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읽기
1997년04월17일 제 153호 한겨레21

과학문화 없는 나라의 재앙

지난 3월17일 과학기술 혁신을 위한 특별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역대 대통령 중에서 과학기술 분야에 가장 무관심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김 영삼 정부 아래서 이런 특별법안이 통과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 다. 그런데 이 법안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과학기술 연구에 종사하는 사 람들의 자긍심을 높이고, 과학기술문화의 진흥과 보급에 힘쓰겠다는 대목 이다. 실제로 법안의 제17조는 ‘과학기술문화의 창달’을 다루고 있고, 순수민간 과학문화 확산기구라는 과학기술문화진흥협회의 발족도 계획되 어 있다.


우리에게 진정한 과학문화는 없다

‘과학기술문화의 창달’이라는 말은 좋은 표현이다. 그동안 정부나 이른 바 과학기술의 전문가라 불리는 사람들은 ‘과학의 보급’이니, ‘과학대 중화’니 하는 대중들을 대상화시키고 아울러 과학과 기술 자체까지도 대 상화시키는 표현들을 사용해왔다. 그에 비하면 과학문화라는 말은 그 진 정한 의미가 대중들을 주체로 삼아 과학이나 기술을 업으로 삼지 않는 그 야말로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적인 문화의 한 부분으로서 인식하겠다는 뜻이다. 따라서 그런 표현의 채택만으로도 바람직한 발전이 라 할 수 있다. 더구나 창달(暢達)이라는 말은 금성출판사판 국어대사전 에 따르면 “의견, 견해, 주장 따위가 거리낌없이 자유롭게 표현되고 전 달되는 것”이라고 되어 있고, “거침없이 쑥쑥”이라는 보충 설명이 나 온다. 따라서 이 표현대로만 될 수 있다면 더할나위가 없는 셈이다.

그렇지만 과연 우리에게 과학문화가 있는가? 그리고 설령 그런 것이 있다 손 치더라도, 과학기술에 대한 민의가 거침없이 쑥쑥 소통될 수 있는가? 아쉽게도 필자가 느끼는 바로는 우리에게는 해마다 4월 과학의 달이 되면 한바탕 떠들고 지나가는 행사나 소동은 있을지언정 과학문화는 없다. 그 리고 거침없이 쑥쑥 통한다는 창달은 소위 대중들에게 과학기술을 보급한 다는 정부 관료들이나 이들과 밀접하게 관련된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나 통하는 이야기이지, 과학기술인 나아가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하기 짝이 없 는 말이다.

며칠 전 우리나라의 과학 홍보의 중책을 맡고 있는 한 인사는 신문 칼럼 에서 “홍보로 과학기술을 뛰게 한다”라는 주장을 펴면서 경제협력개발 기구(OECD)에 가입한 우리나라에 아직도 노벨상 수상자가 한명도 없다는 사실을 개탄했다. 우리의 과학문화의 현주소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 부관료들과 그 주변의 전문가들의 사고 속에서 과학문화는 당면한 경제 위기의 극복이라는 경제논리에 철저히 종속되어 있다. 또 과학문화란 과 학기술을 잘 모르는 국민들에게 열심히 홍보(PR)함으로써 달성될 수 있다 . 더욱이 그 수준을 가늠하는 잣대는 노벨상이다. 여기에서 수많은 과학 기술인들과 일반인들은 항상 독려당하고 홍보당하는 대상으로 남는다. 이 런 식의 관점이 계속되는 한 과학문화와 그 창달이란 한낱 구호에 그칠 우려가 매우 크다. 아직 형성되지도 않은 과학문화를 어떻게 홍보한단 말 인가?


과학기술계의 좋은 기회 살리려면…

문화란 수입되거나 누구에 의해 일방적으로 주어질 수 없으며 형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형성과정에는 무척이나 많은 변수와 주체들이 개입된 다. 정부도 과학문화의 형성과정에 작용하는 여러 주체들 중 하나다. 물 론 정부는 다른 주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비중을 갖는다. 그러나 그 중요성이 잘못 이해돼서는 안 된다. 정부가 큰 비중을 갖는다는 뜻은 여 러 주체들이 막힘없이 자신의 주장을 제기하고, 다양한 활동을 벌일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고 지원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는 의미다. 하지만 ‘중요성’이 스스로를 유일한 주체로 생각하고 다른 주체들을 들러리나 대상으로 간주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과학기술계가 모처럼 맞이하는 좋은 기회가 말 그대로 과학기술문화의 창달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과학문 화를 생각하는 태도부터 바뀌어야 할 것이다.

김동광

1957년생, 고려대학교 독어독문학과 졸업, 고려대학교 과 학학협동과정 과학사회학 석사과정, 현재 과학세대 대표

© 한겨레신문사 1997년04월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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