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1997년04월03일 제 151호 한겨레21

난적 이회창의 아킬레스건을 찾아라

(사진/가장 끔찍한 상대는 이회창 야권에게 두려운 상대이지만 정치 초년생인 이 대표가 당내 권력투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상당한 희생을 치러야 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만약 신한국당 이회창 대표가 대선후보까지 된다면?

야당으로서는 ‘한보 청문회’ 못지 않게 중요한 관심사항이 아닐 수 없 다. 특히 그동안 실시된 수많은 ‘가상대결’ 여론조사 결과를 고려하면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모든 조사에서 이회창 후보와 맞붙은 야권 단 일후보나 독자후보 모두가 졌기 때문이다. 이회창 앞에서는 ‘DJP(김대중 -김종필)연합’조차 무기력했던 것이다. 따라서 야당으로서는 ‘이 후보 ’ 가능성에 대한 분석과 대응전략 짜기가 발등의 불일 수밖에 없다.


기회주의적 모습 부각시켜 이미지 탈색

초점은 이 대표의 ‘약한 고리’를 찾는 것이다. 국민회의와 자민련 등 야권은 먼저 신한국당이 ‘내전상태’에 있다는 점을 공격의 출발로 삼고 있다. 정치 초년생인 이 대표가 당내 권력투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상 당한 희생을 치러야 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 과정에서 이 대표의 상징 처럼 돼 있는 ‘대쪽’ ‘법대로’라는 이미지가 상당부분 탈색될 것이라 는 전망이다.

야권은 이미 이 대표의 상표가 퇴색되기 시작했다고 보고 있다. 동시에 이 대표가 본경기를 치르기도 전에 예선전에서 전력을 소모함으로써 ‘가 상대결’과 같은 결과는 나타나지 않으리라는 기대도 깔려 있다. 따라서 야권의 ‘이회창 흔들기’는 ‘이미지 탈색전략’으로 이어진다. 이와 관 련해 최근 야당이 작성한 내부문건은 흥미를 끌 만하다.

먼저 이 대표의 정치성향에 대한 분석.

“이 대표는 ‘보수기조 위에서의 개혁주의자’ ‘대쪽’이라는 평가와는 달리 우리 사회가 가장 개혁을 필요로 한 시점에서 그는 이에 침묵을 지 켰고 오히려 정권교체기에 항상 이에 협조하는 기회주의적 모습을 보임으 로 안정적 지위를 누릴 수 있었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현재로 상당한 대중적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그의 독특한 처세술 덕분임.”

문건엔 구체적인 사례까지 나열돼 있다. △5·16 직후 혁명재판에 협조 △71년 제1차 사법파동 때 이에 반대하는 입장을 보임 △전두환 정권 때 인 81년 대법원 판사에 임명됨 △노태우 정권 때인 88년 제2차 사법파동 때도 “사법연수원생까지 서명에 동참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 해를 밝힘 △김영삼 정권이 들어서서는 감사원장직과 총리직을 수락한 뒤 이를 자신의 이미지 제고용으로 활용해 대중 정치인으로서의 기반을 다짐 △안기부법 및 노동법에 대해 침묵을 지키다가 이윽고 날치기 통과시 거 수기 구실을 기꺼이 함 등이다. 물론 이 대표쪽에서 들으면 펄쩍 뛸 만한 얘기다. 이미 이 대표가 직접 해명한 대목도 있다. 또 불가피성을 내세운 것도 있다.

그러나 ‘날치기 처리’에 대한 야권의 공격에 대해서만큼은 이 대표도 속시원한 해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야권의 공격도 집요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 야권은 이 대표의 잦은 ‘말바꾸기’도 주요 공격목표 로 준비하고 있다. 국민회의쪽에서는 이미 ‘이회창 어록’을 정리해 언 론에 배포하며 공격의 고삐를 바짝 죄기 시작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이미 알려진 대로 당 대표의 경선 참여와 관련된 것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경선에 나설 주자가 대표를 맡을 경우 경선의 공정성, 객관성을 훼손시킬 우려를 배제하기 힘들다.”(3월2일) “대표는 경선에 출마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3월14일)


말바꾸기, 김현철 사건에도 집중포화

‘날치기 처리’와 관련해서도 이 대표의 ‘어록’이 준비돼 있다. “당 인의 입장에서는 당론이 결정되면 따라야 한다.”(96년 12월26일) “노동 법은 우리 경제를 살리자는 바탕에서 개정됐다.”(97년 1월6일) “복수노 조 유예는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에 법개정을 포함해 제고 할 필요가 있다.”(1월16일)

이와 함께 야권의 최근 공세는 김현철씨와 관련돼 더욱 수위를 높이고 있 는데 이 가운데 야권이 요구하는 ‘소산인맥’의 정리는 이 대표와 관련 해 깊숙이 연결돼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김씨 측근 인 정대희씨의 청와대 ‘무적근무’ 사실이 밝혀진 것을 계기로 정부여당 안의 이른바 ‘소산인맥’ 청산에 대해 무차별 공격에 나서고 있다.

특히 국민회의는 “김씨가 4·11총선에서 신한국당 공천에도 관여했다” 고 주장하면서 “김씨의 공천을 받고 당선된 신한국당 의원들은 국민 앞 에 사죄하고 공직에서 사퇴하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여기서 물론 이 대 표에 대한 언급은 없다. 그러나 야권의 관계자들은 결코 김현철씨와 이 대표의 관계를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미 이 대표의 신한국당 영입에 김씨가 깊숙이 관여했다는 것은 일부 청 와대 관계자들의 증언에서도 확인되기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산인맥’ 청산요구가 결국은 이 대표로까지 번져갈 가능성이 매우 높 다. 다시 말해 이회창-김현철 관계가 어느 정도인가에 따라서는 예상치도 못한 정치권의 파장도 일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이 대표의 영입때 상황이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다.

야권이 갖고 있는 또하나의 공격논리는 ‘김영삼-이회창 공동책임론’이 다. 이와 관련해서는 자민련이 적극적이다.

안택수 대변인은 지난 3월20일 삼미그룹 부도사태와 관련해 “신한국당 대권후보들은 기회만 노리고 직언도 하지 않았고, 대안제시도 하지 않았 다”며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잘못은 신한국당에 크게 있다”고 후 보들을 싸잡아 ‘경제파탄’의 주범으로 몰아세웠다. 안 대변인은 이어 “신한국당의 대권후보가 누가 되든지 그는 김영삼 대통령과 함께 ‘공동 의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면서 ‘김-이 책임론’을 정면으로 들고 나 섰다.

이와 관련해서는 김종필 총재의 발언이 더욱 흥미롭다. 김 총재는 3월19 일 전북 무주·진안·장수 지구당 개편대회에 참석해 김 대통령과 차남 현철씨에 대한 비난에 연설의 대부분을 할애했다. 김 총재는 “(현철씨가 관련된)사건은 당사자 한 사람의 죄악이 아니라 권력과 권력 주변이 함께 저지른 집단 범죄다. 그들은 모두 같은 피의자들이고 공범자들”이라고 ‘공동 책임론’을 강도높게 제기했다. 김 총재는 이어 “이 정권 내부에 서 누가 나와도 김영삼 정권의 복제판이며 모조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것”이라며 이 대표를 아예 김 대통령의 ‘복제인간’쯤으로 격하시 켰다. 전세계에서 ‘복제 인간’이 초미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과 연관 돼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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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각제 카드 잃은 자민련 다른 계파에 손짓

김 총재가 이처럼 이 대표를 겨냥한 공격의 수위를 높이고 있는 이유는 ‘가상대결’의 결과 때문만은 아니다. 이 대표가 신한국당의 대선후보로 확정된다면 상대적으로 김 총재의 입지는 그만큼 약화될 것이라는 자민련 내부의 분석 때문이다.

사실 자민련으로서는 야권 후보단일화를 주요 목표로 한다 하더라도 항상 신한국당과의 협상 여지도 남겨놓고 있는 듯한 태도를 유지했다. 신한국 당과의 내각제 협상 가능성을 내비쳐 국민회의와의 후보단일화 협상에서 좀더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전략 때문이다.

자민련과의 대선연합을 기정사실로 삼으려는 국민회의 지도부로서는 자민 련의 이탈 가능성이 항상 걱정거리인 셈이다. 그러나 자민련 김 총재로서 는 이 카드가 대 국민회의 협상의 유력한 무기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 대표가 후보로 확정될 경우 여권과의 내각제 협상은 사실상 불가능하 게 되고 이는 국민회의와의 협상에서 유력한 카드의 상실을 의미하는 것 이어서 언짢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이 대표를 최대한 흔들면서 후보권에서 멀어지고 있는 여권 내 다 른 계파에 손짓을 보내는 전략으로 바꾼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사실 자 민련은 최근 신한국당 이홍구 고문이 집단지도체제론을 주장하면서 이원 집정제적 국정운영을 요구하고 있는 것에 상당히 고무돼 있다.

이와 함께 야권은 신한국당 일부 계파와 ‘이 대표 흔들기’ 호흡을 맞추 는 것도 보이지 않는 전략으로 효과가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최근 국회를 격하시킨 이 대표의 글이 공개된 것은 신한국당 내부에서 자민련에 정보를 제공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신한국당 내부의 심각한 균열상의 여파가 자민련에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의 문건은 이 대표가 지난 90년 집필한 <형사소송에서의 적법절차>라 는 것으로 “국회의 입법과정을 보면 진정한 국민다수의 의견반영이라기 보다 특정한 정치권력과 이익단체 상호간의 세력분쟁 압력 또는 타협의 산물인 경우가 많아 의회입법의 민주적 정통성이란 한낱 관념과 형식에 불과하다”고 국회를 정면에서 비판하고 있다. 야당 관계자들은 “이처럼 비판적인 사람이 결국은 국민저항에 부딪쳐 재처리까지 하게된 노동법의 날치기에 함께 한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한편 야권은 여권이 경선국면으로 접어들수록 이 대표의 ‘약한 고리’를 더 많이 거머쥘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이 대표와 관련돼 확인 되지 않은 ‘설’들이 흘러나오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 인사들 이 한결같이 얘기하고 있는 것처럼 정치적 검증을 전혀 받지 않은 이 대 표가 앞으로 펼쳐질 야권의 파상공격을 어떻게 방어해낼지 주목된다.

김용성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4월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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