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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
1997년04월17일 제 1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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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한파로 오페라계가 잔뜩 움츠러들었다. 오페라 탄생 4백주년이 무색 할 정도로 아직 대극장용 오페라가 단 한편도 선보이지 않고 있다. 올봄 들어 바그너의 `니벨룽겐의 반지'(3.20~21)와 베르디의 `오텔로'(3.27~28 )가 콘서트 오페라 형식으로 공연됐고, 7일 공연한 국제오페라단의 `푸치 니의 밤' 역시 푸치니의 주요 오페라 아리아만 골라 연주하는 갈라콘서트 로 진행됐다. 무대장치와 의상을 생략하기 때문에 제작비를 절반 이상 줄 일 수 있다는 점이 이런 콘서트 오페라가 양산되는 원인이다. 4월 초 도 니제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을 공연하려던 한국오페라단은 극장 대관 을 취소했다. 지난해 한달에 1~2편 정도 대형 오페라가 무대에 올려졌던 데 비하면 상당한 침체다. 대극장용 오페라 한편을 무대에 올리는 데 드 는 비용이 평균 2억~3억원, 많게는 5억원이 넘는 거액이 소요되다보니 오 페라단은 결국 제작비 대부분을 기업협찬에 의존하게 된다. 그런데 최근 불황에 한보사태까지 겹쳐 협찬사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 워져 아예 손놓고 쉬는 오페라단도 많다. 하지만 이런 오페라의 겨울에도 작품성을 지닌 소극장 오페라 두편이 관객들을 찾아와 동백꽃 같은 향기 를 발하고 있다.
국립오페라단이 4월8일에서13일까지 공연하는 로시니의 `결혼청구서'(02- 274-1151)와 서울오페라앙상블이 4월11일부터 14일까지 공연하는 푸치니 원작의 번안 오페라 `서울 라보엠'(02-574-8798)이 그것으로, 둘 다 소극 장용 오페라다.
국립중앙극장 소극장에서 공연하는 코믹오페라(부파) `결혼청구서'는 한 국에선 초연으로 딱딱한 오페라에 질린 사람들이라면 오페라와 친해볼 기 회를 제공해 주는 작품이다. 신대륙(아메리카)에서 자수성가한 슬룩이 신 부감을 구하기 위해 유럽상인 밀 토비아에게 편지(결혼청구서)를 보낸 뒤 찾아오는데 결혼상대로 지목된 밀의 외동딸 판니는 이미 사귀던 사람이 있다. 궁지에 몰린 판니는 가난한 연인 에도아르도와 계략을 꾸미는데…. 이 오페라에 출연하는 배우들은 대부분 지난 1월20일 공개오디션으로 발 탁된 신인들이다. 국립오페라단은 노래보다는 연극적 요소에 중점을 둬 오페라에 익숙지 않은 일반인들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공연하는 `서울 라보엠'도 자못 기대되는 작품 이다. 요즘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선풍을 일으키고 있는 뮤지컬 `렌 트'가 미국판 라보엠이라면, `서울 라보엠'은 ‘5월 광주’의 후유증을 앓고 있는 젊은 예술가들을 그린 한국판 라보엠이다(부제:신촌지엔느의 사랑의 노래).
그래서 작품의 무대는 프랑스 파리가 아닌 80년대 서울의 신촌이고 주인 공 ‘미미’와 ‘로돌포’는 ‘하영’과 ‘한솔’이라는 한국이름으로 바 뀌어 등장한다.
80년대의 어느 겨울, 신촌역 앞 카페 ‘라보엠’에서 시위대를 피해 뛰어 들어온, 광주가 고향인 하영(미미)과 광주계엄군의 기억을 괴로워하는 한 솔(로돌포)이 만나 사랑을 고백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원작의 흐름을 그대로 살렸지만 한국적 상황을 이식해 처음부터 ‘모래시계’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원작과 마찬가지로 하영은 백혈병으로 쓰러지지만 ‘서울의 봄’을 꿈꾸는 그 시절 한국 젊은이들의 정서가 작품 전반에 흐른다. 음 악은 가사만 한국말로 바꿨을 뿐 곡은 푸치니의 원작을 그대로 사용하는 등 동서양과 시대를 어지러울 정도로 연결시켜 관객들은 새로운 문화적 체험에 흠뻑 빠질 수 있을 듯하다. 이 오페라는 번안극이라는 것 외에도 영상오페라 라는 점에서도 눈길을 끈다. 2막 카페장면과 3막 한솔의 아리 아에서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된 영상이 슬라이드로 보여줌으로써 오페라 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현실감을 관객에게 던져준다. 서울오페라앙상블 의 `우리의 얼굴을 한 오페라' 시리즈 1편인 이 <서울 라보엠>은 서울에 이어 5월 부산, 6월 광주 비엔날레 등에서도 공연될 예정이다.
권태호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4월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