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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
1997년04월17일 제 1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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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독일 공공교통노동조합 베를린지부 우베 샤프 의장, 프랑크 베슬 러 부의장과 연수 참가 의원들과의 문답 내용이다.
-노동운동, 특히 공공사업장의 경우 시민들의 신뢰를 얻는 일이 중요하다 고 생각된다.
=그렇다. 공공교통 부문이 파업을 할 경우 최대 피해자는 일반 시민이기 때문에 그들의 호응을 얻기란 여간해선 힘들다. 평상시 노조 축제에 시민 들을 초청하고 자선운동을 벌이기도 한다.
-얼마전 한국에선 노동법 규탄 대규모 파업이 일어났다. 한국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정리해고, 무노동 무임금, 변형시간근로제 등과 관련된 이곳( 독일) 상황을 알고싶다.
=한국상황은 잘 알고 있으며 우리도 한국 노동자들의 활동을 지지한다. 하나씩 이야기하자.
(정리해고) 독일헌법상 정리해고는 가능하다. 통일 뒤 공공버스 사용자쪽 이 직원 10%를 해고한 일도 있다. 그러나 이는 예외적인 경우이며 노동자 의 힘이 강해 사실상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법은 있지만 협약을 통해 모 든 걸 해결하고 있다. 실업자 수당이 1백년 전부터 존재했던 데 반해 정 리해고 문제가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5년 전부터다. 독일의 경우엔 실업 자 수당 탓에 오히려 일찍 실업자가 되려고 하는 것이 문제다.
(무노동 무임금) 파업 기간에 노동자가 100% 임금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 하지만 잘 안 된다. 사용자도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헌법상 무노동 무임 금 원칙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일 하지 않은 사람에겐 권리가 없다는 것은 법이념상의 문제다. 하지만 이도 역시 협약에 의해 개별적으로 결정되고 있다. 쟁의기간에는 노동운동에 참여하지 않은 동료들이 돈을 모아 임금 을 보전해 주기도 한다.
(변형시간근로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 노조평의회가 있어 자체 협약으로 결정한다. 어떤 경우에도 전체 노동시간을 건드리지는 못한다.
-정당과의 관계는 어떤가.
=어느 정당과도 관계를 맺고 있지 않다. 회원들 사이엔 좌·우파가 공존 해 의견이 다른 경우가 많다. 최근엔 공공교통노조가 자체정당을 만들어 노조원은 물론 일반 시민들을 당원으로 받아들이는 방안을 강구중이다. 현재로선 선거 때 특정 정당과 협약을 맺어 지지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는 데 항상 그쪽에서 먼저 찾아온다.
-독일에선 노동운동에 국가의 관여는 거의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노사간 분쟁이 격화될 때 국가가 하는 일은 뭔가.
=헌법상 국가가 노사문제에 관여하지 못하게 돼있다. 예외는 없다. 노조 는 물론 사용자도 제3자(정부)가 개입하는 것을 싫어한다. 정부는 항상 관여하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럴 경우 노조는 당장 연방법원으로 달려가기 때문이고 정부는 판판이 패소할 수밖에 없다.
-독일은 노동자들의 권익이나 복지가 상당히 보장된 것 같다. 지금과 같 은 성과를 일궈낸 비법을 알려달라.
=노동자들의 권익이나 복지가 결코 잘되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독일 노동운동의 역사는 비스마르크 이후 지금까지 1백20년 이상인데 20년 전 부터 조금 괜찮아졌을 뿐이다. 노조가 주로 하는 일은 스트라이크가 아니 라 조합원들을 도와주는 일이다. 감원은 물론 질병, 출산 등의 가정일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또 조합원 가족을 공부시켜 노조를 대변할 수 있는 변호사로 키우기도 한다.
-통일 이후 어려운 점은 없었나.
=베를린은 다른 지방과는 달리 동·서독 사람들이 같이 활동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 최근에는 경제가 많이 어려워 노동운동도 자제하고 있다. 통일 전에는 경제, 임금상황이 모두 좋아 스트라이크 자체가 없었다.
-한국의 노동운동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노동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건 조합원들간의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조합원없이는 노조도 없기 때문이다. 노동운동이 하루이틀에 성과를 보기 란 어려운 일 아닌가? 또 통일을 생각해야 하는 한국은 현 독일상황을 많 이 참고해야 할 것이다. 통일직후 동·서독의 정신적·심리적 차이가 상 당히 심했다. 형, 동생이 만나도 싸움을 벌였다. 통일과정에서 독일이 어 려움을 겪는 이유도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통일 이전 문화적 통 일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4월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