민 속에서 나왔기 때문에 값지다고 봅니다. 학생들은 주로 텔레비전을 통해 북한 이야기에 접해 왔는데, 독 재, 가난, 통일비용, 잠수함사건 등 부정적 이미지를 표피적으로 간진해 온 거죠. 그러다 자기 스스로 북한 기사를 찾고 북한 식량난이 얼마나 어 려운지를 고민하면서 피상적인 북한 인식에서 벗어나게 된 거죠.”

유 교사는 이 밖에도 “학생들이 어른들로부터 고스란히 흡수한 이기주의 와 개인주의를 스스로 극복할 기회를 주는 것” 역시 북한돕기가 갖는 큰 의의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유 교사는 앞으로 학생들에게 직접 실천할 수 있는 일을 찾게 할 2단계 통일수업을 계획하고 있다. 가령 용 돈의 일부를 매달 떼서 북한주민을 돕거나 반에서 한달에 한번씩 성금을 걷어 사회단체에 내는 것 등의 ‘작은 실천’ 등이 그것이다. 유 교사는 나아가 6월에는 전교조에 통일문제를 소재로 공동수업을 벌이자고 제안할 생각이다. 공동수업이란 교과목에 상관없이 모든 교사가 ‘중요한’ 주제 를 놓고 똑같이 수업하는 것을 말한다.


이기심 극복하는 작은 실천

하지만 유 교사는 이런 수업에 앞서 무엇보다 교육부의 징계를 걱정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는 언론의 부정적 통일관이 ‘무차별적으로’ 학생들에게 영향을 주는 상황에서 목적의식적 통일교육이 필요하다고 생 각한다. 또 최근의 사태에 대한 판단을 위해서는 신문이나 시사지 등을 교재로 채택할 필요성도 크다. 그런데 현행 교육법은 교과서 이외의 교재 로 수업을 하는 것은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사람들은 만일 북한이 망하면 자연스럽게 우리나라에 흡수될 것으로 생 각합니다. 그러나 사회에 반통일의식이 팽배하면, 막말로 중국쪽에 흡수 될지도 모를 일 아닙니까? 삼국시대 때 고구려처럼 말입니다. 따라서 북 한주민과 우리가 마음으로부터 하나가 될 수 있는 그런 노력이 중요하다 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고형성기의 학생들이 언론의 무차별적 공세를 받으면서도 제대로 된 통일교육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입니 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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