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2
1997년04월17일 제 153호 한겨레21

닫히는 탈출구 중국국경

(사진/중국 공안원의 여권감시. 중국 당국은 탈북자에 대한 감시와 색출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중국 새 형법은 여성 탈북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지난 3월14일 제8차 중국인민대표대회에서 개정한 새 형법이 자의에 의해 탈북하거나 또는 팔려온 북한 처녀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벌써부터 논 란이 일고 있다. 새 형법의 개정 내용 중 특히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불 법적인 출·입국 알선과 이와 관련된 조직 등에 대한 강력한 제재 조항들 이다. 개정법은 이들 불법행위에 대해 ‘최대 무기징역’까지 형량을 크 게 높여놨기 때문이다.

이번에 새로 개정된 형법은 지난 79년 7월1일 최초로 제정된 형법을 대대 적으로 손질한 것이다. 이는 중국의 처지에서 볼 때 나름대로 법치국가로 의 위상을 세우기 위한 노력으로 읽힌다. 무엇보다도 ‘죄형법정주의’를 명확히 규정하고, ‘반혁명죄’를 폐지하는 대신 ‘국가안전위해죄’를 신설한 것이 그 예다.


탈북여성 매매행위 법적제재 근거 마련

하지만 새 형법은 이와 함께 남북한과 가장 관련이 깊은 ‘국경관리방해 죄’의 형량도 크게 높였다. 이에 따라 여성 탈북자들이 영향을 받으리라 는 우려가 힘을 얻고 있다. 새로 제정된 중국의 ‘국경관리방해죄’는 다 른 사람으로 하여금 불법적으로 국경을 넘도록 조직한 사람에게는 7년 이 하의 유기징역과 동시에 벌금형을 가하도록 정하고 있다. 새법은 특히 이 런 조직을 주도적으로 이끈 사람에게는 7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무기징 역과 동시에 벌금형이 처해지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비록 그것이 조 직적인 유형이 아니라 개인적인 차원이라고 할지라도, 다른 사람이 불법 적으로 국경을 넘는 것을 도와주면 5년 이하의 유기징역 등에 처하도록 돼 있다. 새 법은 이에 더해 돈을 받고 국경을 넘게 하는 행위, 이렇게 국경을 넘어온 사람의 인신을 강제로 구속하는 행위, 그리고 이들에게 상 해를 입히거나 강간하는 등의 행위에 대해서 더욱 엄중한 처벌을 가하도 록 규정하고 있다. 결국 새 형법은 북한 여성들을 탈북시키거나 이들을 매매하는 조-중 국경 밀매업자들에게 강력한 제재를 가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국경관리방해죄’가 꼭 탈북자만을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다. 중국의 법률 전문가들에 의하면 새 법은 중국 국경 전역에 대한 통일적 관리기준 마련에 중점을 두었다고 한다. 중국은 이 법이 특히 개혁·개방 이후 확대된 불법적인 입국이나 출국·밀매 등에 대한 대응책이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하지만 역시 이 법의 가장 큰 적용 대상은 탈북자들일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현재 중국의 국경 중 조선족 자치주와 맞붙어 있는 북한 국 경의 경비가 가장 느슨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 법이 북한 주민 탈출에 전혀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밝힌 우리나라 외무부에 대해 새 법을 지나치 게 안이하게 해석한 것이라고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로 주중 한국 대사관의 한 고위 관계자마저 “새 형법이 결과적으로 탈북자 문제에 적 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탈북자가 새 형법 적용 가장 많이 받게 될 것

비록 중국의 새 형법이 오는 10월1일 건국기념일부터 시행에 들어가기는 하지만, 이 법이 탈북자들에게 적지 않은 위협 요소로 작용될 기미가 벌 써 여러 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중국 당국이 벌써부터 북한을 탈출한 주 민들을 불법체류자로 분류해 이들에 대한 감시와 색출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문제는 이 법의 처벌 영역이 결코 북한 처녀를 매매하는 조-중 국 경의 밀매업자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굶주리는 여성을 비롯해 굶주리는 북한 주민들을 돕기 위한 인도적인 행위도 결국 처벌 대상이 된 다. 이는 또 탈북여성 당사자에 대한 감시강화 등으로 이어질 것임은 물 론이다. 결국 극한의 기아 상태에서 그나마 생존의 탈출구로 낯선 타국과 그 땅의 낯선 남정네를 선택한 북한 처녀들이 이곳 중국에서 본인이 예상 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설움과 시련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베이징=김성환 통신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4월17일


커버스토리 포커스 문화시대 특집 지난호 전체보기 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