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칼럼 |
1997년04월17일 제 153호
|
|---|
일년여 한국을 떠나 있다 돌아와 인사동에서 한 친구를 만났다. 관광상품 을 개발하고 싶은데 외국에서 본 그런 것들을 좀 말해줄 수 없겠느냐고 해서였다. 그건 나에게도 흥미로운 일이어서 현황파악도 할 겸 서울의 전 통거리라 할 만한 인사동을 들른 것이다. 관광상품이라면 들고 나다니기 쉬운 물건류도 생각해볼 수 있지만 우리의 의식주가 모두 그것일 수 있다 고 생각해 오던 터에 우리네 음식을 파는 음식점을 둘러 보리라 싶어 한 정식 전문을 표방하는 한 음식점에 미리 예약을 해 두고 시간 맞추어 그 집으로 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 우리가 예약을 했는데도 주인왈 어떤 모임의 손님들이 한꺼번에 밀어닥쳤으니 괜찮으시다면 옆집에 가시는 게 어떻겠느냐고! 도 저히 수긍하기 어려워, 예약을 했는데 그럴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약속을 지켜달라고 말했다. 주인 대답인즉, 꼭 그러시다면 준비는 해드릴 수 있 겠는데 음식이 좀 부실하더라도 양해를 해달라나. 어이없어 하며 다른 집 으로 갔는데, 옮겨간 그 집은 벽에 둘러쳐진 병풍은 멋없이 찢어져 누추 해 보이고, 나일론 장판 위에 강렬하게 내려쪼이는 형광등 불빛 탓에 안 락함이 없었다. 밥상에서나마 우리 것의 특성을 기대했지만 한식도 양식 도 아니어서 또한번 허탈했다. 그날의 밥값은 저녁이라는 이유로 일인당 3만5천원(낮에는 같은 밥상이지만 1만5천원인데). 그 값이면 내가 다녀본 외국 어디에서도 괜찮은 분위기를 즐기며 그 나라 요리의 특성을 살린 요 리를 먹을 수 있었으련만 그 저녁은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인사동이면 우리의 살아가는 모습을 잘 보여줄 수 있는 곳이라고 여겨져 외국인에게 한국을 안내할 때 누구나 한번쯤 떠올리는 곳이다. 그런 곳에 자리잡은 음식점이나 거리의 모습이 이러할진대 관광상품은 어떠한 것이 좋겠다고 말하겠는가? 관광상품은 우리의 현재 생활과는 동떨어진 공항이 나 박물관 같은 특별한 장소에서만 팔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 온 어느 외국인이 어떤 곳에 밥 먹으러 갔다가 벽에 걸린 물건 하나가 하도 색달라 보여 저것이 무엇이냐 묻게 되고 돌아갈 때 하나쯤 바로 골목길 어귀 가게에서 기념품삼아 사 갈 수 있는, 바로 우리의 생활이 스민 상품 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외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고 걱정이 태산 같고 나라 안이 온통 돈 때문 에 죽네 사네 하면서도 관광으로 벌기보다 관광으로 쓰는 게 더 많은 현 실일 터인데 관광산업 육성한다고 있던 것 다 내다버리고 새로 짓기만 해 야 할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일이다.
수령이 높은 느티나무 하나, 할머니 할아버지의 숨결이 밴 초가집 한채, 고유한 우리 음식, 대대손손 전해지는 생활태도, 토속적인 정 같은 것이 더 소중한 관광 자산임에 틀림없다. 이것을 지키지 못하고 지나친 개발에 급급하다 보면 관광의 도시는 모 대통령의 잘못된 발음대로 강간의 도시 가 되고 말지 모른다.
자신들이 오래도록 살아온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조용히 관광객을 맞 이하면서도 관광객이 끊이지 않던 유럽의 많은 고도들이 눈에 선하게 떠 오른다.
형난옥
숙명여자대학교 졸업, 80년부터 출판사에서 편집일을 시작하여 현재 현암사 주간.
© 한겨레신문사 1997년04월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