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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04월17일 제 1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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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인번호 `서울 보 2952'를 왼쪽 가슴에 단 그는 역시 노회했다. "기업의 생명줄을 끊은 데 대해 유감이다"는 그의 소감은 결코 사회적 죄악에 대한 사죄나 뉘우침의 말이 아니었다. 재산상실에 대한 안타까움에 불과했다.
그는 한보 대출의 배후나 정.관계에 대한 로비 등 핵심적인 사안들에 대해 "재판 계류중이어서 밝힐 수 없다" "모른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부인하거나 묵비권으로 일관했다. 특히 정씨는 일부 여야 의원 등 `힘 없는' 인사들에 대해서는 정치자금 제공을 간접 시인했지만, 힘이 있거나 자신과 아주 친한 사람 등에 대해서는 로비 사실을 철저히 부인했다. 공무원 등 관계 인사들에 대한 로비 여부에 대해서도 오리발로 일관했다.
김영삼 대통령에 대한 대선자금과 관련해서는 "민자당 재정위원으로 10억원 정도씩 몇차례 낸 적은 있으나 개인적인 지원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으며,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 김종필 자민련 총재에 대한 정치자금 제공에 대해서도 "한푼도 준 적이 없다"고 전면 부인했다.
김현철씨와 관련해서는 "아들 친구인 것은 알지만, 그를 본 적도, 돈을 준 적도 없다"고 말했다. 정씨는 또 `깃털'로 스스로 표현한 홍인길 의원에 대해서는 "홍 의원을 하늘로 알았다"고 홍 의원을 `하늘'로까지 비유하며 책임을 온전히 그에게 돌리려 했다. 초등학교 학력밖에 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인 그의 `뛰어난' 모습은 곳곳에서 나타났다. 그의 뛰어남은 `한보 대출의 배후는 홍 의원"이라는 지점으로 모아졌다. 그는 그러나 틈만 나면 "우주는 음과 양으로, 사회는 선과 악으로 형성돼 있다"면서 "그런데 지금 한보가 언론에 의해 음지쪽만 비쳐지고 있다"며 억울함을 강변했다. 그의 이날 태도는 `깃털'만을 뽑고 `몸통'을 건드리지 않음으로써 수서사건 때처럼 다시 한번 화려한 재기를 꿈꾸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것이었다.
사진 국회사진기자단/ 글 김종철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4월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