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경의 우리맛 기행
1997년05월15일 제 157호 한겨레21

질박한 진국 ‘미꾸라지 어죽’

학자들은 발굴된 유물을 토대로 죽(粥)의 기원을 재미있게 설명해준다. 인류가 농경생활을 시작하면서 곡물을 채집하거나 재배해 끓여먹었는데, 그게 바로 죽이었다는 것이다. 인류가 음식물을 익혀먹기 시작하면서 처 음 먹은 것이 죽이라는 이야기다. 물론 밥보다 훨씬 앞선다. 뿐만 아니라 누구든 엄마의 젓을 떼고, 처음 먹는 음식 역시 묽은 죽이다.

이처럼 죽은 익혀먹는 것의 기원이 된다. 선사시대 사람들이 사용한 원추 형 토기는 돌 사이에 올려놓거나 나뭇가지에 매달 수 있고, 때로는 모래 밭에 세워놓고 불을 땔 수 있는 편리한 모양이었지만, 오랜 세월 동안 뚜 껑이 보이지 않았다. 토기의 흔적을 살펴보아도, 인류의 처음 먹거리는 밥보다는 죽이었다.

학자들은 이에 따라 죽에서 밥이 나왔을 거라는 주장을 편다. 처음은 아 주 묽은 형태에서 차츰 걸죽한 상태로 가다가, 토기의 발전과 더불어 밥 의 형태로까지 진행되었을 거라는 것이다. 특히 식품학자들은 지금처럼 기름이 반지르르 돌고, 고슬고슬하게 뜸이 든 밥은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야 먹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한다.

죽 역시 조선시대에 들어 본격적인 모습을 갖췄고, 그 내용도 무척 다양 해졌다. 조선시대에 죽이 얼마나 성했는가 하면, 단순한 흰죽에서 야채를 넣은 야채죽, 잡곡이나 열매를 넣은 별미죽, 고기를 갈아넣은 보양죽, 어 패류를 넣은 어죽, 심지어는 약죽과 매화꽃잎을 넣은 매죽(梅粥)까지 있 었다. 그 종류가 문헌에 기록된 것만으로도 1백가지가 훨씬 넘었다고 한 다.

죽은 절기에 따라 계절식으로도 먹었다. 동지의 팥죽은 그 대표적인 예고 , 한참 농사철을 앞둔 초여름 산란을 하러 올라오는 미꾸라지를 잡아 추 탕을 끓이거나 어죽을 쑤어 기운을 돋우기도 했다. 이런 풍습은 모심기가 끝나고, 농한기의 개천가로 이어져 피라미와 미꾸라지 등 잔고기들을 잡 아 어죽을 쑤어먹는 천렵도 빼놓을 수 없다.

충남 가야산 기슭의 개심사 앞 가야산장(0455-688-4255)에서는 집 앞 신 평저수지에서 미꾸라지를 잡아 미꾸라지어죽을 쑤어 손님상에 낸다. 아마 도 미꾸라지를 직접 잡아 어죽을 쑤어 전문으로 내는 집으로는 유일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옛스럽고 고지식하게 끓여내 토속적인 맛이 짙게 배어 난다. 더욱이 이곳 미꾸라지는 농약이 금지된 목장의 초지로 둘러싸인 저 수지에서 잡은 것이어서, 오염의 염려가 없다. 잡아온 뒤에도 샘물에 넣 어 흙냄새를 자연스럽게 씻어낸다.

어죽을 쑬 때는 미꾸라지를 푹 삶은 다음, 통째로 채에 갈아 걸쭉한 육수 를 만들고, 그 국물에 찹쌀과 국수를 넣고, 다시 푹 끓여 죽을 쑨다. 이 때 들깨나 참기름, 깻잎, 마늘과 생강 등 10여가지의 양념으로 맛을 돋우 고, 고추장과 된장을 풀어 간을 맞춘다. 끓을 때 밑에 눌어붙지 않도록 계속 저으며, 구수한 냄새가 배어날 때까지 뜸을 푹 들이는 정성이 따른 다.

이렇게 끓여낸 어죽은 보기만해도 걸쭉하고 끈끈한 질감이 미꾸라지의 특 성을 그대로 살려내고 있는 느낌이 든다. 한마디로 다른 곳에서 볼 수 없 는 질박한 진국이다.

이곳 가야산장의 음식이 이토록 진하고 믿을 만한 것은 주인 모자의 소문 난 효성과도 관련이 깊다. 주인 김정호(60)씨는 서산시로부터 효자상을 받았고, 모친인 백분현 할머니는 효부상을 받은 바 있다. 가정의 달, 효 부효자의 집을 찾아 그 집의 음식을 맛보며, 가족의 우의를 돈독히 하는 것도 보람될 것 같다. 음식값은 넉넉히 담아 한 그릇에 4천원, 미꾸라지 시세와 상관이 없다.


고단위 영양제 먹고 온천욕 즐긴다

예로부터 미꾸라지는 영양의 보고로 이론이 없다. 옛날에야 그 효능을 몸 으로 느껴서 알았겠지만, 현대 식품학에서 분석해놓은 수치로도 미꾸라지 는 뱀장어를 능가하는 영양의 보고다.

그 작은 몸안에 든 살은 독이 없고, 맛은 달다고 옛사람들은 표현했다. 실제로 미꾸라지는 칼슘과 단백질, 필수 아미노산, 비타민A와 각종 무기 질 등으로 형성된 고단위 영양제나 다름없다. 그래서 어른들은 몸이 허하 면 미꾸라지 탕이나 미꾸라지 어죽을 먹었던 것이다. 물론 미꾸라지 어죽 이 추탕보다 공이 더 들고 맛도 한 수 위다.

지금 개심사는 4월 초파일 준비가 한창이고, 범종각 주변으로 겹으로 피 는 왕벚꽃나무가 만발해 있어 1년 중 어느때보다 화사한 분위기다. 개심 사 가는 길은 경부고속도로 천안 인터체인지에서 예산을 거쳐 덕산온천과 해미읍성을 차례로 들러보며 가는 길이 가장 무난하고 볼거리도 많다.

서울에서 이 길로 개심사에 갈 경우 약 3시간, 해가 다소 길어진 요즘은 되돌아 나오면서 마애삼존불을 들른 뒤 덕산에서 온천욕을 해도 하룻길로 가능하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15일


커버스토리 포커스 문화시대 특집 지난호 전체보기 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