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드 |
1997년05월15일 제 157호
|
|---|
베이징의 한 신문사에서 같이 근무하는 루이샤오린(46)과 하이옌(42·여) 부부에게는 다섯명의 딸린 식구가 있다. 열살 난 아들 루이칭과 ‘네명의 부모’가 그들이다. 왜 ‘네명의 부모’인가 하면 루이샤오린과 하이옌이 각각 외동아들 외동딸이어서 양가 부모를 같이 모시는 것이다.
루이샤오린과 하이옌의 부모들은 예전에 국영기업에서 일하다 지금은 퇴 직해서 특별히 하는 일이 없다. 부부 두 사람이 버는 3천위안(약 30만원) 남짓한 돈에 일곱 사람의 생계가 걸려 있으니 살림이 빠듯한 것은 불 보 듯이 뻔한 일이다. 이에 대해 루이샤오린은 이렇게 말한다.
“‘네명의 부모’를 부양하고 살기가 무척 힘듭니다. 하지만 이런 ‘네 명의 부모’ 문제가 우리만 겪는 문제는 아니예요. 최근 중국에는 노인부 양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으니까요. 중국은 철저한 산아 제한 정책 때문에 한 자녀밖에 가질 수 없습니다. 따라서 앞으로는 우리 처럼 결혼한 한쌍의 부부가 양쪽 부모 모두를 부양해야만 하는 경우가 더 욱 늘 겁니다.”
사회보장 대폭 축소는 개혁개방의 산물
루이샤오린은 ‘네명의 부모’ 문제가 큰 사회문제로 되기 시작한 데는 개혁개방의 영향도 크다고 설명한다. 개혁개방 전에는 국가에서 노인을 부양하는 것이 당연시 되었는데, 그 후 ‘사회보장제도’가 크게 축소됐 기 때문이다. 우선 루이샤오린의 ‘네명의 부모’들도 당연히 지급받아야 할 퇴직연금이 끊긴 지 오래다.
“우리 부모님들이 전에 일하던 국영기업들은 사정이 좋지 않습니다. 지 금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월급도 제대로 못 주는 형편이죠. 그러니 퇴직 한 사람들한테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이래저래 부모를 부양하는 젊은 사람들의 부담이 커질 수 밖에 없는 거죠.”
루이샤오린 부부가 태어날 당시만 해도 여러 명의 자녀를 가지는 것이 허 용됐다. 하지만 이 부부처럼 ‘외아들과 외동딸의 결혼’은 머잖은 장래 에 중국 가정의 전형이 될 것이다. 이른바 ‘1-2-4’형의 가정(한명의 아 이, 두명의 부모, 네명의 조부모와 외조부모로 이루어진 가정)이다. 21세 기 초가 되면 아들이 부모를 부양하는 중국의 전통적인 가정은 이런 1-2- 4형 가정으로 대체될 것이 분명하다.
국제적인 관례에 따르면 60세 이상의 인구가 전체 인구의 10% 이상을 차 지할 경우 노년형 국가로 분류된다. 중국은 올 들어 이미 노년형 국가로 접어들었다. 이와 관련해 최근 <베이징칭녠빠오>(北京靑年報)는 중국 도 시민의 부양률(취업인구에 대한 퇴직인구의 비율)이 2000년에 20.14%에 이르고, 2020년에는 37.37%, 그리고 2031년에 47.3%로 절정에 이를 것이 라고 보도했다. 세계은행 역시 2050년이면 중국의 퇴직노인 수가 3억명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노령화사회에 대비한 사회보장제도는 중국의 가장 큰 문제로 대두될 수 밖에 없다.
1949년 공산정권 수립 이후 중국은 전반적인 사회계획 아래 퇴직한 도시 거주 노인에게 연금을 지급하는 보험제도를 채택했다. 지난 40년간 현직 에 있는 사람들이 퇴직한 노인들을 부양하는 이 제도는 어찌됐건 나름대 로 사회보장기능을 담보해왔다. 그러나 산아제한에 따른 출생률의 저하, 평균수명의 연장에 따라 이런 양로보험체제는 노쇠하고 병들어 제 구실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 예로 연금비용을 살펴보자. 1978년만 해도 퇴직자들에게 지급되던 연 금은 중국 돈으로 17억3천만위안(약 1천7백30억원)에 그쳤다. 이것이 199 0년에는 3백75억위안, 그리고 1994년에는 8백83억위안으로 폭발적 증가세 를 보였다. 문제는 사실상의 연금지급 주체인 국영기업의 경영상태가 이 렇게 늘어나는 부담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고 있다는 데 있다.
퇴직연금도 수혜자 급증에 파산 위기
통계에 따르면 현재 중국 국유기업의 자산대비 부채비율은 평균 80%를 상 회하고 있으며, 심한 경우에는 100%를 넘어선 곳도 많다. 또 전체 국유기 업 가운데 50% 내외의 기업이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특히 96년 초에 는 중국 건국 이래 최초로 국유공업 기업의 총 적자가 전체 수익을 넘어 서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재직중인 노동자들의 월급문제만 가지고도 골머 리를 앓고 있는 이런 적자기업들에게 노인연금은 큰 짐이다. 그래서 중국 각 도시에는 몇년씩 연금을 지급받지 못하는 노인들이 수두룩하다. 생존 권을 위협받는 이들은 때로 자기가 일하던 공장이나 지방 정부 청사 등에 무더기로 몰려가 항의하기도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 방법을 찾기 힘들다.
그렇다고 퇴직한 노인들이 다른 일거리를 찾는 것도 하늘의 별따기다. 젊 은 사람들의 실업문제도 심각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 또한 개혁개방이 낳은 현상이기도 하다. 개혁개방의 폭이 커지면서 중국에도 기업 합병과 파산이 일상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86년에 32건에 불과하던 기업 파산건수는 94년 1천6백25건, 95년 2천2백건, 그리고 96년 5천건으로 크게 늘었다. 기업 합병은 이보다 더욱 보편적이다. 젊은 사람 도 취업을 못하고 노는 마당에 나이든 퇴직자를 쓸 직장이 있을 리 없다.
노인문제를 우려한 중국 국무원은 지난 96년 8월 양로보험제도 개혁의 단 기 목표를 제시했다. 기업에서 퇴직 노동자의 생계를 책임지는 것에서 사 회보험을 확대시키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중국 정부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원칙에 따라 “국가기본보험", “기업보충보 험", “개인저축보험”의 세가지를 결합시키는 3단계 양로보험제도 확립 을 천명했다. 그러나 이러한 방안도 실제로는 국유기업에서 일하는 노동 자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일 뿐, 그 규모가 급속도로 확장되고 있는 외국 자본과의 합자기업이나 개인기업 그리고 개인 노동자 등에게는 전혀 그 혜택이 돌아가지 않아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막상 양로보험기금이 조성돼도 이를 관리하는 통일된 기구가 없는 데다, 기금 증식방법 또한 낙후돼 양로보험제도의 성공 여부는 지극히 불투명하다.
“돈 없으면 불행한 노년 맞는다”
결국 생활능력 없는 노인을 부양하는 부담은 젊은 자녀에게로 전가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점점 개인주의화 돼가는 젊은 사람들이 자기 생활을 희생하면서 부모를 모실지 또한 의문이다. 이렇게 자신의 노후에 불안의 기운이 짙게 드리워진 것을 느끼는 중국 사람들은 젊었을 때 한푼이라도 더 돈을 손에 쥐려고 한다. 루이샤오린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나와 아내는 양쪽 부모를 다 모시고 있지만, 정작 우리가 늙었을 때 우 리 아들이 다시 우리를 부양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 노후를 대비해서라도 믿을 건 돈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하든 현금을 손에 쥐고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노후에 대한 불안은 중국인들로 하여금 돈에 대해 집착을 더욱 키 우고 있는 것이다.
베이징=김성환 통신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