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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하는 재벌 |
1997년04월17일 제 1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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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15개 거점지역에 미니(Mini) 대우그룹을 세워라.”
대우그룹이 세계경영의 2단계 도약을 위해 본격작업에 착수했다.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은 지난 3월30일 경기도 용인의 고등기술연구원에서 열린 임원세미나가 끝난 뒤 윤영석 그룹 총괄회장을 불러 `‘세계경영 해 외지역본사제 추진위원회’(가칭) 구성을 지시했다. 시한은 3개월 정도가 주어졌다. 2단계 세계경영의 핵심이 되는 해외지역 본사제의 도입을 위한 밑그림을 그리라는 특명이 떨어진 것이다.
세계 15개 지역에 ‘미니대우’ 만든다
해외지역 본사가 들어설 전세계 거점지역으로는 애초 10개가 꼽혔다. 폴 란드, 루마니아, 프랑스, 수단, 우즈베키스탄, 중국, 인도, 베트남, 미얀 마, 미국 등이다. 권역별로는 아시아가 4곳으로 가장 많고, 나머지는 유 럽이 3곳, 미주·독립국가연합(CIS)·아프리카가 각각 1곳씩이다. 그러나 최근 김 회장의 지시로 대상지역이 대폭 늘어날 것으로 알려졌다. 그룹 회장비서실의 한 관계자는 “아프리카의 모로코, 중남미의 멕시코, 중동 의 이란 등이 추가돼 15개 정도 지역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회장 주도로 대우의 세계경영이 본격화된 것은 지난 93년. 세계경영은 한마디로 범세계적으로 경영거점을 확보하는 전략이다. 대우그룹의 한 임 원은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출범의 다른 한편으로 유럽, 미주, 아시 아를 중심으로 세계경제가 급속도로 블럭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그간의 단 순교역이나 국지적 해외생산거점 확보로는 한계가 있다”면서 “자본 노 동 기술 정보 서비스 등 제반 경영요소 가운데 각국이 보유한 가장 경쟁 력 있는 부분을 유기적으로 조합, 안배하는 경영의 세계화, 현지화가 중 요하다”고 말한다.
대우는 “세계를 우리의 시장으로, 지구촌을 우리의 산업기지로”라는 기 치로 지난 3년여 동안 추진해온 1단계 세계경영의 성과가 성공적이라고 자평한다. 지난해 말 현재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 독립국가연합(CIS), 유럽, 미주 등 전세계에 걸쳐 현지법인, 지사, 연구소 등 4백68개의 해외 네트워크가 구성됐다. 해외고용인력은 12만명으로 전체 대우그룹 종사자 22만명의 절반을 넘는다. 이들 해외네트워크의 지난해 매출액은 22조원으 로 그룹 전체 매출액 55조원의 40%에 달한다. 세계경영의 핵심거점 중 하 나인 폴란드의 예를 보자. 자동차부문의 경우 대우-FSO모터, 대우 모터 폴스카 등 자동차 생산기지를 확보해 체코 아비아, 루마니아 로대 등과 함께 서유럽 전체를 공략하기 위한 자동차 전진기지가 마련됐다. 또 전자 부문도 종합가전단지 구축을 통한 내수 및 동유럽시장 공략을 위한 생산 기지가 구축됐다. 대기업들이 지난해 이후 경기불황으로 고전하고 있는 가운데 유독 대우만 호황을 누리고 있는 가장 큰 요인으로 세계경영의 성 공을 꼽는 이들도 있다.
2000년 해외사업장 매출목표 1백28조원
대우는 지난해 하반기 `‘세계경영 2000년 비전’을 통해 해외사업장을 2 000년까지는 해외법인 6백개를 포함해 1천개로 늘린다는 야심찬 계획을 내놓았다. 매출목표는 올해 71조5천억원의 2배 수준인 1백38조원으로 잡 았다. 대우의 2단계 세계경영 구상은 이런 2000년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포석이다. 해외지역 본사는 해당 거점지역에서 국내의 그룹과 같은 구실 을 한다. 회장비서실의 김윤식 전무는 “경영거점별로 대우그룹을 세워 무역, 자동차, 전자, 건설 등 각 계열사별로 펼치고 있는 사업을 총괄하 게 함으로써 시너지효과를 거두자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결국 연간 매 출액이 많게는 5조원, 적게는 수천억원에 이르는 미니 대우그룹이 전세계 거점지역에 들어서는 것이다.
현지금융의 경우 그동안은 각 계열사별로 추진됐다. 예를 들어 자동차 1 억달러, 전자 5천만달러, 건설 5천만달러를 현지 조달할 때 각 계열사별 로 뛰었다. 그러나 해외지역 본사 체제 아래서는 2억달러 한건만 처리하 면 된다. 자동차, 전자의 판매장을 마련하는 것도 그동안은 따로따로 이 뤄졌다. 그러나 앞으로는 한개의 건물에 두개의 판매장을 동시에 마련하 는 것이 가능해진다.
의사결정의 현지화도 해외현지 본사제의 핵심 대목이다. 그동안 해외사업 장의 의사결정은 국내 본사에 의해 이뤄졌다. 그러나 앞으로는 미니 대우 그룹의 회장이 현지에서 스스로 결정한다. 의사결정이 빨라지는 것이다. 대우는 해외현지 본사제를 기존의 다국적기업과 비교해 초국적기업으로 표현한다. 대우의 한 관계자는 “다국적기업은 의사결정권이 본국의 모기 업에 있지만 초국적기업은 모든 의사결정이 현지에서 바로 내려진다”고 말한다. 이에 따라 철저한 독립채산제가 적용된다. 초기에는 일정 부분 본사지원이 불가피하겠지만 원칙은 ‘스스로 벌어 스스로 쓰는’ 것이다. “과거처럼 현지에서 벌어들인 이익을 본국에 송금하는데 급급하던 시절 은 지나갔다. 남은 이익으로 재투자를 하든, 신규사업에 쓰든, 나아가 주 변국가로 투자지역을 확대하든 현지 회장이 알아서 결정한다.” 대우그룹 관계자의 설명이다. 해외현지 본사와 국내 본사와는 대등한 관계다. 국내 기업은 주로 내수시장과 거점지역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의 신규사업에 주력하게 된다.
해외지역 본사제의 추진은 국내 본사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올 수밖 에 없다. 대우는 2000년에는 해외사업장에서 상시임원 2천5백명을 포함해 25만명의 해외인력이 일하게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미 구축된 4백6 8개 사업장을 뺀 신규 사업장을 5백여개로 잡을 경우 사업장별로 임원 2~ 4명, 직원 10여명을 감안하면 앞으로 2000년까지 임원 1천5백명, 직원 5 천명 이상이 해외로 나가야 한다. 김우중 회장은 최근 지방상공인들과의 간담회에서 “대우에는 1천2백명의 중역이 있지만 6백명이면 충분하다. 이들의 인건비가 1년이면 1천2백억원에 가깝다. 때문에 이들 중역들을 해 외로 내보낼 계획”이라고 공언했다. 기존 임원들에게는 충격적인 이야기 다. 특히 50~60대에 들어선 중역들에게 가족들과 떨어져 갑자기 해외 현 지근무를 하는 것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대우자동차의 한 임원은 “ 상당수 중역들은 몇년만 더 근무한 뒤 회사생활을 정리하려고 생각했는데 이들이 해외지역본사에 나가는 것은 일종의 모험이 될 수밖에 없다”고 털어났다.
김 회장, 50대 이상은 국내에서는 안 된다
그러나 김 회장은 단호하다. “기회가 많은 지역은 대부분 우리보다 경제 발전이 10~20년 뒤진 곳이다. 70~80년대 열심히 뛰던 사람이 보면 향후의 변화가 손금 보듯 훤하다. 50대 이상은 모두 해외로 나가야 한다.” 김 회장이 지난해 초 폴란드 대우-FSO 모터공장을 방문했을 때 한 말이다. 그는 또 “국내 경영환경은 지금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어 50대 이상은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가기 어렵다”는 말도 했다.
대우 안팎에서는 김 회장과 함께 대우그룹의 최고 의사결정을 책임지고 있는 회장들에게도 예외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오히려 회 장들부터 총대를 메고 솔선수범해야 할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예상도 많 다. 현재 대우그룹에서 회장 직위를 가지고 있는 인사는 김 회장을 비롯 해 14명이다(표 참조). 김 회장과 윤 총괄회장 외에 이우복, 이경훈, 이 석희, 허준, 김성진, 서형석, 장영수, 배순훈, 김태구, 윤원석, 박성규, 정희자 회장이 그들이다. 이중 이우복 고등기술원 회장, 이경훈 대우아메 리카 회장, 이석희 대우저팬 회장, 정희자 대우개발 회장을 제외한 10명 이 그룹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회장단 간담회 멤버들이다. 다만 외부에 서 영입된 지 얼마 되지 않고 그룹 경영을 실제로 맡지 않고 있는 허준, 김성진 회장 등은 예외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재계 일부에서는 김 회장의 이런 시도가 국내 조직의 살빼기와 경영진의 세대교체를 겨냥한 다목적 포석이라는 분석도 있다. 또 최근 그룹 안팎에 서는 해외현지 본사 회장을 포함한 올해 사장단 인사가 늦어지고 있는 것 과 연관시켜 일부 회장들이 김 회장의 방침에 거부감을 표시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김 회장을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 하고 있는 임직원들 사이에서는 김 회장 자신이 해외지역 본사 하나를 직 접 맡는 방식으로 특유의 정면돌파 작전을 쓸 가능성이 높다는 예상이 나 오고 있다. 김 회장은 얼마 전 대우자동차의 경영이 어려웠을 때 직접 회 장을 맡은 적이 있다. 계열사의 한 임원은 “결국 최종 결정권은 김 회장 에게 있다”면서 “김 회장의 방침에 따르지 못하는 사람은 회사를 떠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재벌경제 돌파구 마련을 위한 시험대
대우의 세계경영과 해외현지 본사제의 성패는 김 회장과 대우그룹만의 영 광과 좌절에 그치지 않는다. 세계경영의 성공은 사상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는 한국경제와 사실상 이를 떠받치고 있는 재벌 경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줄 수 있다. 그러나 실패는 한국경제에 한보와 삼미의 부도사태를 능가하는 엄청난 시련을 안겨줄 것이다. 경제력집중과 문어발식 사업확장 으로 비난을 받아온 `‘한국형 재벌그룹’ 체제를 해외에 이식시킨다는 점에서 일본 등 선진국들까지 대우 세계경영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올 해로 창립 30주년을 맞은 대우의 세계경영이 재계의 한 화두가 되고 있다 .
곽정수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4월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