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야기
1997년05월15일 제 157호 한겨레21

“정치보복은 아직도 여전합니다”

“명백한 보복행위입니다. 정당한 재판을 받기 위해서라도 일단 귀국이 허락돼야 할 게 아닙니까.”

일본 오사카에 거주하고 있는 재일동포 3세 김병진(42)씨는 올해초 부인 과 아들의 손을 잡고 고국을 방문하려던 계획이 어이없이 무산된 데 대해 허탈감을 삭이지 못하고 있다. 암울한 한국현대사와 얽혀있는 김씨의 입 국 거부 사연은 한편의 드라마 같다.

일본 고베에서 태어난 그는 지난 83년 연세대 대학원 유학중 간첩으로 몰 려 당시 보안사 서빙고분실로 연행됐다. 세달 동안 감금돼 고문을 받고 여권까지 빼앗긴 그는 구속보류를 조건으로 84년부터 2년간 보안사에서 첩보분석 임무를 맡아야 했다. 대학원에 복학해 민간인으로서 협조하겠다 는 각서를 쓰고 86년 1월31일 퇴직을 허락받은 김씨는 다음날 바로 일본 행 비행기를 탔다. 김씨는 그해 7월 한국에서 겪었던 일과 보안사의 인권 유린 등을 고발하는 <보안사>라는 책을 펴냈고 이 책은 한달 뒤 한국어판 으로도 출판됐다. 당시 한국어판을 낸 출판사 관계자들이 수배되고 책이 압수되는 일이 벌어졌다. “제가 쓴 책에는 보안사의 일부 부대 구성 등 과 인권유린 상황을 언급했을 뿐 어떠한 군사상 불이익도 초래하지 않았 습니다.” 기무사는 그러나 그를 군사기밀보호법위반 혐의로 기소중지했 다.

김씨는 귀국할 경우 곧바로 기관에 연행될 줄 알면서도 올해초 주 오사카 한국영사관에 여권발급을 신청했다.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한·일중학 생 교류 대표단으로 뽑혀 한국을 방문하게 됐기 때문이다. 뜻밖에 여권이 발급됐다. 그러나 며칠 뒤 영사관으로부터 “행정착오이니 여권을 돌려달 라”는 연락이 왔다. 이유를 물으니 “기무사에서 행정처분을 내렸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여권을 돌려준 김씨는 공항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타는 아들을 배웅할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정보사가 기무사로 이름을 바꾸고 새로 태어날 것을 다짐을 했 다지만 아직도 본질적으로는 별다른 변화가 없음을 이번 일을 계기로 새 삼 실감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창은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15일


커버스토리 포커스 문화시대 특집 지난호 전체보기 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