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시대 |
1997년04월17일 제 153호
|
|---|
신데렐라 콤플렉스의 첨단은 텔레비전 CF다. 특히 여성들이 주고객인 화 장품, 여성의류 부문에서는 여성운동가들이 가장 싫어할 여성의 상품화, 객체화가 더욱 두드러진다.
최근 광고계에서 최고의 주가를 누리고 있는 남자모델은 배용준이다. 그 의 가치는 여성화장품 광고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과일나라’를 손에 들고 “누구에게 줄까”라며 미소를 머금은 그에게 얼굴을 찌푸릴 여자가 몇이나 될까? 박중훈이나 최민수의 ‘느끼함’과는 확연히 차이나는 그 깔끔한 눈매에 폭 빠진 여자들은 배용준의 질문에 이렇게 외칠 거다. “ 저요, 저요”라고.
‘과일나라’ 광고 최신편은 코팩이다. 배용준이 “예쁜 여자는 코가 예 뻐야 한대요”라고 점잖게 말을 꺼내면 여자모델은 열심히 코에 하얀 팩 을 덮어씌우고 ‘야들야들 쏙쏙’이라며 코를 문지른다. 여자모델은 배용 준의 말 한마디에 웃었다 찌푸렸다 어쩔 줄 모른다. 광고는 배용준의 “ 코팩해 드릴까요?”라는 은근한 권유로 끝난다.
고유 정서 사라진 여성 상품화 일색
하지만 이 정도는 애교로 봐줄 수도 있다. 여성용품에 남자모델이 등장하 는 것이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고. 그러나 광고에 등장하는 여자모델은 왜 하나같이 외모에만 집착하고 남자의 눈길을 끄는 데 목을 매는 모습으로 나타나야만 하는가?
얼마 전 선보인 태평양화학 헤어젤 광고를 한번 보자. 침대 위에 속옷 차 림의 남자와 여자. 남자는 편하게 여자의 허벅지를 베고 누워 마치 애완 용 고양이를 다루듯 여자의 머리칼을 쓰다듬는다. 부드러운 팝송에 몸도 마음도 나른해진다. 그런데 갑자기 음악이 ‘지직’거리면서 판이 긁히는 소리와 함께 남자의 손길도 멈칫거리고 만다. 머리칼이 엉겨 있기 때문이 다. 여자의 곤혹스런 표정과 말 없는 남자를 대신해 화면 위로 뜨는 카피 하나. “도대체 뭘 바른 거야?” 그뒤 여자는 절치부심, 신제품 헤어젤을 머리에 듬뿍 발라 재무장한 뒤 다시 남자의 품에 포근히 안긴다. 그제서 야 여자는 “제머리 만져 보실래요?”라며 활짝 웃는다. 이 광고에서 여 자는 남자의 완벽한 부속물이다. 남자는 중세시대 영주, 여자는 시종처럼 느껴졌다면 이들의 사랑을 잘못 해석한 건가? 신데렐라 콤플렉스와 관련 된 광고엔 외국인 모델도 많이 등장한다. 서구적 외모를 동경하는 우리네 정서 때문이리라. 특히 파리를 배경으로 한 광고가 많다.
미스 프랑스인 발레리 클래스가 공주옷을 예쁘게 차려입고 “파리의 아름 다움은 상속받는다”라고 말하는 코티 화장품광고는 이 화장품을 사용해 그 상속인이 돼라는 조용한 웅변이다. 상품의 전통과 우수성을 강조하기 위한 카피였지만 본인의 노력보다는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것에 초점을 맞 춘 듯한 인상이다.
역시 파리를 배경으로 한 여성의류 부뜨르농 광고엔 “난 오늘 파리의 유 혹에 눈을 뜬다”라는 글귀와 함께 정장을 입은 금발미녀가 멋들어진 춤 을 춘다. 처음 여자모델로만 꽉 찼던 화면이 카메라가 뒤로 빠지면서 주 변이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먼저 에펠탑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 다음 피아 노가 솟아오른다. 시청자는 그제서야 그 여자의 무대가 센 강변에 놓인 피아노 위임을 알게 된다. 여자는 남자가 연주하는 피아노 리듬에 맞춰 인형처럼 춤을 추고 있다. 이를 `서편제'의 송화와 동호가 소리와 북으로 화답하는 장면 같은 예술로 보는 이도 없진 않겠지만 자존심 있는 여자라 면 피아노 위에 올라간 무희가 되려고 하진 않을 것 같다.
공주병 환자가 등장하는 광고도 많다. 나이스화장품 광고에서 이승연은 수갑을 찬 채 검찰에 호송되면서도 여유만만이다. 몰려든 기자들에게 “ 아름다움도 죄가 되나요. 난 ooo 쓴 죄밖에 없는데”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이승연은 이 광고에서 역설적으로 이렇게 말하는 건지도 모른다. ‘여자는 그저 나처럼 예쁘면 돼’라고.
반복되는 영상에 오도된 미의식 강요
이처럼 광고에서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자극하는 장면이 빈번하게 등장하 는 이유는 뭘까? 이에 대해 제일기획 카피라이터 이현우씨는 “광고계에 서 신데렐라 콤플렉스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여성들의 일반적 정서 로 파악, 이러한 컨셉을 응용한 광고가 상당한 유효성을 지니고 있는 것 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최근엔 독립적이고 당당 한 모습의 여자를 등장시키는 광고가 그 차별성 때문에 상업적 효과를 거 두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광고는 문예물도 아니고 사회적 공익성과는 더더욱 관련성이 없다. 오직 구매력과의 연관성이 중시될 뿐이다. 하지만 영상의 반복은 무의식 중에 관념을 형성하고 행동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광고의 신데렐라화는 우려되는 측면이 많다. 신데렐라형 광고가 많은 것은 신데렐라를 꿈꾸는 여자들이 많기 때문인가, 생각없는 광고기획자들이 현실은 무시한 채 이 미지 조작에만 열을 올리기 때문인가? 어쨌든 이제 신데렐라는 신물난다.
권태호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4월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