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1997년05월15일 제 157호 한겨레21

영욕의 세월 보낸 무협지의 역사

무협소설이 이 땅에 첫 검광(劍光)을 발하기 시작한 것은 1961년 김광주 가 경향신문에 `정협지'(情俠誌)를 번역, 연재하면서부터다. 이때부터 대 만, 홍콩 무협소설들이 번역, 출간되기 시작했는데 마땅한 오락거리가 없 던 때여서인지 무협지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사(邪)가 정(正 )을 넘어뜨리나, 정(正)이 다시 복수하는 무협지의 이야기 구조가 쿠데타 로 집권한 군사정권의 심기를 건드려 무협지는 ‘음란물’이라는 올가미 속에서 단속대상이었다. 그러나 대본소를 거점으로 한 박스 무협지는 대 중 속으로 급속히 파고들었다. 김용, 고룡, 와룡생 등이 당시 최고 인기 작가였다.

이러한 중국번역무협지 전성시대는 70년대 말까지 이어졌으나 졸속번역, 중복출판, 필명도용 등으로 자멸의 늪에 빠져들었다. 그 뒤 60~70년대에 밤새워 무협지를 읽던 세대들이 무협지 작가로 성장, 신선한 바람을 일으 키며 창작무협지 시대를 열어 나갔다. 지금까지 필명을 떨치는 5대 작가 금강, 사마달, 검궁인, 야설록, 서효원(사망) 등을 필두로 많은 무협작가 들이 고수(高手)의 자리를 놓고 일합(一合)을 겨뤘다.

하지만 국내 작가들도 끊임없이 신작을 요구받는 무협지의 특성상, 졸속 작품을 남발하는 이전의 잘못을 반복하고 만다. 이즈음 86년 고려원에서 펴낸 김용의 `영웅문'이 단박에 초베스트셀러 대열에 올라서면서 전국 서 점가가 다시 중국 번역무협지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그러나 지는 해를 붙 잡을 순 없는 법.

안으로 곪아갈 때 외부로부터 공략이 시작된다. 84년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 회오리 바람이 한바탕 대본소를 휩쓸고 지나가면서 아이들만 보던 것이라고 생각하던 만화에 대학생, 성인들의 손길이 갔고 무협지가 매출액의 80%를 차지하던 대본소에 만화가 엄청난 기세로 밀고 들어왔다. 설상가상으로 텔레비전의 보급, 스포츠, 레저, 패션 등 다양한 문화가 젊 은이들 사이에 급속도로 번지면서 무협지는 쇠락의 길을 걸어야 했다. 88 올림픽을 기점으로 급전직하한 무협지는 그렇게 소멸되는 것처럼 보였다. 대조적으로 만화는 공장시대로 접어들며 대량 생산체제로 들어선다. 이에 무협지 작가들은 만화 스토리 작가로 변신한다. 그중 야설록은 `사자여 새벽을 노래하라', `아마겟돈', `남벌' 등으로 무협지 작가시절보다 훨씬 더 높은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90년대 초반까지 무협지의 암흑기가 계속됐으나 92년 대선이라는 미묘한 시점을 앞두고 출간된 서효원의 `대자객교'와 사마달의 `대도무문'(80만 부)이 불티나게 팔리면서 무협지 부활의 징조를 보이기 시작했고 최근의 정치·문화적 상황과 신진기예의 속속 등장으로 제2의 황금기를 알리는 징소리가 울려퍼지고 있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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