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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2 |
1997년04월17일 제 1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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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조선족 농촌엔 한국바람에 처녀씨가 말라버렸다. 농촌 처녀는 ‘쌀 의 뉘’(쌀에 섞인 벼알갱이)가 되었고, 조선족 농촌 총각들은 장가를 들 지 못해 몸부림치고 있다.
중국의 개혁·개방 열풍이 조선족들에게 준 가장 큰 영향의 하나가 국외 나들이다. “한국에 가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한국바람은 그 좋은 예다. 지난 87년 2백여명으로 시작된 조선족의 한국 방문은 해마다 늘어 지금까지 연 30만명선을 넘는다. 이런 한국열풍과 짠지장사(김치 등 식료 품 장사)로 시작된 조선족 여성들의 도시진출은 중국 조선족 대이동을 낳 았다. 중국 연해도시 등 대도시로 진출한 조선족이 20만명, 한국을 비롯 해 일본·미국·유럽으로 돈벌이를 떠난 조선족들이 30만명을 넘는다. 재 중 동포 2백만명 중 50여만명, 그러니까 노동인구 총수의 절반을 차지한 다는 말이다. 그중 절반이 여성이다.
수년 동안 조선족 처녀 2만여명 ‘한국’과 결혼
‘코리안 드림’을 현실화하는 유일한 정상적인 취업방법은 산업연수다. 하지만 여러 가지 원인으로 그 통로가 좁아지자 조선족 여성 사회에서 갑 자기 성행하게 된 것이 한국인과의 국제결혼이다. 통계에 따르면, 지난 9 3년 1천4백여건, 94년 2천여건에 머무르던 한-중 국제결혼이 95년에 이르 러 7천7백여건으로 폭발적 증가세를 보였다. 지난해는 무려 1만건을 넘었 다는 분석이다. 이에 대해 중국과 한국의 관계자들은 국제결혼의 상당수 가 한국진출을 위한 위장결혼이라고 잘라 말한다. 위장결혼이든 합법적 결혼이든 조선족 여성들이 한국으로 이판사판 떠나가는 바람에 애간장을 태우고 있는 것이 농촌에 남아 있는 조선족 총각들이다. 최근 몇년간 한 국에 시집간 여성만 해도 2만명은 족히 된다. 한국바람에 장가를 못가는 총각이 최소 2만명이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나비가 꽃송이를 찾아왔느냐, 꽃송이 나비를 눈짓했느냐…. 아, 눈이 맞은 원앙새….”
농촌 처녀총각들이 그렇게도 즐겨 부르던 사랑가. 그런데 오늘 처녀들을 찾아보기 힘든 조선족 농촌에서는 이것이 아름다운 옛 추억으로만 남아 있다. 개혁·개방에 힘입어 ‘3자 기업’(합자기업)이 우후죽순마냥 일떠 서고 봉사업(서비스업)이 기하급수로 늘어나는 데다 한국바람까지 일게 되어 좀 ‘꼴꼴하다’(예쁘다)는 농촌 처녀들이 한국으로 ‘집단 시집’ 을 가는 통에 조선족촌들에는 적령기를 넘긴 총각들이 득실거린다.
흑룡강성 상지시 하동향의 6개 조선족촌마다 장가갈 나이가 된 총각들이 수십명씩 되고, 오상시 민락향 홍광촌의 3백여세대 인구 중 25~30세 사이 의 총각의 약 60%가 미혼인 것으로 나타났다. 1백여세대가 사는 방정현 보흥향 신풍촌에는 30명 안팎의 총각이 장가를 못갔다. 해림시 신안진 삼 가자촌에는 한 집안 4형제가 모두 장가를 못가 부모들이 더 애태우고 있 다. 한편 길림성 용정시 교위모촌에는 26~35세 되는 청년이 35명 되는데 그중 결혼했거나 결혼대상자가 있는 청년은 겨우 5명밖에 되지 않았다.
출산율 급격히 하락 사회존속까지 위협
(사진/어린아이들을 찾아보기 힘든 것이 조선족 농촌의 오늘이다. 젊은 여성들이 `코리안 드림'을 좇아 한국으로 떠났기 때문이다.)
농촌의 이런 상황은 농촌 조선족 인구의 정상적인 장성(성장)에 직접적으 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조선족 인구가 6천여명을 헤아리는 흑룡강성 화 천현 성화향의 경우 지난 91년도 출생아가 70명이었으나, 92년 63명, 93 년 37명, 94년 34명, 95년 25명으로 해마다 줄어들었다. 출생아가 25명이 란 것은 70세대(240명)당 한명꼴로 어린애가 태어난다는 얘기다. 이제는 한 마을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출산을 하는 것이 어느덧 ‘뉴스’가 될 정 도다. 축하인사도 이전과 달라졌다. 전에는 결혼식이 있거나 출생을 하게 되면 하객들이 그 집 어른을 찾아 인사를 드렸는데, 지금은 결혼이나 출 생이 온마을의 희사(경사)라고 동네 책임자를 찾아 일부러 축하하게 되었 다.
혼인은 민족사회의 유지, 발전과 직결되는 홀시(소홀히)할 수 없는 대사 이다. 그런데 중국 56개 민족 가운데 조선족 출산율이 제일 낮다. 계획출 산(산아제한)을 기본국책으로 삼는 중국에서는 대서특필할 좋은 일이지만 , 조선족 공동체 시각에서는 좀 다르다. 해마다 격감하는 조선족 출산율 은 조선족 인구의 절대수, 다른 민족 인구와의 상대적 비율, 조선족 인구 의 연령구조변화 등에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조선족 농촌인구 성장률 은 오래도록 지식인, 공무원, 도시 주민보다 좀 높았다. 그러나 이것도 이제 지난 일이다.
세상이 변해도 한참 변한 게 분명하다. 남아선호사상에 물젖었던 우리 동 포가 어쩌다가 딸애를 낳게 되면 싱글벙글 좋아하며 “딸 키워 한국시집 보내면 신세를 고치게 된다”고 말하게까지 되었는가. ‘3자기업’에 음 식점에, 노래방과 커피숍에, 관광가이드에, 한국인과의 국제결혼에 처녀 들이 선두주자로 나서고 있으니 필경 농촌에 ‘처녀 공황’이 들지 않을 수 없고 ‘처녀씨’가 마르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의 사회생활에서 연애와 결혼, 섹스는 너무도 정상적인 일로서 사회 의 평온과 평형에 의의가 크다. 그 어느 한 고리에 문제가 생겨도 사회적 으로 악과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공안당국에 따르면, 최근 조선족들은 개 혁·개방의 동풍을 빌려 대내외 진출에서 다른 민족에 앞섰지만 범죄율도 상대적으로 높다는 지적이다. 그중 조선족 청소년들의 범죄 비례(비율)가 다른 민족보다 곱절 높은 형편이라 한다. 절도, 강간, 살인범의 경우 돈 없어 장가가지 못해 강탈하는 일이 비일비재라 했다. 물론 생활난으로 도 적이 되고 장가밑천 마련을 위해 강도가 되거나 합법적으로 성적욕구를 만족할 길 없어 강간범이 되었다고 변명은 하지만, 법제의식의 결여와 더 불어 비건전한 인생관 세계관 가치관의 영향이 그 주요 원인임을 지적하 지 않을 수 없다.
아무튼 농촌에 처녀씨가 말라 총각들이 장가를 못가고 그 때문에 죄를 짓 게 되는 한심한 일을 그저 강너머 불 보듯 해서는 안 된다. 한번은 조선 족 신문인 <흑룡강신문>에 국제결혼 기사가 실렸다. 조선족 처녀들이 무 리져 한국으로 시집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신문이 발행돼 며칠 되지 않 아 각지에서 독자들로부터 항의편지와 전화가 왔다. ‘도대체 당신들은 조선족 처녀들을 한국에 다 팔아먹을 작정인가? 농촌총각들이 장가 못가 늙어 죽으면 당신들이 책임지겠는가?’
한국 홍보에만 정신팔려 농촌총각들의 결혼에는 아예 신경을 쓰지 않는다 는 이른바 무책임성에 대한 성토라 하겠다. 그만큼 농촌총각들의 결혼이 사회문제로 떠올랐다는 말이다.
생활습관 다른 한족 처녀 신부로 맞기도
처녀가 없어 총각들이 장가를 들지 못하는 실정에 따라 각지에서는 여러 모로 해결책을 강구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조선족 총각들이 한족 처녀를 아내로 맞아들이는 사례가 늘고 있다. 흑룡강성 방정현 보흥향 신풍촌에 서는 최근 2년 사이 부근의 한족 처녀를 6명이나 맞아들였다. 생활습관의 차이와 언어상 장애로 연세 많은 부모들의 우려를 자아내기는 했어도 그 럭저럭 살아가고 있는 상태다. 한족 처녀들은 조선족들이 문화적이고 또 외국나들이에서 돈을 많이 벌고 있다고 여겨 조선족과의 통혼을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조선족 총각의 경우 조선족 처녀를 얻을 수 없는 시점에 서 취한 부득이한 선택이기에 그 장래가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편벽한 산간오지의 산재지역이나 북한에서 온 처녀들을 아내로 맞는 일도 있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바람직하지 못해 대부분은 아직 뾰족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혼인문제로 인한 농촌총각들의 고뇌는 어찌보면 시장경제 체제 하에서 필 연적으로 겪게 되는 진통이기도 하다. 따라서 농촌에 남아 있는 총각들의 상당수가 소학교나 중학교를 겨우 졸업한 상대적으로 문화자질이 낮은 계 층이다. 또 경제적인 격차로 ‘코리안 드림’이 계속되는 한 중국 조선족 처녀들의 한국총각과의 결혼을 막을 수 없는 점을 고려하면 조선족 총각 들이 장가들지 못해 애간장을 태우는 현상은 장기간 사회문제로 지속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김충일/ `흑룡강신문사' 부총편(편집부국장)
© 한겨레신문사 1997년04월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