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야기
1997년05월15일 제 157호 한겨레21

미국식 영어가 만국공통어라구요?

“아시아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는데 와 서 보니 참 흥미롭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좋은 경험을 하게 해준 에스페 란토어가 참으로 고맙게 느껴지는군요.”

벽안의 사람이 영어가 아닌, 그렇지만 낯익은 듯한 언어로 이야기를 한다 . 발음이 부드러워서 스페인어인가 물었더니 대답은 Ne!(아니오). 클라리 타 벨리코바(34). 불가리아에서 온 에스페란티스티노(여성 에스페란티스 토)이다. 지난 4월 한국에스페란토협회의 초청으로 한국에 왔다. 그의 에 스페란토어에 대한 열정과 훌륭한 실력을 눈여겨본 한국에스페란토협회가 그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다. 이 협회에서 클라리타는 한국인들에게 에스 페란토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에스페란토어를 공부한 지는 올해 로 꼭 10년이 됐다. 에스페란토어를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그는 “하 나의 언어로 이렇게 평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데 마다할 리 없었지요” 라며 웃는다.

비록 삼개월의 짧은 시간이지만 낯선 한국에서 느끼는 연대감은 그를 행 복하게 했다. “지금 영어, 특히 미국식 영어가 만국공통어로 인식돼 있 지만 얼마나 모순된 일입니까. 한 국가의 언어가 수많은 다른 민족의 고 유한 언어를 지배한다는 것은 언어뿐만 아니라 그 나라의 역사·정신·문 화를 지배하는 것 아니겠어요.”

코흘리개 꼬마에서부터 웬만한 직장인들까지 미국식 영어 배우기 바람이 불고 있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그가 용케도 꼬집는다. 그는 태권도도 할 줄 안다. 불가리아에 있는 북한사람에게서 배웠단다. 에스페란토어에 대 한 이야기를 다 할 수 없는 것이 무척 아쉽다는 그는 “평화를 희망하는 사람이라면 언제든지, 누구라도 오십시오. 우리는 에스페란토어를 하는 사람이면 누구라도 동지(사미데아노)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당신도 나 의 동지입니다.”

평화를 만드는 이들이 쓰는 언어여서일까, 그의 말소리에서 부드러운 평 화를 느낄 수 있었다. (한국에스페란토협회: 02-717-6794)

김상준/ 자유기고가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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