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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
1997년04월17일 제 1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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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지난 4월2일 선적되는 강원도 평창 감자. 북한동포를 도우려는 민간단체들의 운동은 1주일에 한끼를 굶자는 굶기운동으로 번지고 있다.)
‘배고픔을 아는 것이 배고픔을 없애는 길이다.’
1주일에 한끼를 굶어 북한동포를 살리자는 전국민적 운동이 시작된다. 1 주일에 한 끼를 굶고, 굶어서 생기는 식사비를 북한동포들을 위한 기금으 로 모으자는 것이다. 이 운동은 우리민족서로돕기 운동본부, 민주주의민 족통일전국연합, 우리민족서로돕기 불교운동본부, 한국청년단체협의회, 미래정치문화연구소 등 북한동포돕기운동을 하는 대표적인 단체들이 공동 참여를 결정함으로써 범국민운동으로 퍼져나갈 것으로 보인다. 이 단체들 은 굶기운동의 시기를 금요일 점심으로 정했다. 운동은 오는 4월12일 김 수환 추기경, 송월주 스님, 강원용 목사 등 종교계와 사회단체 지도자들 이 참석하는 ‘북한의 식량위기를 염려하는 사회각계인사 모임’을 계기 로 본격화할 전망이다.
굶음을 통해 민족애를 나누자
금요일 점심 한끼가 5천원이라면 한달에 2만원인데, 2만원이면 북한어린 이 7명이 한달을 버틸 수 있는 액수라고 한다. 수백, 수천명의 직원이 있 는 직장에서 이 운동을 제대로 벌인다면 북한 1개지역 어린이 전체의 식 량을 책임질 수도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돕기운동단체들에서 굶기운동이라는 방식을 굳이 채택하게 된 것은, 이 운동이 갖는 실천적인 파급력 때문이다. 실제로 한번 굶어보면 고통을 경 험하게 되고, 고통의 경험은 또다른 행동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구 체적인 자기실천 프로그램을 갖고 있어 조직화와 대중화가 쉽다는 설명이 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 운동은 특히 자기희생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는 인류애에 기반한 인도적 성격을 갖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굶음을 통해 민족애를 나눌 수 있는 민족통일운동의 성격도 갖는다.
우리민족서로돕기 운동본부 이용선 사무총장은 “이 운동이 전국민적 운 동으로 확산되면 남한사회가 건전해질 뿐만 아니라 북한사람들, 특히 군 인들도 이 소식을 접하게 될 것이다. 적대감에 따른 자포자기의 군사행동 이라는 감정의 돌출을 억제하고 누그러뜨리는 구실을 하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단순한 굶기운동이 아니라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의 분위기를 가져올 수 있는 중요한 계기라는 것이다. 또 현실적으로 는 북한을 살리자고 하는 운동이지만, 결국 남북 사이의 ‘닫힌 마음, 갈 라진 마음’을 녹일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주장이다.
굶기운동을 통한 구호사업은 외국에서는 이미 보편화한 것이다. 미국의 세계적 생명구제단체인 ‘월드비전’(World Vision)이 매년 벌이는 ‘30 시간 굶기운동’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 단체는 한국전쟁에서 생겨난 고아들을 구호하기 위해 지난 50년대 초반 미국에서 생겨났다. 월드비전 이 1년에 한번 실시하는 대규모 굶기 이벤트는 아시아, 아프리카 등 제3 세계에서 굶주리는 어린이 구호용 기금을 모으기 위한 것이다.
통일을 말할 자격을 잃고 싶지 않다
배기찬(34·의원보좌관)씨는 한국에서 이 운동을 시작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다른 인종, 다른 민족을 위해 굶는 이들도 해외에는 많다. 우리는 5천년 동안 같은 핏줄을 나눈 민족이다. 북이 저렇게 어렵다고 하 는데 ‘나 몰라라’ 한다면 같은 민족으로서 할 일이 아니다. 남쪽에서는 너무 많이 먹어 탈이 나는 이들도 많다. 1주일이면 21끼이니까 한끼를 안 먹는 것은 1/21을 희생하는 것이다. 그것마저 할 수 없다면 우리는 통일 을 얘기할 자격도 없는 민족이다. 우리만큼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 을 자주 인용하는 민족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 배씨는 운동단체들이 조 직적으로 움직이기 전에 이미 이 운동을 실천하고 있다. 주변의 친한 이 들 50여명에게 동의를 구해 지난 4월 초에 이미 굶기운동을 한번 시도해 이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고 한다.
북한전문가들 중에는 북-미관계의 진전에 따라서는 북한의 어려운 식량사 정이 급속히 나아지게 될 것이라고 진단하는 이들도 많다. 어려울 때 외 면하다가 앞으로 사정이 좋아진 뒤 남북대화를 하려 한다면 아무런 소득 도 거둘 수 없으리라는 것이다. 이른바 ‘조문파동’ 이후 빚어졌던 경험 을 타산지석 삼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어쨌든 이 운동은 민간 차원의 통 일역량을 가늠해볼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창석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4월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