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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04월17일 제 153호 한겨레21

베를린의 선진 지방자치

(사진/분단의 흔적을 지우고 통일독일로 거듭나기 위한 공사가 베를린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전후 유럽 최대 건설공사를 벌이고 있는 베를린 신시가지 모습.)

서울 도봉, 노원, 강북구와 경기 과천시 의원 등 기초자치단체 의원 14명 은 지난 3월17일부터 27일까지 베를린과 도쿄 등 선진 지방자치 현장을 둘러보는 의원연수를 다녀왔다. 80년대 학생운동의 경험을 지닌 ‘바른 의정을 위한 젊은 의원모임’이 주축이 된 연수단(단장 이철주)의 이번 연수는 지방자치실무연구소(소장 노무현)의 기획으로 현지 관계자와의 세 미나, 현장답사, 회견 등으로 진행됐다. `한겨레21'이 동행취재한 그 연 수내용의 일부를 소개한다. 편집자

통일도시 베를린에서는 지금도 통일이 진행되고 있다. 도시 곳곳은 새로 운 청사건설과 도로망 확충 등으로 ‘공사중’인 곳이 많다. 시정의 통합 작업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연방정부 관리공단이 건설중인 베를린 신시가지엔 65개의 관공서 건물이 들어서는 2차대전 이후 유럽 최대 규모의 건설이 한창이다. 이 공사가 완 료되는 2010년까지는 모스크바에서 파리까지 연결되는 고속전철 중앙역, 수상관저, 18개 중앙부처 등이 모두 한곳에 자리잡게 된다. 통합된 베를 린은 8백36㎢(서울 6백28㎢)의 면적에 4백60만의 인구를 안고 있다.

연수단은 베를린에서 공공교통노동조합 베를린지부, 베를린 시의회, 녹색 당 베를린지부 등을 방문했다.


공공교통노동조합 베를린지부

공공교통노조는 독일 공공운송(버스, 지하철, 전차, 해운, 택시, 비행기 등)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상급노조단체다. 독일 교통수단의 60%가 공공 교통에 속한다. 독일 전역에 2백만명의 회원을 갖고 있는 공공교통노조는 베를린 지부에만 25만명의 회원이 소속된 대규모 조직이다. 또한 1896년 일반 버스노조로 시작한 1백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도 역시 임금협상이다. 이를 위해 노조는 매년 사용자쪽과의 임금협상시 임금조정안을 제시하는 자체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독일 노동계가 유럽 다른 나라들에 비해 사용자쪽과 큰 충돌은 없었으나 통일 이후 경제가 악화되면서 노동시간이 길어지는 것에 비례해 스트라이 크 시간도 길어지고 강렬해지고 있다. 최근 베를린에서의 대규모 쟁의는 메르세데스 벤츠사에서 벌어졌다. 지난해 10월부터 벤츠사가 ‘1주일 이 상의 병가에는 임금을 지급하지 않겠다’는 안을 일방적으로 발표하면서 부터다. 벤츠사가 이 안을 내놓으면서 “멀쩡한 사람이 꾀병을 부리는 경 우가 많다”는 것을 그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반발이 극심해 벤츠사의 조처는 아직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현재 독일 노조, 특히 동·서독 노조원들이 한곳에서 공존하는 베를린노 조의 가장 큰 어려움은 노조원 내부의 임금격차다. 독일 정부가 공공서비 스 종사자들의 임금통일에 앞장서 공공교통노조의 경우엔 그 차이가 많이 좁혀진 상태(동독 노동자들의 임금이 서독 노동자들의 94% 정도)지만 사 기업에서는 그 수치가 50%대로 떨어지고 만다. 그래서 동독 출신 노동자 들이 서독 출신 중심의 노조를 불신하는 경우도 많다. 우베 샤프 공공교 통노조 베를린지부장은 “그러나 염려하진 않는다”며 “동독과 서독 출 신을 지나치게 나누어 생각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베를린시 의사당

베를린시 의회는 1899년 프로이센 의회연구소에서부터 시작된다. 프로이 센제국 당시 왕족과 국민들간의 중재역할을 시작으로 출범한 독일의회 의 사당은 건축가 슐츠 아시텍트가 1백년을 내다보고 설계한 것으로 지금껏 과거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이 의사당은 독일 의회역사의 뿌리다. 1919년 독일 공화국 헌법을 제정한 곳도, 1934년 히틀러가 반히틀러 분자들을 처벌하는 특별재판소로 사용된 곳도 이곳이다. 히틀러는 집권 뒤 의사당 건물을 군인 전용 카지노로 격 하시키고 의회 건물의 값진 장식은 모두 다 빼내갔다. 2차대전 이후 동독 지역으로 귀속된 의사당은 소련사령부, 동독 농수산부 건물로 사용되다가 통일 직전 10여년간은 장벽 바로 뒤편에 위치했다는 이유로 완전히 비워 버려 유령건물이 되기도 했다. 파란만장한 현대 독일역사의 한가운데 있 어온 것이다.

통일 뒤 독일은 이곳을 재보수하면서 하나의 기준을 세웠다. ‘역사의 변 화를 볼 수 있게 흔적을 남겨놓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벽면을 두세겹으 로 만들어 바이마르 공화국, 나치, 동독,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의사 당이 어떻게 변천해 왔는지 그대로 드러나게끔 했다. 콘크리트 건물에 팬 의사당 내부 포탄자국을 그대로 남겨놓으면서도 울림을 방지하기 위해 방 벽을 설치하는 등 역사의 보존과 현재의 편리함을 절묘하게 엮어놓았다. 또 이곳을 관광명소화해 안내직원이 동행하면서 독일의회 역사 홍보필름 상영, 의사당 견학·설명을 담당하고 있는데 독일 국내는 물론 해외로부 터 관광객이 끊이지 않아 며칠 전에 미리 예약을 해야 하며 현관에는 그 날의 단체견학 예약상황이 전광판에 새겨지고 있다. 지난 93년 시의사당 건물로 복권된 이곳은 과거 히틀러와 동독시절 시민들로선 범접할 수 없 었던 원망을 고려해 건물 출입엔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그래서 수위가 없다. 의회도서관은 24시간 개방돼 있다.

현재 베를린 시의회 의원은 2백6명으로 87석의 기독민주당(CDU)과 75석의 사회민주당(SPD)이 내각정부를 형성하고 있으며 공산당이 34석, 녹색당이 30석을 차지하고 있다. 여성의원은 79명으로 45%를 차지한다.


녹색당 베를린지부

베를린시 의회 녹색당 의원 30명 중 15명이 여성의원이다. 이는 모든 산 하 단체에 최소 50%는 여성할당제를 적용토록 한 녹색당 내부방침 때문이 다. 한국에선 녹색당이 환경보호 측면에서 주로 알려졌지만 실제 녹색당 방침은 여성권익 향상에 더욱 비중을 둔 듯한 느낌이다. 의회에서 남성의 원 발언 뒤에는 항상 여성의원이 발언하게끔 돼 있고 당 내부회의에서 여 성에게 피해를 주게되는 규정이 논의될 경우 여성이 “스톱”이라고 외치 면 그 논의는 즉시 효력을 잃게 된다. 물론 남성들에겐 이런 권한이 없다 . 이에 대해 당 관계자는 녹색당 당원의 70%가 여성인 점을 감안해보라고 충고한다. 한마디로 녹색당은 여성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 이 아니다. 그래서 녹색당의 어떤 모임도 주변에 어린이 탁아소, 장애자 보호시설이 없는 곳에선 열지 못한다.

76년 창당한 녹색당은 81년 연방의회에 최초의 의원을 진출시켰다. 현재 녹색당의 당원은 4만명이고 베를린에만 3천5백명의 당원이 있다. 창당시 3천1백명의 당원으로 시작했지만 장벽이 무너지면서 당원수가 부쩍 늘었 다. 이는 옛 동독에서 통일 전 녹색운동이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래서 녹색당은 옛 동독의 녹색운동 조직과 큰 마찰없이 자연스럽게 통합 됐다. 이는 공공교통운송노조와는 구별되는 부분이다. 그래서 현재 녹색 당의 정식명칭은 ‘Bundnis 90 Grune’이다. 내부적으로 갈등이 없는 건 아니다. 분드니스는 우파경향을 띠고 있고 녹색당은 좌파경향을 띠기 때 문이다.

녹색당이 집권할 수 있을까? 어리석은 질문같다. 그러나 89년 베를린 의 회에서 사회민주당(SPD)과 연합해 집권한 적이 있다. 하지만 당 관계자들 은 당시의 기억을 회상하며 “힘들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1년도 되지 않아 연정은 깨졌다.

잉그리트 로텐부르그 녹색당 여성분과 위원장은 “개인적으론 집권에 대 한 의욕도 강하지만 당내의 일반적 흐름은 집권보다는 힘있는 제1야당을 지향하고 있다”며 “독자적으론 힘들겠지만 연정을 통해 얼마든지 가능 하다”고 말했다. 당내에서 여성권한이 너무 크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환경은 여성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고 여성 없이는 환경운동이 이뤄 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베를린=권태호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4월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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