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1997년04월03일 제 151호 한겨레21

이회창 대표 취임 첫걸음부터 삐걱

(사진/신한국당 고위당직자회의를 주재하는 이회창 대표. 정국주도권을 의식, 불필요한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역시 쉬운 자리가 아니구먼….”

신한국당 이회창 대표가 취임 2주째를 맞으면서 피력한 소감이다. 야당으 로부터 집중공격은 별개의 문제다. 여당 내부에서 제기되는 도전은 딛고 넘어서기 쉽지않다. 다가오는 ‘한보 청문회’를 어떻게 방어하느냐도 고 민거리다. 야권이 집권여당을 옭아매기 위해 단단히 벼르고 있기 때문이 다. 날치기 파동 이후 야권으로 넘어간 정국주도권을 회수하는 것도 만만 찮은 문제다.


“정국주도권을 너무 의식한다”

이 대표체제의 출범 초기는 그 자신의 말처럼 순탄치 않다. 곳곳에서 삐 걱거리는 불협화음이 터져 나온다. 어떤 면에서는 이 대표가 스스로 불협 화음을 자초한 측면도 없지않다. 벌써부터 여권 안에서는 “이 대표가 지 나치게 정국주도권만을 의식한 나머지 ‘덜컥수’를 두고 있는 것 같다” 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덜컥수’는 바둑용어로 수준에 맞지 않는 수를 둬 상황을 망가뜨리는 엉뚱한 실수를 일컫는다. 여권 일부의 평가처럼 이 대표의 출발은 그다지 쾌청하지 않다.

이 대표의 최근 ‘덜컥수’로는 당내 갈등양상을 ‘해당행위’라고 비판 한 대목이 첫손에 꼽힌다. 이 대표는 지난 3월20일 기자간담회에서 “당 단합을 저해하는 것으로 보이는 언행이 계속되면 해당행위로 비쳐지지 않 을까 걱정된다”며 다른 경쟁자들을 공격했다. 자신을 제외한 주요 후보 들을 ‘해당행위자’로 몰아세운 것이다. 당연히 이한동, 김덕룡, 박찬종 고문쪽 관계자들로부터 거센 항의가 터져나왔다. “당원이 당헌·당규 범 위 안에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는데 무슨 문제가 있느냐”는 것이다. 또 “민주정당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수렴해 당을 화합과 단결로 이끌어 가는 것은 대표의 책임이자 의무”라며 ‘대표나 제대로 하라’는 불만도 잇따 랐다.

당 관계자들로부터 ‘어이없는 말 실수’, ‘독선적인 성격의 표출’이라 는 비난도 쏟아졌다. 이 대표로서는 자신에 대한 경쟁자들의 견제에 쐐기 를 박으려다 본전도 못찾은 꼴이다.

이 대표는 또 김영삼 대통령과의 정기적인 만남을 놓고 ‘주례보고’냐 아니면 ‘주례회동’이냐는 용어문제로 신경전을 벌이며 청와대쪽과의 긴 장관계를 자초했다. 지난 3월15일 이 대표쪽에서는 ‘주례보고’ 형식을 고치겠다고 지극히 자극적인 심중을 내비쳤다. 이 대표쪽의 이러한 태도 는 물론 김 대통령과 관계를 상하관계에서 대등한 관계로 바꾸겠다는 의 도에 다름 아니었다. 여권의 무게중심을 물러가는 대통령에서 유력한 차 기후보로 옮기려는 의도로 비춰질 수 밖에 없는 얘기였다.

이에 대해 청와대쪽은 즉각 지극히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정면에서 맞 받아친 것은 아니지만 이 대표쪽에서 틈만 나면 강조해온 ‘정국 수습책 주도론’에 대한 반박 형식으로 표현했다. 이 대표쪽은 그동안 “김 대통 령과 현철씨 문제 등 시국수습안을 깊숙이 논의하고 한보 사건의 전면 재 조사도 건의했다”라며 정국 수습의 주도권이 마치 이 대표에게 있는 것 처럼 언론에 흘려왔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18일 이를 정면으로 부인했다. 청와대의 한 고위 관 계자는 “김 대통령과 이 대표가 시국수습 문제를 협의한 바가 없는 것으 로 알고 있다”고 분명히 했던 것이다. 청와대쪽은 여기서 한발 더 나가 이 대표가 당 화합보다는 주도권 장악에 더 치중한 나머지 후보들의 경쟁 을 조기가열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중수부장 교체 ‘덜컥수’ 구설수에

또 21일 대검 중수부장의 교체와 관련한 이 대표의 태도도 구설수에 올랐 다. 이 대표는 중수부장의 교체 사실이 발표되기 불과 몇시간 전에 열린 고위당직자회의에서 “검찰이 어려운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수사에 성실하 게 최선을 다했다고 보며, 이때 검찰수사팀을 교체한다는 것과, 이것을 여당이 주도적으로 제안하고 있다는 보도는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강조 했다.

물론 이 대표가 자신의 견해를 밝힌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 나 만약 검찰팀의 교체 사실을 이 대표가 몰랐다면 난국 수습의 책임을 지겠다는 그의 위상에 문제가 있다. 반대로 이 대표가 알고 있었다면 몇 시간만 지나면 밝혀질 ‘거짓말’을 한 셈이다. 또하나의 ‘덜컥수’였던 셈이다.

이 대표의 ‘덜컥수’가 앞으로 얼마나 계속될 지 궁금하다.

김용성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4월03일


커버스토리 포커스 문화시대 특집 지난호 전체보기 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