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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
1997년04월17일 제 1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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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경/ 시인·교육평론가
며칠 전 컴퓨터 소프트 관련 회사를 하는 친구를 만났다. 무슨 외국잡지 인가를 열심히 들여다 보고 있었다. 무슨 잡지냐고 물었더니 대답은 않고 잡지에 크게 실린 사진을 불쑥 디밀었다. 전통의상을 입은 인도 여인이 컴퓨터를 광주리에 담아 머리에 이고 가는 사진이었다. 의아해하는 나에 게 친구는 그 사진이 담고 있는 상징적 의미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 주 었다.
광주리에 이고 가는 컴퓨터
컴퓨터에 대해서는 문외한에 가까워서 정확하게 옮기는 것인지 모르겠지 만 관련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이제 컴퓨터는 인간의 합리적 사고 영역만이 아니라 비합리적 영역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이 비합 리적 사고영역을 다루는 이론이 퍼지이론이고 그것을 다룰 수 있는 컴퓨 터가 유로 컴퓨터라는 것이다. 비합리적 사고영역을 다룬다고 하지만 모 든 것을 2진법의 숫자로 환원하여 계산처리하는 컴퓨터의 작동방식이나 그 계산결과가 비합리적일 리는 없다. 컴퓨터가 비합리적 영역을 다룬다 는 것은 결국 컴퓨터의 계산능력이 예컨대 조나 경과 같이 인간이 경험적 으로 인지할 수 있는 숫자단위를 훨씬 넘어섰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 다.
그런데 컴퓨터의 계산능력이 인간의 합리적인 사고영역, 인간이 경험적으 로 인지할 수 있는 숫자단위를 넘어서면서 인도인이 관련 소프트 개발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구인이 가장 뒤떨어지고, 동양 인이 훨씬 낫고, 인도인이 가장 뛰어나다는 것이다. 서구인이 가장 뒤떨 어지는 이유는 서구인의 숫자 개념이 인간이 경험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숫자단위 안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동양인의 사고는 경험적으 로 인지할 수 있는 숫자단위를 훨씬 넘어서는 숫자단위이다. 특히 인도신 화에 등장하는 시간의 숫자개념들은 어마어마한 것이다.
그래서 근래로 오면서 세계 굴지의 컴퓨터 회사들이 앞다투어 소프트 개 발공장을 인도에 설립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잘 알다시피 인도는 운 송수단조차 기계화되어 있지 못할 만큼 낙후된 나라이다. 그러니 전통의 상을 입은 인도여인이 최첨단의 컴퓨터를 광주리에 담아 머리에 이고 갈 만하다는 것이다. 인류문명의 아이러니이기도 하고 과학기술혁명이 일으 키고 있는 가치개념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진이라는 것이다. 과학기술혁명의 진전이 인류사의 근대를 지배했던 서구의 이분법적 사고 를 무너뜨리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이었다. 합리와 비합리, 문명과 야만, 동양과 서양, 인간과 자연, 인문과학과 자연과학 등등의 이 분법적 벽들이 허물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화두처럼 떠도는 ‘개혁’이 진정한 것이 되기 위해 서는 위와 같이 과학기술혁명이 일으키고 있는 가치개념의 변화, 사회적 변화를 바탕에 깔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근래 교육개혁이라고 던져지는 사 안들을 보면 진정한 개혁으로부터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어 보인다. 세 계화를 위해 일찍부터 영어교육을 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지시에서부터 시 작되어 유아 영어교육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조기영어교육 열풍만 해도 그렇다. 그것이 서구 따라가기식 근대화 논리의 천박한 대중화 이외에 무 엇인가.
자유시장에 맡기면 사교육비 해결될까
최근 교육개혁위원회에서 제기한 9월 신학기제라든지 과외 자유화 역시 마찬가지다. 9월 신학기제는 ‘9월에 새학기를 시작하는 미국 등의 학제 에 맞추기 위해서’이외에 뚜렷한 이유를 발견하기 어렵다. 과외열풍을 부르는 우리 사회의 특수한 조건들에 대한 깊은 천착 없이 자유시장경쟁 에 맡기면 과도한 사교육비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과외 자유화 논리 역시 지나치게 안이하다. 교육개혁 입안자들조차 서구를 모델로 열심히 따라가면 만사가 해결되리라는 구시대의 근대화 논리에서 한치도 벗어나 있지 못하다. 세계사적 변화를 감당하는 나름대로의 철학도 없이 무슨 개 혁을 하겠다는 것인가.
세계사적 전환기에 한국사회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모든 분 야에서 총체적 난국을 맞이하고 있다. 이미 기회를 놓친 것이 아닌가 하 는 우려마저 든다. 하지만 아무리 바빠도 바늘 허리를 매어 쓸 수는 없다 . 세계사적 전환기를 바라보는 관점의 올바른 정립에서부터 한걸음 한걸 음 나가야 할 것이다. 특히 교육개혁은 그렇다. 정치논리에 휘말리면 교 육개혁은 인기에 영합하는 방향으로 흐를 수밖에 없고 인기에 영합하기 위해서는 대중화돼 있는 사회적 관성을 따라가게 마련이다. 개혁이 늘 개 혁을 배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4월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