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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정성 큰 기쁨 |
1997년04월17일 제 1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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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학(27)씨는 지난해 식목일, 여자친구로부터 금잔화 꽃씨를 선물받았 다. 자취방에 들어서더니 불쑥 손바닥만한 봉지를 내미는 거였다. 봉지 안에는 마침표처럼 까만 꽃씨들이 한움큼 담겨 있었다. “지금은 이렇게 볶은 깨처럼 바스락거리지만, 물기를 먹으면 예쁜 꽃을 피울 거야. 색깔 이 샛노란 게 아주 고와.”
두 사람은 그날 자취방 앞 4평 남짓한 화단에 꽃씨를 심었다. 화단가를 둘러 돌을 고르고 씨를 뿌렸다. 윤씨로선 태어나서 처음 짓는 농사였다. 그렇다고 꼭 꽃을 피우리라는 욕심은 없었다. 사실 그 작은 몸 속에 꽃이 숨어 있다는 게 선뜻 믿기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면 이따금 화단에 들러 싹이 돋아났나 지켜볼 뿐이었다. 5월 들어 햇볕이 따가워지면서는 가끔 물도 뿌려줬다.
두달쯤 지났을까. 가느다란 줄기가 잇따라 뻗어오르더니, 머리에 하나둘 씩 꽃봉오리를 이기 시작했다. 소박한 모습이 친구를 닮은 듯도 했다. 집 을 나설 때, 한번 굽어보고 돌아와서 다시 한번 굽어보는 기쁨이 제법이 었다. 그럴 때마다 꽃잎이 조금씩 열리는 것 같았다. “내가 비록 생명을 만들 수는 없지만, 키울 수는 있다는 사실이 기뻤습니다.”
금잔화는 화단 곳곳에서 피어났다. 왜 요만큼밖에 피지 않았을까 하는 안 타까움이 스친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새 꽃봉오리가 맺혔다. 화단가를 따 라 노란 꽃의 울타리가 생겼다. 그러는 사이 봄이 가고, 여름이 지났다. 그리고 그해 가을, 윤씨는 영국의 인류학자 제임스 프레이저가 쓴 <황금 의 가지>라는 책에서 금잔화에 얽힌 사랑의 이야기를 읽었다. 실연을 당 한 여인이 자기를 버리고 간 남자의 발자국에 정성스레 금잔화 꽃씨를 심 었더니, 꽃이 필 때쯤 남자가 돌아왔다는 애잔한 사연이었다.
윤씨는 지난 2월 대학을 마치고, 농심의 신입사원이 됐다. 아직은 일이 익숙지 못하지만, 식목일을 맞아 힘이 솟는다. “이번엔 제가 친구에게 꽃씨를 선물했습니다. 그리고 회사동료와 선배들에게도 꽃씨를 안겼죠. 누구나 바라는 사랑을 피워보라고요.”
이용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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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신문사 1997년04월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