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1997년05월15일 제 157호 한겨레21

스크린의 무림열전

(사진/`귀천도'.)

무협지를 논할 때 무협영화를 빼놓을 수 없다. 무협지를 따라 들어온 이 른바 ‘홍콩영화’는 무협지와 함께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오랫동안 천 하를 지배했다. 67년 최초의 무협영화 `방랑의 결투'가 극장에서 상영됐 을 때 관객들의 반응은 경이 그 자체였다. 사람이 하늘을 날아다니고, 붉 은 피가 분수처럼 치솟는가 하면, 바위를 깨뜨리는 장풍 등. 이후 홍콩영 화가 쏟아져 들어오는데 이즈음 `삼인의 협객'은 최초의 홍콩스타 왕우를 탄생시켰다. 흰 장삼에 독특한 걸음걸이, 싸늘한 시선, 한을 품은 듯 비 감한 표정, 외팔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한 신비의 칼솜씨 등 왕우의 캐릭터 는 초창기 무협영화 관객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의리의 사나이 외팔 이', `돌아온 외팔이' 등 왕우는 70년대 초반 ‘외팔이’ 시리즈로 극장 가를 휩쓸었다. 왕우는 또 전설의 쿵후 ‘철사장’을 다룬 `용호의 결투' 를 통해 검술영화를 뛰어넘어 권법영화를 도입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하 지만 왕우는 칼잡이였을 뿐, 권법영화를 활짝 꽃피운 인물은 따로 있었다 . 그의 이름은 이소룡.

그는 먼저 전설로 다가왔다. 죽음의 비밀로 인해 더욱 신비감을 풍긴 이 소룡의 영화는 73년 그의 사후 국내에 들어왔다. `정무문', `당산대형', `용쟁호투', `맹룡과강', `사망유희' 순으로 개봉된 이소룡 영화 다섯편 은 70년대를 산 모든 이들의 추억이다. 무뚝뚝한 왕우와는 달리 수려한 용모에 유머감각, 가슴에 빗살무늬 상처를 입은 채 상대방을 쏘아보는 매 서운 눈매, 눈부신 쌍절곤 묘기, 현란한 발기술, 힘이 넘치는 액션 등 그 는 완벽했다. 당시 중고생들 사이엔 책가방에 쌍절곤을 꽂고 다니는 게 유행이었고 ‘아비요~’하는 괴성이 자습시간 교실마다 울려났다. 특히 이소룡은 남성위주였던 홍콩영화 팬들을 여성층으로까지 넓혀놓는 선구자 구실을 했다. 사실 이소룡 영화는 정통 무협영화는 아니었다. 그러나 선 악 대결, 복수, 최후결전이라는 무협지 구도를 그대로 도입했다.

이소룡의 공백은 컸다. 그가 떠난 뒤 후계자를 자처하며(이름도 대부분 ‘~룡’이었다) 그의 흉내를 내는 이들이 많았으나 허사였고 홍콩영화는 잠시 주춤했다. 다만 78년 ‘소림사’가 각광을 받으면서 예전 스타일의 `소림사 십팔동인', `소림36방' 등이 큰 인기를 누렸지만 이소룡 같은 히 어로를 탄생시키지는 못했다.

그런데 영웅은 단아한 이소룡과는 달리 비틀비틀거리며 나타났다. 79년 추석 성룡 주연의 `취권'이 국도극장에서 개봉됐는데 당시 국내 흥행기록 (1백만)을 갱신하며 이듬해 구정까지 연장상영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성룡은 코믹쿵후라는 독보적인 위치를 확립하며 매영화마다 새로 운 연출을 보여 흥행 보증수표로 떠올랐다. 그는 `사형도수', `사제출마' , `소권괴초', `용소야' 등의 무협영화 외에도 `쾌찬차', `오복성', `용 형호제', `미라클', `프로젝트A', `폴리스맨' 등 현대물에도 등장해 홍콩 영화의 지평을 한층 넓혀놓았다. 성룡이 불세출의 스타로, 그리고 지지않 는 태양으로 80년대를 비췄을 때 중국 본토에서 흙바람을 일으키면서 이 연걸이 등장한다. `소림사', `황비홍', `촉산' 등을 들고나온 그는 서극 감독과 콤비를 이루며 고도의 SFX 촬영기법과 액션을 어울러 정통 중국 무술영화 부흥의 기치를 들었다.

한편 홍콩영화는 87년 `영웅본색'의 주윤발이 어두운 골목 저편에서 긴 바바리코트를 걸친 채 쌍권총에 불을 뿜어대 이전 검법영화들은 추풍낙엽 처럼 떨어져 나갔다. 무협지의 몰락과 거의 때를 같이해 무협영화도 그 맥조차 끊어질 지경이었다. 주윤발은 `영웅본색' 시리즈 외에도, `첩혈쌍 웅', `영웅투혼' 등으로 홍콩누아르의 선두주자가 됐고 그 뒤를 유덕화, 장국영을 거쳐 지금의 곽부성에까지 이르고 있다.

하지만 소생불가능할 것 같던 무협영화는 이연걸의 악전고투에 90년대 초 반 남장미인 임청하가 묘한 매력을 발산하며 원군으로 등장, 또한번 부활 한다. `동방불패', `절대쌍교', `백발마녀전', `신용문객잔' 등은 영화도 빅히트를 기록했지만 특히 비디오 시장을 완전히 천하통일했다. 최근 들 어 무협영화는 한국영화의 성장, 예술영화 도입, 할리우드 영화의 거센 기세 앞에 몇년 전 같은 기운이 느껴지진 않는다. 그러나 지난해 한국 무 협영화 `귀천도애'의 히트 등에서 이젠 홍콩영화가 아닌 한국 무협영화 시대가 도래할 조짐이 보이고 있다. 특히 최근 각광받고 있는 한국 창작 무협지들의 팬이 상당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한국영화계가 이를 가만 내 버려두진 않을 것 같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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