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1997년05월15일 제 157호 한겨레21

합법자금 1천억, 불법자금 4천억?

(사진/4월29일 92년 민자당 대선자금 지출액을 밝혔던 당시 실무책임자 김재덕(왼쪽)씨는 두시간 만에 말을 바꿨다.)

“이런 풍토 속에서 그대로 올 연말 대통령 선거를 치르면 다음 대통령은 내년 취임 직후부터 청문회에 불려나가야할지 모릅니다.”

지난 13, 14대 대통령 선거 당시 여당 후보의 최고위급 참모로 일했던 최 병렬 신한국당 의원은 “현재의 선거 관행은 후보자들을 모두 범법자로 만들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아무리 해도 92년 절반은 쓸 것”

대부분의 여야 의원들도 이런 견해에 동의하고 있다. 잘못된 관행과 제도 때문에 선거를 끝내고 나면 여건 야건간에 대선자금의 `‘원죄’를 뒤집 어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대선자금이 과거의 문제만이 아니라 지 금 정치권이 실천에 옮겨가고 있는 범법 행위일 수밖에 없음을 말해준다.

여야 각당에서 예상하는 올해 대선자금 소요액은 92년 대선자금의 총액을 추정하는 것만큼이나 서로 차이가 크다. 그러나 법정선거비용(5백20억원 정도 예상)을 엄청나게 초과할 것이라는 데는 정치권 모두 전망이 일치한 다. 물론 야당보다는 역대 선거에서 물쓰듯 돈을 펑펑 뿌려온 여당의 대 선자금에 우려의 소리가 높은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야당쪽에서는 여당 후보의 올 대선자금이 아무리 적게 쓴다고 해도 92년 선거의 절반 정도는 되지 않을까 하는 추산을 내놓고 있다. 국민회의 기 조실의 한 관계자는 “한보사태와 대선자금 파문을 거치면서 정치권이 전 반적으로 큰 변화를 겪음에 따라 올 연말 대선에서는 여당도 과거처럼 많 은 돈을 마구 뿌리지는 못할 것으로 본다”며 “그러나 현행 법과 관행을 유지한 채 선거에 임한다면 관성의 법칙에 따라 아무리 아껴써도 92년의 절반 정도는 돈이 풀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경우 여당 후보는 대략 4천억~5천억원을 뿌리게 된다. 물론 이 돈은 법정선거운동 기간만 한정해 서 계산한 것이 아니라 신한국당 후보선출 전당대회 직후인 8월부터 12월 18일 대선일까지의 약 4개월 동안에 드는 총비용을 말한다. 후보가 선출 되고 난 뒤의 활동은 사실상 실질적인 선거운동이기 때문이다.

야당쪽의 계산법은 이렇다. 지구당 가동비로 지난 92년의 절반 정도인 3 억원씩 정도는 내려보낼 것이며(237개 지구당×3억=711억원), 홍보비와 유세동원비 및 유세 경비는 92년 선거 때 수준으로만 잡아도 각각 5백억 원 정도씩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여기에다가 수십개에 이르는 직능활동 비와 지방의원 가동비, 사무처 경비 등에도 수백억원 이상은 필요할 것이 라는 추산이다. 따라서 여당의 공조직 활동비만 해도 대략 2천억원은 쉽 게 넘어선다. 여기에다가 사조직 활동자금도 공조직에 버금갈 것으로 예 상하고 있다.

여당 인사들은 이보다는 액수가 적기는 하지만, 현행 관행대로 선거를 치 를 경우 전당대회 이후 4개월 동안 적어도 2천억원은 넘을 것이라는데 대 체로 전망을 같이한다. 신한국당의 유력한 예비후보의 한 측근은 “조직 가동비로 지구당에 선거 때까지 최소한 서너 차례는 돈을 내려보내야 하 지 않겠느냐”며 “한번에 최소 5천만원씩만 잡아도 한 지구당별로 2억원 씩으로 이 돈만도 5백억원을 넘는다”고 말했다. 야당의 분석과 비슷하다 .

다른 예비후보의 한 참모는 “우리가 후보가 됐을 때 선거 때까지 드는 최소 비용을 산출해본 결과 각 지구당 조직가동비 2억원씩 해서 5백억원 과 홍보 및 유세 경비 5백억원 등 공조직에 들어가는 돈만 해도 최소 1천 억원은 필요하더라”고 말했다. 신한국당의 한 관계자는 “선거자금을 미 리 예상하고 한도를 정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라며 “선거전이 격화되 면 계산할 겨를이 없을 정도로 돈을 쏟아부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쟁터 에서 총알 아끼는 거 봤느냐는 투다.

선거자금이 이처럼 많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통상 `‘조직 선 거’로 표현되는 여당의 선거운동 방법에 있다. 각 통반까지 뻗어 있는 여당의 기간당원 즉, 조직을 가동해 운동을 하는 것이 여당의 전통적인 선거운동이다. 그런데 이들 조직은 `‘공중전화 조직’이라는 별명이 말 해주듯이 돈이 들어가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는 데에 문제가 발생한다 .


“돈이 없으면 꼼짝 않더라”

서울의 한 신한국당 의원은 “돈이 안 내려가면 움직이지 않는 게 아니라 숫제 자기 편 후보를 비난하는 등 해당행위를 하는 게 바로 여당 조직이 더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경북 출신의 한 의원도 “지난 선거 때 초반에 꼼짝도 하지 않던 기간 당원들이 활동비조로 돈을 돌렸더니 그 때부터 유세장에 사람들도 데리고 나오고 홍보물도 돌리기 시작하더라” 고 말했다. 선거운동이 박빙으로 치열해지면 후보가 아무리 돈을 쓰지 않 겠다는 굳은 의지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아래로부터의 돈 요구를 뿌리치 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도는 것도 이런 구조적인 이유들 때문이다.

신한국당의 한 실무국장은 “유세장에 나오는 자발적인 청중들이 몇명이 나 되겠느냐”며 “유세장 분위기가 썰렁하면 후보가 맥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조직 동원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며 “이번에도 전국적인 유세를 하게 되면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수천억원에 달할 선거자금은 어떻게 조달할까. 당비와 국고보조 금, 후원금, 지정기탁금으로 충당되는 합법적 자금으로는 어림도 없다. 여당의 경우 국고보조금은 선거가 있는 올해는 약 1백90억원 정도가 예상 되며, 후원금은 중앙당이 최대로 거둬 쓸 수 있는 한도가 3백억원이다. 지정기탁금은 지난해(3백40억원)의 두배 정도를 받는다고 해도 합법적인 자금의 총합계는 1천억원을 겨우 넘는다. 야당에 비하면 엄청난 자금을 ` ‘합법적’으로 모을 수 있지만, 통상적인 선거 쓰임새에 비해서는 턱도 없다.

필연적으로 후보자가 직접 나서야 하며, 이는 곧 불법을 의미한다. 신한 국당의 한 당직자는 “선거법과 정치자금법 등 제도뿐만 아니라 선거관행 을 획기적으로 고치지 않으면 후보자가 범법자가 되는 것은 가능성이 아 니라 현실의 문제”라며 “이제는 차기 정권의 안정을 위해서라도 근본적 인 제도개선에 착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종철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5월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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