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
1997년05월15일 제 157호 한겨레21

내면에 숨겨진 ‘신데렐라’

고선희(방송작가)

얼마전 막을 내린 텔레비전 미니시리즈 `별은 내 가슴에'는 8주라는 짧은 기간 동안 참으로 많은 화젯거리를 제공했다. 시작 전부터 일본만화 ‘캔 디’의 이야기구조와 캐릭터를 그대로 따왔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더 니, 방송기간 내내 캔디와 연이(최진실), 테리우스와 민이(안재욱), 안소 니와 준희(차인표)의 유사점 찾기가, 독자 서비스를 위해 너무도 쉬운 문 제로만 엮어놓은(그러니까 숨은 그림이라고 할 수도 없는) ‘숨은 그림찾 기’의 재미를 톡톡히 제공해주었다. 열광적인 시청자들은 PC통신이라는 첨단의 의사소통매체를 통해서 작가가 써놓은 대본을 수정하게까지 만드 는 막강한 힘을 발휘하기도 했다.

나도 그 드라마를 열심히 본 사람 중의 하나다. 매회 다 보지는 못했고, 10부 이후부턴 상당히 맥이 빠져서 ‘혹시나’했던 마음이 ‘역시나’로 끝나고 말았지만 , 그래도 드라마 중반에는 나도 모르게 최진실과 안재욱 이 그냥 결합됐으면 하는 순간이 있었고, 최진실이 고난에 처했을 때는 안재욱이나 차인표가 빨리 나타나서 그녀를 구해주길 바라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해 새삼 놀라움을 금치 못 하는, 참으로 희한한 경험마저 했다. 나 또한 어쩔 수 없는 신데렐라 콤 플렉스의 소유자인가?

콜레트 다울링의 저서 `신데렐라 콤플렉스'의 제1장 첫머리는 이렇게 시 작된다. “그녀는 지독한 감기에 걸려서 홀로 누워있다가, 자신이 아주 작고 상처받기 쉬운 절망적인 어린 소녀가 되어 지금 누군가로부터 안전 하고 따뜻하게 보호받기를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스스로에 대 해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런 심리가 오래 전부터 의식의 일부분으로 잠재 해 있던 것임을 새삼 발견한 그녀는, 남에게 의존하는 것을 혐오하면서도 동시에 자립을 두려워하는 여성의 심리 즉 ‘신데렐라 콤플렉스’에 대해 철저한 분석을 시작하게 된다.”

자극이란 본래 생산적인 측면도 갖고 있는 것이다. 잠재된 의식의 일면을 일깨워서 스스로의 참모습에 놀라 당황케 하며, 그리하여 그것을 극복할 계기를 마련해 줄 수도 있는 것- 그것이 자극이 갖는 생산적 측면이 아니 겠는가? 그런데 방송드라마가 부추기는 신데렐라 콤플렉스가 자극의 생산 적인 측면은 눈꼽만큼도 발휘하지 못하고, 늘상 부정적인 역할만 하는 까 닭은 무엇일까? `별은 내 가슴에'의 인물들을 놓고 이야기하자면 신데렐 라 콤플렉스를 겨냥해서 설정된 인물은, 안재욱이 연기한 ‘민이’보다 오히려 차인표가 연기한 ‘준희’라는 인물이었다고 본다. 현실 속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지만, 우리 드라마에서는 꼭 한명씩 등장하는 성인여 성의 남자친구- 그는 더할 수 없이 안정된 조건과 외모와 인간성을 두루 갖추었으면서도 한 여성을 늘 곁에서 지켜봐주기만 한다. 다만 필요할 때 , 예를 들면 연이가 민이와의 갈등으로 고통스러워할 때, 말없이 다가와 감싸주고 차에 태워 집앞까지 바래다 주고, 심지어는 두 사람의 결합을 위해 심부름까지 마다 않는 준희와 같은 역할만 충실히 해주면 되는 것이 다.

하지만 세상에 그런 남자가 어디 있는가? 흔히 리얼리티가 있다느니 없다 느니 얘기하지만, 드라마 속 여자주인공의 남자친구만큼 리얼리티가 없는 인물이 또 어디 있을까?

신데렐라 콤플렉스가 문제인 것은, 정작 그 콤플렉스를 자극하는 실체가 여성들 스스로도 분명하게 파악하지 못할 만큼 교묘한 곳에 숨겨져 있다 는 사실이다. ‘아 내게도 이런 심리가 있구나’하는 것을 발견하고, 그 것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인식하는 순간부터, 그것의 부정적인 영향 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힘도 발휘될 수 있는 게 아닐까?

고선희

1960년생. 방송작가.성균관대 국문과 졸.
‘추적60분' `인간시대' ‘ `사람과 사람' `어미새의 사랑' `76인의 포로'등의 대본 집필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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