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1997년04월03일 제 151호 한겨레21

주한미군과 국방부는 땅 도둑?

(사진/공여지 실태를 확인하고 있는 경기도 파주의 주민들. 이들은 공여지 환매소송을 제기했다.)

우리나라가 주한미군에 제공하는 땅인 공여지의 지역별 분포와 주한미군 ·국방부 작성 한-미 합동관리자료의 일부가 밝혀지면서 미군 공여지 문 제(`한겨레21' 111, 113, 114호 참조)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또 공여지로 인해 사유재산권을 침해당했다고 주장하는 주민들의 소송이 잇따르고 있어, 이 문제는 재판과정 등을 통해 그 심각성이 여론의 주목 을 받을 전망이다.


미군 1인당 2천1백70평 공짜로 사용

지난해 정기국회 국정감사 답변자료에 나타난 공여지의 지역별 분포 는 다음 몇가지 새로운 사실을 포함하고 있다. 먼저 대한민국 정부 가 미군에 ‘공여’한 전체면적은 현재 96군데 8천28만9천평(전용 4천1백 72만2천평, 지역권 1천26만3천평, 임시 2천8백30만4천평)이다. 해마다 공 여지를 줄여나가겠다는 국방당국의 말과는 정반대로 지난해(95년 국방백 서에는 7천3백68만여평)보다 7백만평 가까이 늘어난 수치를 보여주고 있 다. 이는 인천시보다 넓은 면적(1.2배)이며 여의도 전체 면적의 38배에 해당한다. 크기를 짐작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서울에 있는 용산기지가 전 체 미군 공여지의 1%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된다. 주한미군이 총 3만7천명이니까 평균 잡아 미군 1명당 2천1백70평의 땅을 쓰고 있는 셈이 다.

지역별로는 파주시가 전국 최대의 공여지 제공지역인 것으로 밝혀졌다. 파주시의 공여지는 모두 2천8백30만2천평으로 지난해 문제가 불거진 동두 천시보다 1천만여평이나 넓다. 파주시의 경우 미군기지·시설의 규모에 비해 공여지 면적이 턱없이 넓다. 특히 지역권과 임시공여지 안의 사유지 에 대해 보상 책임을 거론하지 않고 있는 국방부 당국의 자세로 볼 때, 7 만3천평과 2천2백9만2천평에 이르는 지역권·임시 공여지에 사유지가 대 규모로 포함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 국방부는 공여지 안에 있는 사유지의 전국적인 실태를 밝히지 않고 있다. 국방부는 지난해 국정감사 답변자료에서 공여지 안의 사유지는 6백 80만평(동두천 4백80만평, 파주 2백만평)뿐이라고 밝혔다. 동두천의 4백8 0만평 중 4백만평은 공여지 해제·반환을 협의중이고, 나머지 80만평과 파주의 2백만평은 예산을 반영해 사들인 뒤 보상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국방부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국방연구원 강명길 연구위원의 논문‘미군시설 및 기지 사용문제와 개선방향’(95년)에 따르면, 전체 공 여지의 27%만이 국방부 소유의 국유지이고 나머지는 사유지와 공유지다. 5천8백만여평 정도는 개인이나 지방자치단체의 것이라는 얘기다. 사유지 는 개인에게, 공유지는 지방자치단체에 보상을 해야 마땅한데도, 정부는 보상은 커녕 공여지 실태를 밝히는 것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국방부 “공여지 내 사유지는 6백80평” 거짓말

국방부는 지금까지 “공여지에 관한 자료 모두를 미군기지 근처 한국군 사단에 넘겨 지역에서 자체 관리하도록 하고 있다”고 밝혀왔다. 그러나 <한겨레21>이 단독으로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국방부는 주한미군과 함께 공여지에 관한 모든 자료를 공동관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미합동위 원회 시설·구역 분과위원회가 작성한 ‘시설과 구역에 관한 계획’(Sche dule of Facilities and Areas)라는 이름의 이 자료는, 1995년12월31일 현재 공여지의 실태를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날짜로 미뤄볼 때, 해마다 또는 몇년에 한번씩 이같은 자료를 만들어 바뀐 내용을 추가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자료에는 해당 공여지에 대한 미군의 공칭번호(Official Iden tification Number), 대한민국 국방부의 공식참조번호, 사용주체(미육군 ·미해군·미공군 구분), 부동산 취득번호, 주한미군이 사용하게 된 날짜 , 공여지의 위치를 나타내는 좌표, 공여지의 면적(에이커와 평 단위로 계 산), 시설에 대한 미국의 공식명칭(캠프의 이름), 구체적인 군사적 용도, 주둔군지위협정 발효 당시의 한국소유 건물의 수, 영구(‘전용’이라는 의미의 ‘exclusive’대신 ‘permanent’를 씀)·지역권·임시의 구분 등 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80년대는 물론이고 90년대 중반에도 공여된 땅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미 군의 필요에 따라 최근에 추가로 공여되는 땅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 다. 이 자료는 한-미합동위원회 시설·구역분과위원회 의장들의 서명이 적혀 있다. 미군쪽은 리처드 캅카 대령, 한국쪽은 국방부 관재보상과 노 양우 과장이다.

공여지는 지난 67년 발효된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에 따라 한국 정부 가 주한미군의 주둔과 유지를 위해 ‘공여’(Grant)한 땅을 가리킨다. 미 군은 협정에 따라 이 땅에 대해 ‘무상으로 영구히’ 배타적인 사용권을 가진다. 공여된 것은 땅만은 아니다. 미군은 4백74동의 한국소유 건물도 공짜로 쓰고 있다.

공여지 문제가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이 땅 안에 사유 지가 대규모로 들어 있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부터였다.


공공수용절차조차 무시, 주민들 잇단 소송

동두천 쇠목마을과 파주시 진동면에서는 실제로 사유지가 공여지에 포함 된 채 불법적으로 쓰이는 사례가 발견됐다. 땅 주인들은 자신의 땅이 미 군에 공여된 사실을 수십년 동안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물론 공여 당시 와 그 이후에도 정부의 통보나 보상은 없었다. 정부는 사유지를 공공의 목적으로 사용할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공공수용절차’조차 무시한 것 이다.

새해 들어 공여지 문제로 피해를 당한 당사자들의 소송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미군이 자신들의 땅에 사격장을 설치하는 것에 반대해 시위와 농 성을 벌였던 동두천 쇠목마을 주민 김석규씨 등은 국가를 상대로 ‘사용 권 부존재 확인 및 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소장에서 “비록 대한민국 정부가 협정(조약)이라는 형식을 통해 일정한 범위의 토지를 미 군에 ‘공여’했다 해도, 대한민국 정부는 헌법과 징발법, 공공용지 취득 및 손실보상에 관한 특례법을 통한 공공수용절차를 밟지 않았다”고 지적 했다. 재판을 담당한 김기중 변호사는 “재판 과정에서 주둔군지위협정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내용의 위헌심판제청도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파주시 적성면 장좌리 일대 주민 17명도 73년 당시 정부의 징발로 미 군에 공여했던 땅 5만5천평을 되돌려달라며 국가를 상대로 ‘소유권 이전 등기 청구소송’을 냈다. 주민들은 소장에서 “정부가 73년 군사상 필요 하다는 이유로 사유지를 헐값에 사 미군쪽에 공여했으나 80년대 중반 이 후부터는 주한미군도 군사상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있다”며 “군사상 의 필요가 없다면 돌려주는 게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미군이 돌려주지 않으면 되사는 게 불가능하다”는 기존의 입장을 고집 하고 있다.

한편 공여지의 조기 반환 가능성과 관련한 올해초 몇차례의 국내 언론보 도는 모두 잘못된 것으로 밝혀졌다. 일부 언론은 특히 지난해 문제가 됐 던 동두천의 공여지 일부가 올 상반기 안에 반환된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국방부와 동두천 시청에서는 이같은 내용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공여지 반환 계획도 전혀 없다는 것이다.

동두천 시청에서 공여지 문제를 담당하는 민선식 도시행정계장은 “국방 부 관재보상과를 여러 차례 방문했지만 ‘미군과 협상중이니 기다려보라 ’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반환을 기정사실화한 언론들 의 보도에 대해서는 “지역기자들이 잘못 알고 쓴 것”이라고 말했다. 국 방부 공여지 담당부서인 관재보상과 고준경 서기관 역시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미군과 협상을 진행중이지만 반환 결정이 쉽게 날 것 같 지는 않다. 미군은 평화시보다는 전쟁을 고려해 공여지 범위를 결정하고 있어 설득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고 말해 조기 반환 가능성은 기대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실태와 쓰임새 밝히고 반환 서둘러야

쓰지 않거나 필요 이상으로 넓게 정해져 있는 공여지의 반환을 추진하고 있는 기지운동가들은 반환에 소극적인 국방당국의 태도를 강하게 비판하 고 있다. 주한미군범죄 근절을 위한 운동본부(정우섭 공동대표) 조재학 사무국장은 “땅 주인들에게 알리지도 않고 보상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미군에 넘긴 공여지 안의 사유지 문제는 사유재산권의 보호 차원에서라도 하루빨리 해결해야 한다. 또 전체 공여지의 구체적인 실태와 쓰임새를 밝 히는 것도 더이상 미룰 수 없다”고 주장한다.

기지운동을 전국적으로 이끌고 있는 김용한 전국연합 미군기지대책위원장 은 “공여 개념에 대한 전반적인 재검토를 통해 쓰지 않는 공여지에 대한 즉각적인 반환과 기지의 대폭적인 축소 조정이 하루빨리 이뤄져 공여지로 인한 사유재산의 침해와 국내환경의 파괴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주한미군에 대한 공여지 현황

(단위: 천평/자료:96년 국방부)
소재지 면    적
합계 전용 지역권 임시
합계 80,289 41,722 10,263 28,304
서울지역 1,110 1,102 8 0
부산지역 290 286 4 0
대구지역 1,229 569 660 0
인천지역 145 140 5 0
광주지역 379 275 104 0
대전지역 17 12 5 0
의정부지역 2,406 980 308 1,118
동두천지역 18,353 18,334 19 0
파주지역 28,302 6,137 73 22,092
포천지역 4,788 4,779 9 0
평택지역 3,901 3,600 301 0
기타지역 19,369 5,508 8,767 5,094


김창석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4월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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