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시대
1997년04월17일 제 153호 한겨레21

신데렐라 판치는 텔레비전 드라마

(사진/순정만화의 골격을 빼박은 `별은 내 가슴에'는 갈수록 시청률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고급 외제차와 호화별장 등 신데렐라의 꿈을 자극한 탓일까.)

“힘들고 고달픈 시청자여, 환상의 세계로 오라.”

요즘 텔레비전 드라마가 매혹적인 몸짓으로 시청자를 유혹하고 있다.

지난해 기혼 남녀의 불륜을 소재로 톡톡히 재미를 본 각 방송사가 이번엔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자극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듯하다. 시청자 의 신분상승 욕구를 대리만족시켜주는 대신 광고수입과 연결되는 시청률 을 챙겨내는 것이다.

원색의 필터를 사용한 감각적 영상, 빠른 카메라 워킹, 감미로운 음악, 화려한 의상과 소품들…. 여기에 빼어난 외모에 세련된 치장의 청춘스타 들이 어우러지면 그야말로 시청자의 시·청각을 흔들어 놓기에 부족함이 없다.


시·청각 흔들어 놓는 자극요법 속출

시청률 회복을 목표로 최근 프로그램 전반에서 자극요법의 수위를 높이고 있는 문화방송이 이 경향을 주도하고 있다. 이른바 `‘트랜디 드라마’의 원조격인 `질투' `사랑을 그대 품안에' `호텔' 등 수년 전 방송했던 드라 마들의 명성을 노린 듯하다.

지난달 초부터 방송되고 있는 월화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극본 이선미, 연출 이진석)를 보자. 시대 배경만 다를 뿐 이야기 구도는 외국동화 `‘ 신데렐라’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고아 출신으로 순수하지만 악착스런 면 모를 보이는 여주인공 최진실(연이 역)의 성장배경과 성격은 일본만화 주 인공 ‘`캔디’를 연상시킨다.

최진실의 상대역인 남자주인공 차인표, 안재욱 등은 현대판 `‘백마 탄 왕자’다. 수려한 외모에 재력, 능력을 겸비하고 있다. 극중 안재욱이 몰 고다니는 외제 스포츠카에 한번 타보고 싶지 않은 시청자가 있을까. 차인 표가 외국 각지에 마련해놓은 아늑한 별장에 한번 들러보고 싶지 않은 시 청자가 얼마나 될까.

어쨌든 문화방송의 이런 전략은 시청자에게 빠른 속도로 먹혀들고 있다. 방송사와 광고주들이 그렇게도 중시하는 시청률에서 `별은…'는 지난주 절대순위 2위인 45% 가량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더욱이 갈수록 시청률 상 승곡선을 그리고 있어 문화방송 관계자의 마음을 뿌듯하게 하고 있다.

이에 고무된 것일까. 문화방송은 오는 4월26일부터 방송예정인 주말극 ` 사랑한다면'의 후속작 제목을 아예 `신데렐라'(극본 정성주, 연출 이창순 )로 정했다.

지난해 `애인'으로 방송위원회 제재 등 여론의 비판을 받았음에도 회사에 서는 오히려 상을 받은 이 프로듀서가 `애인'의 황신혜, `첫사랑'의 이승 연 등 간판 스타들로 진용을 짰다. “캐스팅이 드라마의 반은 먹고 들어 간다”는 일선 제작진의 말에 비춰 캐스팅, 제목에서부터 일단 시청자의 눈길을 끄는 요소는 갖춘 셈이다.

대본에 나타난 드라마의 내용 역시 제목을 잘 반영하고 있다. 제작진은 “신데렐라 콤플렉스는 그 자체가 행운을 얻은 사람에 대한 질투를 내포 하고 있는데, 두 자매의 심리를 통해 그런 질투심을 정밀하게 보여주겠다 ”고 밝히고 있다.


진부한 내용을 현대적 감각으로 포장

재벌그룹의 외아들 ‘`준석’(김승우 분)을 둘러싼 혜진(황신혜 분)·혜 원(이승연 분), 두 자매의 사랑 질투 좌절 화해 등이 기둥줄거리다. 상류 사회에 남다른 동경심을 갖고 있는 커리어우먼인 언니 혜진은 준석을 통 해 신분상승을 꾀한다. 또 모델인 동생 이승연은 준석에게 어느 날부터 묘한 감정을 느끼면서 언니와 갈등을 유발한다.

제작진은 “두 자매가 질투와 분노로 치닫던 중 언니의 자살시도를 계기 로 인생에는 신분상승보다 더 귀한 무엇이 있음을 보이려 했다”고 한다. 하지만, 남녀간의 삼각관계를 주로 한 정통 멜로물에 동화 `‘신데렐라’ 의 이야기를 적당히 녹여넣은 구도임을 부인하지 못할 듯하다.

4월9일 시작한 서울방송 수목드라마 `모델'(극본 이윤택·이선희, 연출 이강훈)도 뭇 여성들의 선망의 대상인 패션산업과 모델의 세계를 다루고 있어 화려함이 문화방송 드라마에 못지 않다. 지난 2월 시청률 저조 때문 에 도중하차한 문화방송 `욕망'과 같은 소재다.

장동건 김남주 한재석 염정아 등 빼어난 외모의 청춘스타들이 포진하고 있다. 제작진은 “톱모델들이 직접 출연하는 화려하고 박진감있는 패션쇼 를 선보이는 등 볼거리를 제공하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이런 류의 드라마 유행현상에 대한 방송가의 해석을 들어보자. 한 관계자 는 “지난 30년대 미국의 경제공황 당시 영화산업만은 호황을 누렸다”며 “이들 드라마가 불황 속 시청자의 불안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 고 해석했다.

또 최상식 한국방송공사 드라마제작국장은 “최근까지 유행했던 불륜, 복 고풍 드라마에 식상해 할 시청자의 구미에 맞추려다 보니 이런 소재가 각 광받는 듯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런 드라마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우선, 제작진과 일부 시 청자들의 긍정적 의견도 만만치 않다.

`별은…'를 즐겨본다는 회사원 김은주(27·여)씨는 “내용은 유치하고 만 화같지만, 드라마의 기본요소인 재미를 충실하게 제공하고 있다”며 “대 중문화를 현대적 감각으로 이끄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수년 전 문화방송의 트랜디 드라마들은 줄거리, 대사 중심의 재래 적 드라마의 수준을 감각적 영상, 연출력 등으로 한차원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성숙한 대중문화 선도할 수 없나

그럼에도 요즘 방송드라마의 `‘신데렐라’ 유행병의 부정적인 면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함상규 방송위원회 홍보부장은 “진지한 고민이나 연구 없이 오직 눈요깃 거리로 시청률을 높이려는 방송사의 발상이 문제”라며 “경제불황이 심 각한 현 시국에서 이런 드라마들이 조장할 위화감과 과소비를 어떻게 받 아들여야 할까”라고 반문했다. 또 한국방송공사의 한 프로듀서는 “드라 마는 인간탐구가 생명인데, 지나친 감각 추구는 결국 인간과 드라마를 모 두 잃어버리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런 현상을 계기로 국민의 공동재산인 전파를 이용하는 사업자로서 각 방송사의 공영성, 도덕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박웅진 한국방송개발원 연구원은 “각 방송이 드라마를 시청률 경쟁의 첨 병으로 여기다 보니 무리하고 자극적인 소재, 연출 등이 나타난다”며 “ 우선 드라마 숫자를 줄여 충실한 제작여건을 확보한 뒤 성숙한 대중문화 를 선도하고 있다는 자부심 경쟁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김종태 기자/ 한겨레 여론매체부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4월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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