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시대
1997년04월17일 제 153호 한겨레21

홍세화씨가 전하는 세기말의 선택

지난 3월24일 오후 2시 파리 오페라하우스 베토벤 동상 앞에서 ‘빠리의 택시운전사’ 홍세화(50)씨를 만났다. 79년 남민전 사건으로 국제적 미아 가 된 그의 이국생활은 이제 20년이 다 돼간다. 오랫동안 잊혀졌던 인물 인 그는 지난 95년 88년~90년까지의 택시운전사 경험을 토대로 기록한 망 명기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가 국내에서 출간돼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 려졌다. 그는 이제 더이상 택시를 운전하진 않는다. 3년 전부터 ‘진태옥 패션’ 파리지사장(본인은 이 표현을 매우 쑥스러워 했다)으로 과거에 비 해 경제적, 시간적으로 훨씬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다. 그의 책에서 “왜 우리는 우유 안 사”라고 물어 가슴을 아프게 했던 딸 수현은 이제 23살 의 대학원생이다. 파리3대학 응용외국어과를 졸업한 뒤 유럽대학 연합 코 스인 유로마스터 코스에 수학중이다. 아들 용빈(20)은 파리 10대학 경제 학과 2학년이다. 그는 자식 이야기를 꺼내면서 스스로 팔불출이 되고 말 았다. 어려운 시절 불평없이 잘 자라준 자식들이 여간 고마운 게 아닌 모 양이다.


미래전략 없으면 정통좌파 꿈틀댄다

`나는 빠리의~' 이후 별다른 집필을 하지 않았던 그는 오는 여름 `프랑스 , 프랑스 사람'(한겨레신문사)이라는 단행본을 펴내는 것을 시작으로 글 쓰기 작업에 힘을 쏟겠다는 계획을 다짐처럼 이야기했다. 또 오는 5월 ` 나는 빠리의~' 일본판 출간과 관련해 일본을 방문한다. 처음으로 유럽을 떠나게 되는 거다. 그리고 비행기를 갈아타느라 김포공항 보세구역에 잠 시 머무르게 된다. 물론 그는 아직 한국에 입국할 수 없는 몸이지만 10여 년 만에 맛보는 고향의 공기와 하늘이 어떻게 느껴질지 궁금하다. 하지만 그는 복권이 된다 하더라도 곧바로 한국으로 돌아올 수는 없을 것 같다. “10여년 전에 제 스스로 한 약속이 있습니다. 한반도엔 기차를 타고 간 다는 거죠. 죽기 전에 그 약속을 이룰 수 있겠죠.” 지난해 파리에서 함 께 살던 장모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아내는 향수병이 더욱 심해져 그에 게 파리시민권 취득을 재촉한다. 프랑스 국적으로라도 고향땅을 밟고 싶 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아직 망설이고 있다.

고국을 이야기하면서 자연스레 대학시절 그의 동료들의 근황이 오고갔다. 김지하, 이철, 유인태, 김명곤, 유홍준 등 그의 선후배와 친구들. 그는 고국친구들이 정치, 문화계에서 많은 활약을 하고 있는 모습에 흡족해 하 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80년대의 숱한 젊은이들도 70년대를 산 우리들 의 나이가 되면 또다른 열매를 거두지 않겠느냐”고. “양적, 질적으로 그만한 젊은 동력이 발휘됐던 시기는 분단 이후 처음이었습니다. 그들은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큰 자산입니다. 이제 30대가 된 그들은 우리들 이 그 나이 때 그러했던 것처럼 자아실현과 생존의 양갈래에서 많은 고민 을 하고 있을 겁니다. 생존문제를 가볍게 넘기기란 결코 쉽진 않지만 40~ 50대 자신의 모습을 지금부터 그려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쉽게 예단하진 말아야 합니다. 이 사람, 저 사람 떼고 나면 뭐가 남습니 까?” 그의 말엔 인생의 한 선배로서 애정이 담겨 있다. “저는 지금의 3 0대를 낙관적으로 봅니다.”

그리고 그는 한국의 30대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는 신자유주의(네오리버럴 리즘)에 대해 “여기(프랑스)에도 포스트모던의 전세계적 조류 영향으로 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사회주의의 몰락, 유럽통합의 기운 등 네오리버럴리즘이 휩쓸면서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노동운동은 힘 이 빠지고, 일자리가 사라지고, 거지들도 많이 생기고, 실업자 수도 공식 적으로 3백20만으로 추정되는 어려운 상황이 프랑스를 휩쓸고 있다. 블루 칼라는 물론 화이트칼라도 서서히 몰락하는 상황이 프랑스에서도 진행되 고 있다는 것이다. 그를 만난 날도 파리시청 앞에선 병원 침상수를 줄이 려는 공공병원쪽에 항의하는 의사와 간호사들의 시위가 있었다. 사회복지 의 개념이 강한 유럽에서도 모든 게 시장의 논리로 환원되고 있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경제와 사회가 싸우고 있는 상황인데 새 로운 사회모델이 보이지 않게 되면서 결국 정통좌파들이 새로이 꿈틀거릴 수밖에 없는 국면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특히 혁명을 경험한 프랑스가 더 욱 주목됩니다. 20세기가 끝나기 전에 한차례 소용돌이가 올 텐데 그러면 18, 19세기 선각자들의 사회비판적인 이론들이 다시 대두될 것입니다.” 그는 이러한 시기에 ‘똘레랑스’가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똘레랑스 ’는 우리말로 ‘관용’이라는 말로 번역할 수 있을 텐데 그의 책을 통해 국내에 널리 알려진 개념이다.


서로의 차이 인정하고 포용해야

‘똘레랑스’는 프랑스보다 오히려 한국에서 더욱 필요한 것같다는게 그 의 생각이다. 그는 “한국엔 원래 중용의 문화가 존재했는데 분단과 전쟁 , 독재정권 등으로 인해 서로 불신풍조가 심화되면서 이런 전통이 사라지 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사회에 대해 “자기로 살지 않고 남의 시선을 통해 산다”는 점도 안타까와 했다. 그의 결론은 서로가 서 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포용해 주는 문화가 한국사회에 하루빨리 정착돼야 한다는 것이다.

카페에서 2시간 남짓 대화를 마친 뒤 “집을 보고싶다”는 제의에 그는 별 미동도 없이 “그럽시다”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의 집은 파리근 교 신도시 주택가 라데팡스지역에 위치한 아파트다. 방 2개에 20여평 규 모의 평범한 가정이다. 편안한 자리가 되자 그는 한국상황에 꽤나 갈증을 느꼈던 지 오히려 많은 것을 물어왔다.

그날 저녁 지하철역까지 배웅하는 자리에서 그는 “이곳 날씨는 늘 을씨 년스럽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바람이 더 쓸쓸하군요. 한국의 산이 그립습 니다”라고 나직이 말했다. 그의 쓸쓸함이 가슴으로 번져왔다.

파리=권태호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4월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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