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야기
1997년05월15일 제 157호 한겨레21

혼신의 힘으로 짜장면 뽑는다

“지구촌에 살고 있는 어떤 사람이라도 단 한그릇 먹어보고 눈물을 흘려 줄 음식을 내 혼신의 힘을 다하여 만들고 싶다. 21세기가 기다리고 있기 에….”

서울 신공덕동 효창운동장 뒷편 한 중국음식점의 유리창에 붙어 있는 글 이다. 가로, 세로 1m 크기의 파란색 바탕에 흰글씨로 쓴 이 글은 주인 이 문길(40)씨의 ‘철학’이 담겨 있다.

“혼신의 힘을 다하여…”라는 글귀는 이해할 만하지만, ‘21세기’까지 운운하는 것은 조금 거창하다. “21세기를 대비해 특별히 무언가를 준비 하고 있어서 쓴 말은 아닙니다. 조용필씨의 노래 <킬리만자로의 표범>에 나오는 가사가 맘에 들어 ‘표절’을 했죠.”

4인용 탁자 4개를 갖춘 5평 남짓의 식당에는 번듯한 간판도 따로 없다. 다만 출입문에 ‘신성각’이라고 선팅을 해놨을 뿐이다.

지난 74년 경남 거창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돈을 벌겠다고 무작정 서울 로 올라온 이씨는 영등포구 당산동에 있는 한 중국음식점에서 접시닦기부 터 시작해 면발뽑기, 주방장으로 7년 동안을 일했다. 81년 신성각을 차리 면서 주방장을 맡았고, 82년 결혼한 아내는 배달을 돕고 있다.

“주방일을 17년쯤 하다보니 짜장면 한그릇을 만들어도 무언가 내 나름대 의 철학이 있어야 될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짜 장면 한그릇을 만들어도 죽을 각오로 하자’였습니다. 3일 밤낮을 고민하 다 바로 저 문구를 만들어냈습니다.”

이씨가 만드는 2천원짜리 짜장면에 특별한 재료나 비법이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고춧가루와 참기름 같은 것을 직접 시골에서 구해다 쓰고, 아침 일찍 일어나 가능한 신선한 야채를 고르는 그의 부지런함만이 더해졌을 뿐이다. 그러나 면발은 여전히 자신이 직접 손으로 뽑는다.

“짜장면 만들어서 돈 벌려고 했다면 벌써 기계로 뽑았을 겁니다. 적게 벌어 적게 쓰자는 생각을 하니까 가능하지요. 손으로 뽑으면 쫄깃쫄깃하 고 소화도 잘돼요.”

이씨는 “점심시간만 되면 밖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걸 보면 단골손님 들도 ‘혼이 들어간 짜장면’을 알아주는 것 같다”며 웃었다.

이용인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15일


커버스토리 포커스 문화시대 특집 지난호 전체보기 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