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2
1997년04월17일 제 153호 한겨레21

“입 하나라도 덜어야지요”

조선(북한) 처녀들이 팔리고 있다는 소문이 나도는 가운데 지난해 11월과 지난 2월 연변에서 만난 조선 사람들의 이야기는 조선의 식량난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리고 그 속에서 여성으로 살기가 또 얼마나 어려운지를 나에 게 잘 보여주었다.

지난 2월 설을 전후한 때 함경북도 대흥단에서 건너온 아주머니 한 사람 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40세 전후의 이 아주머니는 북에 남편과 23세 의 큰딸 등 가족이 5명이라고 했다. 조-중 국경을 넘은 여느 조선사람과 마찬가지로 이 아주머니도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건너왔단다. 그 아주머 니는 중국에 대한 인상을 묻자 “중국에 와 이팝을 배불리 먹었는데 정말 믿어지지 않는다. 이런 세상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답했다. 아주머니의 고향 함경북도 대흥단에는 일체의 배급이 끊겨 굶어죽는 사람 도 있다고 했다.

이번엔 조선에 들어가면 중국에 넘어온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느냐고 물어 봤다. 아주머니는 “중국에 들어오는 사람이 하도 많아 붙들려도 한 이틀 갇혀 있다 검토서(반성문)만 내면 된다”고 답했다. 이전에는 몇달씩 구 류를 살았다고 한다.

아주머니는 중국에서 설을 세고 조선으로 돌아갔다. 돌아가기 직전 그는 조선족 총각 한 사람을 만났다. 총각은 조선에 있는 큰딸애를 몰래 중국 으로 데리고 나오면 시집보내고 싶다고 했다. 만일 이 결혼이 성사된다면 딸은 ‘잘 사는 중국’에 시집 가서 좋고, 아주머니집에서는 입 하나를 덜어서 좋은 일이 된다.

하지만 다음에 올 때 딸을 데려오겠다던 이 아주머니는 지난 3월 초 연변 에 다시 나오면서 딸을 데리고 오지 않았다. 너무 갑작스레 딸이 사라지 면 주변의 의심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게 아주머니의 설명이었다. 또 한 사람은 약 60세 가량 되는 할아버지다. 함경북도 은덕에서 연변의 동생집을 찾아왔다는 이 할아버지도 약 두달간 연변에 머물다 북으로 돌 아갔다.

할아버지의 지역도 지난 96년 2월 이후에는 양식을 일체 공급하지 않았다 고 한다. 그래서 독이 있는 풀을 제외하고는 다 먹어봤단다. 심지어 벼를 벤 다음 벼의 뿌리도 파서 말린 뒤 갈아 먹었다. 할아버지는 옥수수를 돼 지먹이로 먹이는 데도 상당히 부러워했다.

이 할아버지가 함경북도 무산 역전에서 겪은 일이다. 30대 후반으로 보이 는 아주머니를 만났다. 이 아주머니는 가족들이 먹지 못해 부부가 이혼한 뒤 따로 살길을 찾아나섰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몇마디 얘기를 나눈 뒤 이 아주머니는 “아저씨 가는 곳 어디든 따라가겠다”고 말했다. 또 어떤 요구가 있어도 들어주겠다며 데려가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참 곱게도 생 겼다. 이 할아버지는 자기가 나이가 조금만 더 젊어도 데리고 가겠다는 생각도 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직접 만난 조선사람은 이 두 사람뿐이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지금 조 선이, 그리고 조선 여성들이 얼마나 어려울까 깊이 생각하게 하기에 충분 했다.

연변=리정수/ 조선족 동포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4월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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