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1997년04월17일 제 153호 한겨레21

이회창 불안정한 착지

(사진/한달 동안의 대표생활이 오히려 `이회창 대세론'에 짐을 지우고 있다. 한보청문회 처리과정이 이 대표의 운명을 가를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이회창 대표체제가 당초 기대에 못미치는 것 같다.” “뭐라고 꼭집어 낼 수는 없지만, 아직까지 어딘가 어색해보이고 아마추어적인 느낌이 든 다”

오는 13일로 취임 한달을 맞는 이 대표에 대한 신한국당 사무처 당직자들 의 평이다. 대쪽 이미지에 걸맞게 꼬일대로 꼬인 정국을 말끔하게 정리해 주길 기대했는데 그렇지는 않더라는 얘기다.

물론 이 대표가 주재하는 고위당직자회의가 이전과 달리 지시와 보고만으 로 진행되는 게 아니라 활발한 토론이 이뤄지는 등 눈에 띌 정도로 당의 활성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평도 있다. 한 고위당직자는 “이 대표를 가까 이서 겪어보니 성정이 곧고 굉장히 순수한 사람이더라”며 “정치적인 테 크닉만 좀 더 익히면 훌륭한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기대가 지나치게 컸던 탓일까. 초반 한달 이 대표의 당 운영은 산 뜻하고 순조로웠다기보다는 안팎의 시비에 휘말리는 등 각종 시련에 봉착 했던 것이 사실이다.


“물정 모르는 건지 정직하지 못한 건지… ”

당내 대선주자들의 내각제 검토와 권력분산제 도입 주장을 `당의 단합을 해치는 해당행위로 규정했다가 비민주적인 사고방식이라는 반격을 받은 데 이어 ‘내각제 논의불가 당론’ 결정도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이한동 고문은 “내각제 논의 금지는 유신시절 개헌논의를 하는 사람을 7년 이하 의 징역에 처했던 긴급조치 9호를 연상케 한다”고 비난했다.

지난 1일 영수회담에서 행한 지정기탁금에 대한 이 대표의 발언은 당 바 깥의 항의를 부른 대표적인 사례다. 영수회담에서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 가 지정기탁금의 여당 편중 현상을 지적하며 이의 시정을 촉구하자 이 대 표는 “정치자금은 각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내는 것으로 우리가 더 내라 느니 덜 내라느니, 누구에게 내라느니 속박할 수 없지 않느냐”고 말했던 것이다.

야당은 당장 대쪽 이미지를 갖고 있는 이 대표가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 다며 발끈했다. 정동영 국민회의 대변인은 “이 대표가 세상 물정을 모르 고 그런 말을 했다면 지도자로서 현실인식에 중대한 결함이 있는 것이며, 알면서도 `자율적이라고 강변했다면 정직하지 못하다”고 비난했다.

기득권을 지켜주는 여당 지도자의 `강한 이미지는 어느 정도 각인시켰는 지 몰라도 민주적 지도자상은 상당히 훼손당했으며, 모양도 많이 구겨졌 다.

이에 따라 당내에서 ‘이수성 대안론’이 민주계를 중심으로 조심스럽게 제기되는 등 ‘이회창 대세론’이 흔들리는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또 당 총재인 김 대통령이 이 대표 중심 단합을 강조했지만, `반이회창 주자들 은 개별 행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또 의원들의 `이회창 줄서기는 당초 예상보다 덜하다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인 평이다. 당내 기반이 약한 이 대표로서는 일찌감치 정치적 시련기를 맞은 셈이다.

이 대표는 이에 대해 기본적인 낙관론을 바탕으로 민주적인 당운영 강화 등 일단 모든 면에서 정도를 걷겠다는 입장을 재차 확인했다. 이 대표가 현철씨 문제 등 한보사건 처리에 대해 ‘정치적 해법’이 아니라 ‘법대 로 처리’를 다시 강조하고 나선 것은 이런 맥락으로 풀이된다.

이 대표의 한 측근은 이에 대해 “한꺼번에 당내 안정을 꾀하고 `‘이회 창 대세론’을 굳히겠다는 생각에서 초반에 `오버 페이스한 측면이 있었 다”며 잘못을 솔직히 인정했다. 이 측근은 그러나 “앞으로 대선주자의 한사람으로 대의원을 의식하기보다는 집권당 대표라는 직위에 걸맞게 국 민을 보면서 정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보청문회가 본격 시험무대 될 것

이 대표는 이에 따라 4월8일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대국민 이미지 구축에 힘쓰는 한편 13일 언론사 정치부장들과 골프회동을 갖기로 하는 등 다각 적인 ‘이회창 바로 알리기’에 주력하고 있다. 평소 골프를 즐기지 않는 이 대표가 프로정치인들의 고단수 정치행위인 골프모임을 갖기로 한것은 시사하는 바 크다. 이 대표는 또 중진 의원들과의 대화 모임도 계획하는 등 소속 의원들의 의견 수렴에도 적극 나선다는 방침이다.

이 대표가 앞으로 더욱 격화될 시련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는 전적으 로 그에게 달렸다. 청와대 출신의 한 의원은 “아직까지는 이 대표의 진 면목을 시험할 수 있는 사례가 적어 그의 성공 여부는 좀더 지켜봐야 한 다”며 “한보 청문회 처리 등 당면과제들이 본격적인 시험 무대가 될 것 ”이라고 전망했다.

김종철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4월17일


커버스토리 포커스 문화시대 특집 지난호 전체보기 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