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재에서
1997년05월15일 제 157호 한겨레21

시궁창에 피어오르는 ‘청빈’의 향기

청빈은 아름답다. 나눔에선 향기가 난다.

김영삼 대통령은 칼국수로 청빈을 약속했다. 임기 첫해 12월엔 청와대 4 개 식당에서 이쑤시개마저 없앴다. 군부대 등을 방문할 때 항상 따르던 금일봉도 없앴다. 그 대신 ‘짠밥’값으로 1인당 1천원씩 냈다. 그때 그 비서관들도 값비싼 방석집을 찾지 않고 짜장면을 먹는다고 자랑했다. 당 시 이들의 청빈 실천은 새출발을 알리고 새각오를 다지는 신선한 자극이 었다.

그로부터 4년. 지금 온나라는 부패의 악취로 진동한다. 마치 오랫동안 닫 아두었던 똥통이 갑자기 열리기라도 한 것처럼 악취는 물론 구더기와 파 리가 떼로 몰려나온다. 권력의 정점에서 밑바닥까지, 고위 관료에서 정치 브로커까지, 노인네로부터 서른 갓 넘긴 젊은놈까지 더러운 돈뭉치에 빨 대를 대온 자들이 속속 드러난다. 칼국수와 짜장면을 많이 먹었다는 이들 의 빨대는 더 컸다.

하루에 3천명이 직장에서 내쫓기고 중소기업의 도산은 헤아리기조차 힘들 다는 현실은 이와 극적인 대조를 이룬다.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라지만 가난은 여전히 ‘거대한 빨대들’과 동전의 앞뒷면을 이룬다. 굶주림에 죽어가는 북쪽 형제들에 생각이 이르면 그 대비는 더욱 선명하다. 아예 몸통 채 빨대 속에 빠져버린 여당, 양심의 최저 눈금이라도 지켜달라는 요청을 저버린 야당, 빨대를 통해 이들과 물고 물려있는 ‘가진 자’들의 꼴같지 않은 호의호식은 차라리 절망스럽다.

이런 시궁창 같은 현실에서 한평생 청빈을 실천했던 성 프란시스쿠스를 떠올려 교훈을 얻고자 하는 것은 아무래도 난센스다. 살인자에게 순교자 의 헌신을, 사기꾼에게 아이들의 순수성을 설교하는 것같다. 그러나 청빈 을 국정운영의 한 수단으로까지 강조했던 이들이었으니 귀는 열려있을 성 싶다.

그는 매우 어눌했다고 한다. 하루종일 말을 하지않은 때가 많고 해봤자 ‘사랑’과 ‘감사’를 주제로 한 한두 문장이 고작이었다고 한다. 그의 모든 가르침을 한데 모으면 다음의 단촐한 말로 요약된다. “전대에 금이 나 은, 동전을 갖고다니지 말 것이며 식량 바구니, 여벌 옷, 신이나 지팡 이를 가지고 다니지 말라. 일하는 사람은 언제나 먹을 것을 얻을 자격이 있다.” 그래서일까. 새는 그가 들판을 헤맬 때 반려가 되었으며 꽃들은 그가 다리쉼을 하는 동안 사랑의 이야기를 나누는 형제였다고 한다.

천주교 빈민사목회는 발족 10주년을 맞아 다시 한번 청빈을 선언했다. 그 들의 삶을 어느 정도 아는 우리들이기에 이 선언은 어둠 속 촛불로 다가 온다. “우리 교회에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기억 하고 가진 것을 나눠주는 일”이라는 그들의 반성은 아름답다. “집이 없 어 고통중에 있는 사람이 있는 한 누구도 호화주택을 짓거나 여러 채의 주택을 소유할 권리는 없습니다. 최저생계비조차 확보하지 못하는 사람이 남아있는 한 누구도 호의호식할 수 없습니다”라는 ‘체제부정형’ 요청 또한 향기롭다. 그리고 “사회적 지위 상승의 기회를 마다하며 무력한 위 치에서 그들과 함께 연대한다”는 다짐에선 이 땅에 희망이 아직 살아있 음을 보여준다. 끝내 어둠을 밝혀줄 작은 불꽃을 본다.

한겨레21 편집장 곽병찬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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