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1997년04월17일 제 153호 한겨레21

“정태수여 제발…”공포의 청문회

(사진/4월7일 서울구치소에서 열린 한보청문회에 선 정태수씨. 핵심을 비켜가면서, 때로는 훈계조의 언사로 의원들을 곤혹스럽게 하기도 했다.)

‘정태수 리스트’가 정치권에 태풍을 일으키고 있다.

정태수 한보그룹 총회장이 정·관계 인사들에게 로비자금을 제공한 명단 인 이른바 ‘`정태수 리스트’가 한보 청문회를 통해서 일부 확인됨에 따 라 정치권에 또다시 한보 한파에 휘말리고 있다. 특히 검찰이 리스트에 대해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하고 있어 그 파장은 일파만파로 이어질 것같 다.


‘리스트 확인’은 시간문제

지난 4월7일 서울 구치소에서 열린 한보청문회에서 정씨가 밝힌 여야 의 원은 신한국당 대선주자인 김덕룡 의원과 자민련 김종필 총재의 최측근 김용환 의원 등.

정씨는 이날 김덕룡 의원 부분에 대해 “김 의원에게 정치자금을 주었느 냐”는 맹형규 의원(신한국당)의 질문에 처음엔 “기억이 없다”고 버텼 다. 그러나 “기억이 없다는 말이 다른 사람을 통해 돈을 주었다는 뜻인 가”라는 거듭된 추궁에 “예, 제가 안 했기 때문에 기억이 안 난다”고 한발 물러섰다. 맹 의원이 재차 “다른 사람을 통해 돈을 주었다는 말인 가”라고 추궁하자 “회사직원이 준 것으로 알고 있지만 기억이 안 난다 ”며 자금 제공 사실을 시인했다.

자민련 김용환 의원에 대해서도 “정치자금을 주었느냐”는 질의에 “제 가 안 했다”는 말로 제3자를 통한 제공을 간접 시인했으며 국민회의 김 상현 의원에 대해서는 “기억이 안 난다”고 말했다. 정씨는 이날 언론에 보도된 이른바 `24명의 ‘정태수 리스트’에 대해서는 “재판에 계류중이 어서 밝힐 수 없다”며 확인을 거부했다.

이 리스트에는 신한국당의 김덕룡 박명환 박우병 박성범 박종웅 김정수 홍인길 황병태 정재철 의원 및 문정수 부산시장, 국민회의의 김상현 권노 갑 김원길 장재식 정한용 의원, 자민련의 김용환 김현욱 의원 등의 이름 이 올라있다. ‘`정태수 리스트’의 존재에 대해서는 김기수 검찰총장도 국조특위에서 인정한 바 있어 사실 여부의 확인은 시간 문제일 수밖에 없 다.

물론 거론된 해당 정치인들은 전면 부인하고 있다. 김덕룡 의원쪽은 “정 태수씨나 그의 아들, 김종국, 운전기사 등을 만난 적도, 돈을 받은 적도 전혀 없다”며 ““정씨가 3자를 통해서 돈을 줬다면 그 사람이 누구이며 우리쪽의 누구에게 줬다는 것인지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민련 김용환 의원도 “나는 결백하다”며 주장했으며, 박명환 의원(신 한국당)은 “후원회 기부금을 냈을지 모르나 그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 다”고 밝혔다. 김상현 의원(국민회의)은 “정씨와는 일면식도 없으며, 돈을 받은 적도 없다”고 말했으며, 새로 거론된 장재식 의원이나 이미 거론됐던 박종웅 김정수 박성범 의원(신한국당)도 “한보와 접촉한 일도, 돈 받은 일도 없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이들의 부인에도 준 쪽인 정씨가 일부 확인함에 따라 정치권은 결 코 한보 흙탕물을 피할 수 없다. 설사 이권 청탁의 대가 여부가 확인되지 않더라도 정치권으로선 치명적인 도덕적 올가미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 다.


정치권 수뇌부는 여전히 피해

특히 검찰은 지금까지 조사 결과 리스트에 올라있는 의원들 중 일부는 ` 한보 돈을 받은 경위와 액수 등에 비춰 ‘동기가 순수하다고 보기 어렵다 ’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리고 있다. 검찰은 이와 함께 리스트에 나온 의 원들 뿐 아니라 정씨가 공개하지 않은 정치인 등에 대한 조사도 광범위하 게 진행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1차 수사가 정씨의 입에만 의존 해 국민들로부터 불신을 받은 데다가 정씨가 공개한 리스트 인물들의 경 우 대부분 떡값을 받은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정씨가 공개하지 않은 진짜 한보 배후가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주목할 만한 사실이 하나 있다. 정씨나 검찰 모두가 정치권 수뇌 부에 대해서는 비켜가고 있다는 점이다. 여전히 몸통은 남고 깃털에 묻은 살점만 날릴 것인가.

김종철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4월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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