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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04월17일 제 153호 한겨레21

매운라면 정상을 점령하라

(사진/한국인의 입맛, 매운맛으로 승부한다. 라면시장의 절대강자로 군림한 신라면에 맞서는 도전자들의 전력이 만만치 않다.)

라면시장에 매운 맛 경쟁이 뜨겁다. 매운 맛의 터줏대감격인 농심 신(辛) 라면에 매서운 도전자가 잇따라 등장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오뚜기 열(熱 )라면이 첫 포문을 연데 이어, 최근엔 삼양식품의 핫(HOT)라면, 한국야쿠 르트의 쇼킹면까지 가세해 공세를 펴고 있다. 모두 라면시장의 주무기인 매운 맛과 3백원대 가격으로 무장한 회사의 주력군이다.

신라면은 그동안 라면시장의 최강자였다. 지난 86년 첫선을 보인 이래 무 려 11년째 라면시장을 석권했다. 지난해 2천1백억원어치가 팔려 5천9백억 원대로 추산되는 봉지라면 시장의 45%를 차지했다. 라면업계 2위인 삼양 식품 총매출의 2배에 이르는 액수다. 때문에 라면업계에서는 신라면을 “ 골리앗을 쓰러뜨린 다윗의 돌멩이”에 비유하기도 한다.


시장 45% 점유한 골리앗에 도전한다

신라면의 독주를 막기 위한 다른 업체의 도전은 그야말로 실패의 연속이 었다. 삼양식품의 이백냥, 빙그레의 고추맛면 등이 도전장을 내밀었으나 변변히 싸우지도 못하고 무릎을 꿇어야 했다. 특히 삼양라면은 아예 경쟁 을 포기할 정도였다. 궁여지책으로 주력상품을 순한 맛으로 돌리고, “삼 양라면은 맵지 않습니다”라는 광고까지 내보냈지만, 입맛은 씁쓸했다. 이런 상황에서 오뚜기 열라면이 불쑥 나타났다. 지난해 8월 출시된 열라 면은 진짜 뜨거운 맛을 선언하며 봉지라면 시장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나온 지 2개월 만에 월 판매량이 20만 상자를 넘어섰고, 3개월째는 30만 상자를 돌파했다. 라면업계에서는 월 판매량이 10만 상자를 넘어서면 평 균작으로, 20만 상자를 넘어서면 히트로, 30만 상자를 넘어서면 빅히트로 친다. 농심이나 삼양식품으로선 열받을 만한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오뚜 기쪽은 “특수가공한 고춧가루에 후추와 마늘을 섞어 강렬한 매운 맛을 낸 게 성공의 비결”이라며 희희낙락하고 있다.

먼저 삼양식품이 전열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신라면의 독주에 제동을 걸 고, 열라면의 거센 추적을 따돌려야 하는 긴급한 처지에 빠졌기 때문이다 . 마침내 지난 2월 핫라면을 내놓고 대대적인 반격에 나섰다. 서구식 입 맛에 길든 신세대를 주요 소비층으로 겨냥해 부드럽고 매콤한 맛을 표방 했다. 면발도 가늘고 부드러우면서 쫄깃쫄깃하게 뽑았다. 삼양식품쪽은 “올해 핫라면으로 4백억원대의 매출을 올려 매운 맛 시장의 점유율을 10 %대로 끌어올릴 계획”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싸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3파전으로 굳어지던 매운 맛 경쟁 에 갑자기 복병이 나타났다. 그동안 주로 컵라면 시장에 힘을 쏟았던 한 국야쿠르트가 뒤늦게 봉지라면의 매운 맛 시장에 뛰어든 것이다. 한국야 쿠르트는 쇼킹면을 무기로 선발주자들을 위협하고 있다. 강렬한 매운 맛 에 시원한 쇠고기 국물 맛이 일품이라는 쇼킹면의 공세는 가히 파상적이 다. 맛뿐만 아니라 항바이러스 효능까지 무기로 내세운다. “컵라면 시장 에서 쌓은 명성과 독특한 맛을 무기로 봉지라면 시장에 교두보를 구축하 겠다”는 게 한국야쿠르트쪽의 야심이다.


열라면·핫라면 반격에 쇼킹면도 가세

그러나 농심은 아직 느긋한 편이다. 신라면의 아성이 쉽게 무너지겠느냐 는 낙관적인 전망이 우세하다. 10년 넘게 신라면 맛에 길든 소비자들의 입맛이 하루아침에 등을 돌리겠느냐는 것이다. 농심쪽은 “어차피 라면의 매운 맛은 고춧가루의 함량에 달린 것이어서, 맛을 차별화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자위한다. 그러나 마냥 속이 편치만은 않다. 모두 가 매운 맛을 내세우는 판에선 신라면 자체의 차별성도 엷어질 수밖에 없 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인들은 매운 맛을 너무 좋아한다(표 참조). 지난 95년 한햇동안 팔린 라면의 맛을 분석해보면, 매운 맛이 90%를 차지한다. 대부분의 라면 이 쇠고기나 해물, 김치 등을 섞어 매운 맛의 강도를 살짝 조절했을 뿐이 다. 라면시장의 최대 승부처, 매운 맛 고지를 둘러싼 경쟁이 치열할 수밖 에 없는 까닭이다.

유강문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4월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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